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만 안 보이면 다 괜찮을 줄 알았어요

감정은 없애는 게 아니라 겪는 것

by 공원의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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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싫어하던 꽃을 숨기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곰 아저씨의 마음은
가슴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있는 것처럼
어딘가 불편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따끈한 연어구이를 먹을 때도,
고소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때도,
화장실에서 똥을 눌 때도,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시들어가는 꽃 생각을
멈출 수 없었어요.








상자 속의 꽃, 마음속의 돌덩이

모두가 싫어하던 꽃을 상자에 묻고 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아니 곰 아저씨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속 어딘가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어구이의 고소한 향도, 진한 커피의 따뜻함도, 익숙한 침대의 포근함도 그 불편함을 덜어주지 못했다. 심지어 가장 사적인 순간인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조차, 머릿속에서 시들어가는 꽃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곰 아저씨의 삶은 다시 평온해졌지만, 마음은 평온해지지 않았다.



곰 아저씨가 느끼는 돌덩이 같은 불편함은

그림자가 무의식에서 반격을 시작했다는 신호다.



그림자는 억압될 수는 있지만, 침묵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어떤 방식으로든 의식의 문을 두드린다.



곰 아저씨는 그 꽃을 다시 보지 않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 꽃의 존재는 더 강하게 그의 일상 속을 침투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그림자는 억압된 채 무의식에 머물러 있을 때 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의식을 괴롭히는 힘이 된다.



우리는 종종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정, 잊고 싶은 기억, 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 반복되는 상처를 억압하지만, 이런 것들은 억압한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마음 이면에 조용히 자리하며, 때때로 이유 없는 무기력, 불안, 반복되는 실수와 인간관계의 갈등으로 형태를 바꿔 되돌아온다. 곰 아저씨에게 있어 시들어가는 꽃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감정적 진실인 것이다.



곰 아저씨의 마음속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시들어가는 꽃이다.

그것은 한때 살아 있었고, 지금도 생명력을 지닌 채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시듦은 곰 아저씨의 감정이 처리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감정은 느껴지고 통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곰 아저씨는 그 감정을 인식만 했을 뿐, 끝내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감정은 아직도 내면에서 살아 있고, 시들어가는 고통 속에 표현되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들어가는 꽃은 말한다.
"나의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았잖아."
"나의 의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잖아."



곰 아저씨의 불편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곰 아저씨는 그림자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림자를 침묵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감정은 침묵을 강요받는 순간 더욱 강렬하게 고개를 든다. 무시된 감정은 억울하다. 그리고 그 억울함이 곧 우리의 불편함, 죄책감, 우울, 정체성 혼란으로 되돌아온다.



결국 감정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겪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곰 아저씨는 지금, 자신이 감정을 제대로 겪지 않고 지나쳤다는 사실과 마주하고 있다. 따끈한 연어구이를 먹으며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밍밍함을 느낀다. 책을 읽는 데 집중할 수 없고, 커피는 향기롭지만 마음에 스며들지 않는다. 이는 곰 아저씨의 내면이 이제 더 이상 감정을 회피하는 방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말해주는 신호다.



감정의 통합이란 단순히 감정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깊이 경험하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곰 아저씨는 꽃을 보고 놀라고, 그것을 부정하고, 감추고, 다시 떠올리는 과정을 통해 감정을 점차 깊이 있게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감정을 겪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즉, 상자 속에 감춰둔 것을 꺼내어, 그 의미를 묻고, 함께 있어줄 준비를 해야 할 때다.



진짜 회복은 정면으로 마주할 때 시작된다.

곰 아저씨의 정원은 다시 아름답게 보일 수 있지만, 마음은 아직 병들어 있다. 외면의 질서는 회복되었지만, 내면의 혼란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페르소나를 유지하기 위해 자아의 일부를 억누를 때, 내면의 균형은 무너진다. 진정한 회복은 단지 문제를 보이지 않게 덮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마주하고 의미를 찾고, 그것을 나의 일부로 통합하는 데서 비롯된다.



과연 곰 아저씨는 불편한 마음을 품은 채 모르는 척 살아갈까, 아니면 상자 속의 꽃을 다시 꺼내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까?





* 모든 그림과 글은 작가가 직접 그리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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