아마 사람들은 모두 이런 내 모습을 싫어할 거야

두려움의 뿌리 깊은 곳 수치심

by 공원의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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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다른 꽃들은 킁킁거리다
모두 뒤로 물러났어요.
“우웩! 너무 지독해!”


마을 사람들도 곰 아저씨에 대해
수군수군거렸어요.

"곰 아저씨가 지난번 계산 실수를 하더니
버럭 화를 냈어!"

"며칠 전에 슈퍼에서 만났는데
인사도 안 하더라고요!"

점점 마을사람들은
꽃집에 찾아오지 않았어요.


곰 아저씨는 화가 났어요


'이건 다 이 꽃 때문이야!!'
'이 꽃을 없애면 다시 평화로워질 수 있어!'








곰 아저씨는 오래도록 느끼면 안 되는 감정들을 골라내며 살았다.
화내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짜증 내지 않으며. 그런 감정들을 마치 자신에겐 애초에 없는 것들 인 것처럼, 조용히 정원에서 지워나갔을 것이다.



따뜻하고, 착하고, 늘 괜찮은 사람.
어쩌면 이런 것들은 우리도 진심으로 되고 싶었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의 표면에서 지우려 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무의식의 밑바닥에서 자라난다. 곰 아저씨가 외면했던 새싹은 물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시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 하러 그렇게까지 화를 내?”,

“이게 뭐라고 슬퍼해?”,

“그렇게 짜증 낼 일 아니야!”


자기 검열의 목소리는 자아를 억제했지만, 사실 그 밑바닥 속 무의식은 99도의 물처럼 들끓고 있었을 것이다. 감정은 이름 붙여질 수 없을 때, 행동으로 말한다. 그리고 억눌린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새싹처럼 자라나 감정 폭발이라는 형태로 꽃을 피운다.



곰 아저씨도 그랬을 것이다.

평소엔 조용하고 친절하던 꽃집 주인은 늘 있었던 계산 실수에 어느 날 갑자기 분노를 터뜨리고, 매일 반갑게 인사하던 사람이 예전에 기분 나쁘게 했던 일이 갑작스레 떠올라 무시해 버리고, 그러다 어느 날엔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력감에 빠져버렸다. 이건 단지 오늘 하루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 아니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감정이 오랜 시간 무의식의 어둠에서 자라났고, 이제는 자아의 통제를 넘어서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곰 아저씨가 진짜 두려웠던 건, 감정 자체가 아니었다.

냄새나고 못생긴 꽃이 피어난 것을 누군가 알아차릴까 봐, 이런 꽃을 갖고 있는 모습이 사랑받지 못할까 봐였다.



“이렇게 화를 내면 나는 나쁜 사람일까?”,

“이런 내가 드러나면 다들 실망할 거야.”



문제는 감정의 존재가 아니라, 그 감정을 드러낸 나 자신에 대한 '수치심(shame)'이다.



내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수치심.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어떤 감정을 사람들 앞에 드러냈을 때 이 감정을 드러냈다는 것 자체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건 "내가 잘못했다"라는 행위 중심 판단의 죄책감이 아닌 "내가 잘못된 존재다"라는 존재론적 정체감에 작용하는 수치심이다. 곰 아저씨는 단지 분노나 슬픔을 느끼는 게 불편했던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느낀 ‘자신’ 자체를 결함 있는 존재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고, 스스로에게조차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러면 수치심은 억압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을까?



곰아저씨는 과연 모두가 싫어하는 것 같은 이 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 모든 그림과 글은 작가가 직접 그리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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