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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웜쑤 Sep 11. 2024

미국인 남자와의 연락 문제

그렇게 우리의 장거리 연애는 시작되었다. 


주변인들은 외국인 남자와 사귀는 게 괜찮은지 걱정이 되어 계속 물어봤다.  

자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데다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를 갑자기 만난다는 이 모든 것이 모험처럼 들리기엔 충분했다. 매일 봐도 아쉬운 20대의 연애인데 국내의 다른 도시도 아닌 해외에 있는 심지어 정체불명의 외국인 남자를 마느냐 나는 소리였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연애사인데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된다. 이런 걱정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웃어넘기려 했지만, 한편으론 마음 한구석엔 그들의 말이 가시처럼 남았다. 혹시 정말 내가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진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어떻게 좋아하는 감정이 드는걸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것저것 잴 수 있을까. 



장거리 연애의 가장 큰 단점은 물리적인 거리감에서 따라오는 심리적인 거리감이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받은 그의 메시지가 단 몇 줄로 끝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오늘 일이 많이 바빴거나 다른 약속이 있었던 거지 내게 소홀한 게 아니야. 스스로를 다독여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시간 동안 마음이 식어가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됐다. 주변을 둘러보면 커플들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이 그저 부러웠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것과 시간을 두고 몇 개월 뒤에 볼 수 있는 건 극명한 차이였다. 분명 연애를 하고 있지만 내 옆에 남자친구의 자리는 항상 비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다시 읽고 그가 마지막에 웃음 이모티콘을 넣어 준 것을 보면서 유치하게도 마음이 다시 사그라지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최악의 조건을 면할 수 있었던 건 같은 시차에 살고 있다는 거였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 있었다면 연락이 그리 쉽지 않았을 거다. 필리핀에 있던 그와 한국에 있는 나는 같은 시간에 뜨고 지는 해와 달을 보면서 하루의 끝에서 일상을 주고받았다. 낮에는 각자 일을 했기에 최대한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안부를 확인했고 자기 전에는 반드시 영상통화를 주고받았다. 낮에 텍스트로 주고받은 연락 횟수가 적었더라도 이 시간이 되면 모든 게 용서가 되는 매직이 일어난다. 연애 초기에는 영상통화를 하기 전에 풀메이크업을 유지한 상태로 화면을 사이에 두고 예쁜 얼굴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그게 잘 먹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루의 끝에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밥은 뭘 해 먹었는지, 어딜 다녀왔는지 등 사소한 것까지 묻고 대답하면서 그렇게 대화 중에 스르륵 잠이 들 때도 있었다. 


하루는 정말 불만을 크게 느끼는 사건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면 그에게서 안부 연락이 전혀 오지 않는 거였다. 다른 친구들은 남자친구들이 걱정이 되는지 계속 전화를 해오는데 밤늦은 시간이 돼서도 걱정을 시늉하는 연락조차 오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혼자 걷는데 화도 나고 서운한 마음이 끝까지 차올랐다.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 건지 투덜거렸다. 

그랬더니 그가 한 말이 나의 입을 꾹 닫히게 만들었다. 오늘 저녁에 친구들과 잘 놀고 있는 나를 배려로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누구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데 굳이 연락을 해서 일일이 물어보는 것보다 나의 시간을 배려해 준다는 의미였다. 집돌이인 남자친구와 반대로 밖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던 내가 오히려 믿음을 갖지 못한 짧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이후엔 서로의 배려방식과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시간을 더 존중할 줄 알게 되었다. 


여자들은 언제나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명심하라 남자들이여!



(이번 화 만화는 19년도에 작업한 손그림 툰입니다. 가끔 디지털툰과 손그림툰을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





7년간의 해외 롱디를 거쳐 2020년 12월 연을 맺은 미국-한국 국제부부입니다. 두 사람의 출신지인 부산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벗어나 말과 버번 보드카가 유명한 켄터키 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낮에는 트레이더 조스 마트에서 근무하며, 인스타툰, 아크릴화를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국제연애의 에피소드와 생동감 넘치는 미국 일상을 에세이 단편 형식으로 장기 연재합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  

(댓글과 응원은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웜쑤 해외살이툰] 바로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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