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가 된 아이의 고백
나는 한동안, 내가 누구인지보다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1. 전세 역전, 물가에 내놓은 아이가 된 나의 부모님
그들이 나를 세상에 내보내던 방식 그대로,
이제는 내가 그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있었다.
며칠 전, 부모님이 친구분들과 함께 몇 년 만에 태국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셨다. 공항으로 향하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나의 거대한 그늘이자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성벽이었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늘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노심초사하시던 분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여행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부모님의 꼼꼼한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생소한 온라인 입국 신고서를 대신 작성하고, 행여나 좋은 자리를 놓치실까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마쳤다. 해외에서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당황하실까 봐 로밍 상태를 몇 번이고 확인했고, 태국의 후덥지근한 날씨에 맞는 옷차림과 수하물 규정까지 하나하나 출력해 손에 쥐여드렸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어리둥절해하시는 부모님의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아, 이제는 내가 이분들의 세상이 되어드려야 하는구나. 챙겨드릴 것이 많아질수록 부모님은 점점 나의 아이 같아졌고, 나는 그분들의 든든하지만 조금은 서글픈 보호자가 되었다.
2. 샌드위치 세대, 돌봄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다
서른여덟의 내 삶은 마치 거대한 정거장 같다. 위로는 노쇠해 가는 부모님을 살피고, 아래로는 한창 손길이 필요한 일곱 살 아이를 키운다. 그리고 곁에는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면서도 때론 가장 큰 돌봄이 필요한 동반자가 있다.
나의 하루는 오롯이 타인의 요구에 응답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아이의 밥을 챙기고,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남편의 일상을 다독인다. 돌이켜보면 누군가를 챙겨주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분명 고귀한 일이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정성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이 찾아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가슴을 찔렀다. 모두의 필요를 채워주느라 정작 나 자신의 잔은 비어버린 상태. 부모님의 딸, 아이의 엄마, 남편의 아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나라는 본연의 존재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 사이에서 마음은 지독하게 앓기도 했고, 사유의 시간은 깊고 어두운 터널 같았다.
3. 사유를 멈추고 발견한 사랑의 실체
긴 사유 끝에 얻은 결론은 의외로 단순했다. 나는 누구인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질문을 잠시 접어두기로 한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정의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조차 때로는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대신 나는 내 눈앞에 놓인 풍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나의 부모님, 나의 아이, 나의 남편. 이들은 내가 선택한 사랑이고, 내가 지켜내야 할 세계다. 그들을 챙기고 보살필 수 있는 건강이 내게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그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어쩌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의 실체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왔다.
부모님이 태국에서 보내온 서툰 사진 한 장,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남편의 묵직한 응원. 이 모든 것들이 나라는 존재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내가 베푸는 돌봄은 소모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세계를 유지하는 가장 숭고한 행위였다. 누군가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 그것은 서른여덟의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자부심이다.
4. 따스한 하루를 만드는 돌봄의 근육
물론 앞으로도 문득문득 힘들고 지치는 순간은 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면의 근육을 키우고, 그 힘으로 다시 가족이라는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 리듬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나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나 또한 기꺼이 나의 소중한 이들을 위해 기꺼운 마음으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줄 것이다. 내가 챙겨드릴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내린 삶의 정답이다.
태국 하늘 아래 환하게 웃고 계실 부모님을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앞치마를 두르고 스마트폰을 든다. 이 모든 돌봄은 결국, 나를 향한 사랑이기도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