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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원의 서쪽 May 26. 2023

독일로 이사 갑니다.

독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기



결혼을 하고 1년이 지났다.

신혼집 전세는 2년을 얻었고 우리에겐 아직 12개월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결혼하던 시기는 코로나에 경제불안까지 더해져 진실을 알 수 없는 뉴스가 쏟아져 나오던 때였고, 남들이 다 이득 봤다던 주식열차에 끝에 올라타서는 남들이 다 내리고 떠나가는 내리막길에서 아직도 못 내려오고 여전히 붙어있는 중이었다.

이사를 가고 싶진 않았다. 서울로 대학을 오며 약 10여 년 동안 자취를 하며 인테리어라는 걸 모르고 살다가 신혼집이 생기고 '내 집'다운 집을 만들고 나니 전셋값을 아무리 올린다 해도, 대출 이자가 높아진다 해도 이 집에 계속 살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고 밖이 깜깜해져서야 집에 왔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그날따라 영 께름칙했다.


"무슨 일 있었어?"


남편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씻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처럼 울었다.


이직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회사가 남편이랑 성향적으로 안 맞는다는 것은 남편이 되기 이전, 우리가 남자친구, 여자친구였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사람들도 일도 모든 것이 잘 안 맞아서 억지로 세모와 네모 모양의 톱니바퀴를 굴리는 느낌. 나도 알고 남편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나이가 30대에 접어들었고,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 했고, 그것을 위해서는 대출이 필요했다.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대출받을 기회도 없었고, 그로 인해 남편이 회사에서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지만 호기롭게 "때려치우자!"라고 할 수 없었다. '이건 영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알고 있었지만 묵인했다. 우리에게 처한 현실 앞에 내린 결정이 맞다고 생각했다. 내 앞에서 한번 운 것보다 더 많은 날을 속으로 울었을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


"여보, 그만해도 돼."


그렇게 말한 날부터 남편은 이직을 준비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까지 보자라고 생각하며 전 세계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다양한 회사의 면접을 보고, 외국에 있는 회사들은 온라인으로 면접을 4차 5차까지 보며 힘닿는 데로 이직을 준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외국으로 가게 된다면 어떡하나, 이 집을 떠나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내 손으로 꾸미고 어울리는 장식품을 하나하나 놓은 내 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 처음으로 사람들을 초대도 해보고 음식도 대접해 본 나의 집. 이 모든 가구, 가전, 자잘한 장식품들을 정리할 생각을 하니 아득해졌다. 그리고 나는 외국에 나가면 거기서는 뭘 하지? 영어도 잘 안되는데 라는 생각에 몇 날 며칠을 남편 몰래 끙끙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환한 얼굴로 나를 찾았다.


"자기야!! 우리 독일 가서 살자!"


그 얼굴을 본 순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가야만 한다는 것을.


방금 전까지도 집안 물건 하나하나에 애착을 갖고 '이건 버릴 수 없어..." 하던 마음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두 달 만에 집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결정 같았지만 사실 우리 속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차분하게 신변정리를 해나갔다. 아끼던 모든 것들을 중고거래로 처분하고, 10년 동안 버리지 못했던 책들도 중고서점에 헐값에 넘겼다. 까다롭고 복잡하기로 소문난 독일 취업비자와 나의 가족동반비자를 받는 과정도 남편에게는 즐겁고 신나는 일이 되었다. 남편이 사직서를 내고 온날은 우리가 만나온 약 4년의 시간 동안 그 어느 날보다 후련해했고, 언젠가부터 눈 밑에 서려있던 다크서클은 사라져 있었다. 남편의 일정에 맞춰 나도 일을 하고 있던 곳들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너무 아쉽네요... 혹시 무슨 일 때문에 갑작스럽게 그만두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걸 이민이라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이민이라는 말은 여기를 영영 떠나는 느낌이 나고 되게 오래전부터 준비했을 것 같은 느낌이 나는데... 더 적절한 말이 없나?라는 생각을 했다.


"저 독일로 이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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