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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Aug 02. 2020

곰돌이 인형

이따금 체념하는 법을 알아버린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떼를 쓰는 나를 자주 버렸고, 나는 그런 엄마와 언니에게 악착같이 더 떼를 쓰거나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버리며 그들을 멈춰 세웠다.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엔 지금은 현대백화점으로 바뀐 그레이스백화점이 있었다.

엄마는 종종 나를 그곳에 데려가 자장면을 사주셨다.

큼직하게 썰린 감자가 들어 있는 자장면이 맛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곳에 내가 따라가는 진짜 이유는 이 자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리로 된 진열대 위에서 주인을 기다리며 묵직하게 앉아있던 커다란 곰돌이 인형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었다. 나를 향해 자기를 데려가라며

미소 짓고 있는 듯한 그 곰돌이 인형을 갖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졸랐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물가와 비교해서 가격이 꽤 나갔던 비싼 가격의 인형이었다.



“엄마~나 저 곰인형~곰돌이 곰돌이이이이이”


떼를 쓰며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눈물까지 흘려도 엄마는 집에 인형이 몇 갠데 또 사냐며 내 등을 손바닥으로 짝짝 때릴 뿐 사주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나는 그 곰돌이를 갖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백화점에 갈 때마다 일부러 그 매장 쪽으로 엄마를 이끌고, 떼를 쓰고, 팔에 매달렸다. 꿈쩍도 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결국 나는 백화점 바닥에 드러누웠다.

곰돌이를 외치며 우는 내게, 엄마는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버리고 가겠다고 몇 번 말씀하시더니 진짜 가버리셨다.


‘진짜 가버리실 줄이야...’ 당황한 나는 ‘일어나서 엄마를 따라가야 하는데 어떡하지?’ 생각하면서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는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을 때야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찾아다녔다. 다행히 몇 걸음 걸어가니 기다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가 또 나를 버리고 가버리실까 봐 무서워서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따라갔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 곰돌이를 내 품에 안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 유치원에서 부모님께 선물을 미리 보내 달라고 했던 것이다.

엄마는 갈 때마다 떼를 쓰는 내게 질려버리신 건지 아니면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 건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곰돌이 인형을 사주겠다고 하셨다. 대신 지금 말고 며칠 밤만 더 자고, 산타할아버지가 주면 그때 받자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곰돌이가 나에게 오는 날인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나는 안된다고 지금 집으로 가져갈 거라고 또 떼를 썼고, 엄마는 한숨을 쉬며 그렇게 하라고 했다.


진열대에 앉아있는 여러 곰돌이 중 한 마리를 내 품에 안았던 그 포근함이 지금도 생생하다.

쇼핑백에 담지 않고, 양팔로 곰돌이를 꼭 끌어안고 집으로 와서 곰돌이에게 이불도 덮어주며 같이 자고, 밥도 먹이고 한동안 한 몸처럼 지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유치원에서 다른 친구들이 큼지막한 선물상자를 받을 때 조그마한 선물을 받아야만 했다. 곰돌이를 미리 당겨 받았기에 엄마는 대충 공책과 필통을 포장해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백화점 바닥에 드러누운 최초의 기억이며, 유치원에서 선물을 주던 산타할아버지가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이다.


엄마가 산타할아버지께 미리 선물을 주시는구나 생각하고 존재는 믿었었는데 유치원 옆방에서 산타 복장을 한 채, 수염을 붙이기 전의 선생님의 모습을 봐버렸다.


그 뒤로도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갖고 싶은 걸 안 사줄 때면, 집에 가는 내내 엄마한테 징징거렸고, 엄마는 그만하라며 내 등을 퍽퍽 때렸다.

나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 몸이 앞으로 밀리면서도 떼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화가 난 엄마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그러면 못된 나는 뛰듯이 따라가다가 뒤돌아 봐주지 않는 엄마에게 화가 나, 나눠 들던 짐을-그래 봤자 과일이나 채소, 김밥이 들어 있는 검은 봉지- 바닥에 내려놓고는 “이거 버릴 거니까 엄마가 알아서 해.” 하고는 막 뛰어가 버렸다. 이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엄마나 언니에게 자주 썼던 방법인데 지금 생각해도 조그만 게 진짜 못됐었다.


언니랑 엄마의 심부름으로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사서 올 때도 서로 양손에 한 보따리씩 들고 집으로 갔었다. 힘들다고 쉬었다 가자는 나의 투정에 언니는 빨리 가야 한다며 멈추지 않았다. 그때도 나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언니를 향해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버리고는 언니를 앞질러 어깨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내가 화가 났다는 걸 티 내기 위해-집으로 먼저 가버렸다.

그러면 언니는 먼저 집에 온 나보다 한참 뒤에 내가 버리고 갔던 짐까지 들고 도착했다.

몇 번을 그러다 언니는 더는 내가 버리고 가는 짐을 들어주지 않았고, 나는 몇 발자국 걸어가다 되돌아가 내가 버렸던 짐을 챙겨 악착같이 따라갔다.

더 이상,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는 떼를 써도 안 되는 일이 세상엔 너무 많고, 갖고 싶다고 다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따금 체념하는 법을 알아버린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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