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엄마는 내게 항상 예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남들보다 두껍고 펑퍼짐한 콧볼은 복코, 콤플렉스인 커다란 당나귀 귀는 복귀, 도드라진 광대뼈는 남들과 다른 매력포인트라고. 외모 관심이 최대치로 올라가는 20대 소녀에게 딸을 향한 엄마의 무한 긍정은 통하지 않았다. 셀프 외모 지적은 계속되었다. 눈이 조금 더 컸으면, 코가 높았으면, 얼굴형이 갸름하고 작았으면...
손에 거울을 달고 살면서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동경하곤 했다. 그렇다고 성형까지 갈 만큼 간이 큰 아이는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러한 외모 결핍은 이성을 보는 기준으로 채웠다. 처음 이성을 볼 때 외모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물론 외모가 오래갈 수 없다는 건 세월이 지나야 알 수 있었지만.)
이러한 외모 편애는 연애를 할 때마다 1년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으로 매번 이어졌다. 과연 누구의 문제인지는 직접 눈으로 봐야 판단이 가능할 문제겠지만. 반복되는 연애 실패에 지겨워질 무렵 한 외국인 남자가 내 인생에 불쑥 들어온 것이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외모를 예쁘게 바라봐주는 사람. 평생을 콤플렉스라고 생각한 부분도 매력적으로 봐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지금껏 만난 남자들 중에서 가장 인물이 좋다. 데이트를 하는 내내 이 남자 얼굴만 들여다보고 오목조목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묵직하고 다정한 말투가 듣기 좋아서 가슴이 콩 쾅 거 린다. 마치 예쁘게 피어있는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옆에 있으면 꽃향기가 절로 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과 확연히 뭔가 다르다.
한 달 후면 한국 출장을 마치고 거주 중인 필리핀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만큼 인텐시브 데이트 코스가 따로 있을까. 그가 한국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 매일 만났다. 팥빙수도 먹고 영화도 보고 맛집도 다니고 서울에서 구경할만한 곳은 다 찾아다녔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랫동안 알던 사이처럼 같이 있으면 편하기가 그지없었다. 다른 언어를 써도 같이 웃고 통하는 연결감이 서로를 강하게 이끌었다.
눈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운 연애가 이런 걸까?
"Come visit where I live."
(내가 사는 곳에 놀러 와)
한국에서 헤어지는 마지막 날, 나에게 작은 상자와 편지를 건네준다.
상자를 열어보니 평생 사본적 없는 브랜드가 있는 귀고리 선물이 들어있었다. 편지봉투 안에는 손글씨로 빼곡히 가득 채운 두장의 편지지. 자신을 보러 꼭 와달라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의 만남이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하룻밤의 꿈처럼 사라질까 봐 두려우면서도 설레었다.
하지만 이번에 꼭 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찾던 이상형 외모를 가진 이 남자를 어떻게 놓칠 수 있나.
며칠 후 대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있던 나는 떠날 채비를 준비했다. 부엉이가 그려진 특이한 블라우스를 골라 입었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차려입은 졸업 사진 촬영일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수하물을 이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왠지 지금과는 다른 연애가 찾아온 것만 같다.
지금으로선 그 사람이 독꽃이어도 괜찮다.
계속 곁에 두고 보고 싶은 이로운 꽃인지 앞으로 더 알아보고 싶다.
백마를 타고 공항에 나와있을 그가 보고 싶다.
꽃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일까? 나를 어떻게 반겨줄까?
그렇게 우리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7년간의 해외 롱디를 거쳐 2020년 12월 연을 맺은 미국-한국 국제부부입니다.
두 사람의 출신지인 부산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벗어나 말과 버번 보드카가 유명한 켄터키 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낮에는 트레이더 조스 마트에서 근무하며, 인스타툰, 아크릴화를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국제연애의 에피소드와 생동감 넘치는 미국 일상을 에세이 단편 형식으로 장기 연재합니다.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
(댓글과 응원은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웜쑤 해외살이툰] 바로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