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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스한 골방 Dec 25. 2023

크리스마스 때 외로운 건 당연한 일입니다

  크게 외로워 보이지 않고, 혼자 잘 지내는 듯한 사람들도 외로워질 수 있는 시기가 있어요. 그 시기 중 하나가 바로 오늘,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싶어요. 크리스마스의 무엇이 그렇게 혼자 있는 사람들을 외롭게 할까요. 거리를 돌아다니는 행복한 커플들의 모습 때문일까요, 혼자 보내는 연말이라 그런 걸까요. 이유야 다들 다르겠지만, 평소 잘 지내시는 분들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유독 외로웠다고 말씀하시곤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외로우면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외로울 때 집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혼자서도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다지 외롭지 않아 보여요. 심지어는 혼자서 지내는 게 익숙한 본인들도 이런 생활이 외롭지 않다고들 해요.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로 이런 생활이 외롭지 않다고 느껴오려고 노력을 해왔고, 현실에서도 그 노력의 결과를 내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하지만 외롭다는 감정은 꽤 무서운 감정이에요. 어떤 면에서는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보다 무서워요. 내가 고립되었으며, 더 이상 주변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외로움이 계속되면 나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게 외로움이 길어지면 내 삶이 공허하고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길어지는 외로움은 위험해요.


  그래서 인간은 외로움을 방어하는 강력한 방법을 만들었어요. 외로움 자체를 의식에서 꺼내고 무의식 속으로 넣어버려요. 달리 말하면 외로움 자체를 지워버리고 잊어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에게는 위험한 방법일 수도 있어요. 사람은 포유류니까요. 사람은 출생 전부터 어머니의 뱃속에서, 어머니의 일부로서 지내요. 그렇게 건강한 어머니는 일생동안 자녀를 자신의 일부로 느끼면서 키워오죠. 그래서 포유류인 우리들의 유전자에는 엄마-아이 간의 끈끈한 애착이 이미 본능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래서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한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능을 거슬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외로움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본능을 거스른 채로도 안정적으로 지내기 위해서 에너지를 써요. 그런데 그들에게 갑자기 위기가 찾아오면 어떨까요. 평소에 비축해 둔 에너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무척 힘들어할 가능성이 커져요. 그래서 외로움을 잊는 채로만 살아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어요.


  사람이 애착이 없었던 것처럼 지내려면, 앞에서 설명한 애착의 본능을 눌러야만 할 만큼 크나 큰 아픈 상처가 필요해요. 이러한 사람들은 존 보울비의 애착이론에서 설명하는 회피형 유형의 애착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들은 이미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수없이 받아온 사람들이고, 더 이상 사람들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 해요. 그래서 그들은 혼자 지내는 게 편해요. 그들을 마냥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어요. 그들도 이미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도 알게 모르게 노력해 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피형 인간들이 억눌러온 외로움도 언제든 불쑥 튀어나올 수 있어요. 아무리 우리가 누르려고 노력하더라도 이따금씩 튀어나오는 것이 애착의 본능이니까요. 그래서 영원히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만약 당신이 오늘 유독 외로움을 느꼈다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평소에 혼자서 지냈더라도 오늘은 외로울 수 있는 날이에요. 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 졸였을 수도 있을, 당신의 지나간 한 해에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년에는 덜 외로운 한 해가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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