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작은 틈에서 자란다

무기력을 이기는 사소한 움직임

by 온기록


까닭 없이 울적해질 때가 있다.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상처 주는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럴 때 주변을 둘러보면 싱크대에 그릇이 몇 개 더 쌓여 있거나, 빨래 바구니는 넘칠 듯하거나, 며칠째 감지 않은 머리가 기름져 있다. 청소를 미뤄 둔 바닥에는 먼지가 굴러다닐 때도 있고, 창틀에는 햇빛 대신 흐릿한 공기가 얹혀 있다.


우울감은 거창한 사건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작은 일상 속에서도 자란다.

그래서 이유 모를 가라앉음이 찾아오면 생각을 잠시 멈춘다. 왜 이럴까, 뭘 잘못했을까 같은 질문을 내려놓고 설거지를 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미지근한 물을 틀어 그릇 하나를 씻어내다 보면 마음속 어딘가도 함께 헹궈지는 느낌이 든다.


빨래를 돌리고 젖은 수건을 널고 바닥을 한 번 쓸고 나면 조금 전까지의 무기력은 생각보다 쉽게 자리를 옮긴다. 우울감은 무기력함과 짝꿍이라서 몸이 멈추면 마음도 함께 주저앉는다. 그러니 거창한 계획 대신 아주 작은 움직임이면 충분하다.


집안일이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라면 샤워를 해도 좋다. 따뜻한 물을 맞으며 잠시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조금 정돈된다. 개운해진 몸이 내 기분을 환기시켜 주기도 한다.


날씨가 맑다면 밖으로 나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자. 구름이 흘러가는 걸 보는 동안 생각도 조금은 느려지고 숨이 깊어진다.


그릇 하나를 씻는 일, 머리를 감는 일,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선택이 오늘 하루의 기분을 바꿔준다.

우리는 거대한 변화를 기다리며 스스로를 더 지치게 하지만, 어쩌면 필요한 건 작고 따뜻한 행동 하나일지도 모른다.

오늘이 조금 가라앉아 있다면 무언가를 완벽히 해내려 하지 말고 그저 한 가지를 해보자. 그 작은 움직임이 당신의 하루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