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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설 Jul 29. 2020

세 번의 샤머니즘 체험

지금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현실에 대한 인정과 다독임이 아니었을까?


<첫 번째>


오랜 친구 H와 1년여 동안 세 번의 샤머니즘 체험을 했다.

그중 한 군데는 샤머니즘과 좀 거리가 있는 통계학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뭐 어쨌든.


처음 H의 건너 지인이 신내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H에게 “갓 신내림 받았을 때가 제일 용하다던데, 신발 떨어지기 전에 빨리 가보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였지만, 아직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소식에 아쉬워하며 몇 달을 기다렸다.

드디어 손님을 받는다는 소식에 문자로 예약을 하고, 그날만을 기다렸다.

나는 예전에도 몇 번 점집에 가본 경험이 있었다. 반면 H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너무 무섭고, 떨린다며 “어떡해”를 연발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우리가 제일 궁금한 건 결혼은 언제 하는지, 이직해도 괜찮을지 하는 것들이었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에 대한 막막함 때문이었을까. 무언가 명쾌한 대답을 듣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걸 그 사람에게 물어본다는 게 좀 웃기기도 하다.


나와 H는 열정적으로 우리가 사는 곳에서 2시간 떨어진 곳까지 갔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또 걷고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서 손부채질 해대며, 떨리는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뭐야, 이거...’ 우린 예약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2명 1시 예약을 2시 1명 예약으로 잘 못 알고 있었다면서, 근처에 있어서 금방 오신다고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다시 한번 떨린다며 호들갑을 떨며 기다리던 우리는, 잠시 후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시겠다고 하셔서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고, 곧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나오셨다.


“어느 분 먼저 볼래요?”


우리는 “같이 들어갈게요.”라고 대답했고, 방으로 들어가 그분과 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H와 누가 먼저 점을 볼지 속닥거리다가, 내가 먼저 보기로 했고,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알려드렸다.

그분은 종이에 받아 적으시더니 갑자기 여러 개의 방울이 달린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한참을 흔들어대는 통에 머리가 울릴 정도로 시끄러워 점점 듣고 있기 힘들었다.

‘으악~귀 아파’를 속으로 외치며 인상을 찌푸릴 때쯤 방울이 멈췄다.

갑자기 말투가 바뀌더니 대뜸 질문이 날아왔다.


“야. 너는 네 것 볼 게 아니라, 아버지가 큰일인데? 건강이 너무 안 좋으셔.”

지난주에 본가에 갔을 때, 봤던 우리 아빠는 매우 건강하셨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싶어 “어? 그럴 리가 없는데요.”라고 대답하자 많이 안 좋으신데 티를 못 내시는 거라고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자꾸만 검은 게 보인다면서 아버지가 잘못되실 것 같다는 불길한 소리를 해대는 통에 어안이 벙벙했다.

오방기라고 하는 깃발도 뽑아보라고 해서 몇 개를 뽑았는데 다 안 좋은 것들이라고 했다. 내가 잘 믿지 못하자, 그분은 그럼 다시 뽑아보라며 깃발을 휙휙 말아 손잡이 쪽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몇 번을 다시 뽑았지만 앞서 뽑았던 깃발과 같거나 똑같이 안 좋은 것들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가기 전에 본인이 빌어줄 테니 꼭 초 하나를 켜놓고 가라며 신신당부하시고는 나의 질문에 답해주시고는 H의 운세를 봐주었다.


3시간을 그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점집에서 3시간 동안 있는 기록을 세웠다. 그날 나는 거기에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들었던 안 좋은 말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고, 혼내듯 나무라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다가 바닥에 오래 앉아있던 탓에 가뜩이나 안 좋은 허리는 더 아팠고, 다리가 저려 몇 번을 굽혔다 폈다 하느라 무릎도 아팠다.


아빠가 잘못될 거라는 말에 팔랑귀, 쫄보 콤보인 나는 H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달 동안 빌어주겠다는 그 초를 10만 원을 내고 켜고 나왔다.


우리는 지쳤고, 집에 가려는데 무속인 분께서 밥을 사줄 테니 같이 먹고 가라고 했다.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계속 권하셔서 근처 식당으로 갔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낙지 비빔밥을 야무지게 먹고 헤어졌다.


어수선하고, 정신없던 첫 번째 점집 방문이 끝났고, H와 나는 초췌해진 상태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결론은 “아. 뭐야. 저런 이야기는 우리도 하겠다. 돈 내고 혼나기만 했어.”였다.


시끄러운 방울 소리와 요통만 남은 채, 첫 번째 샤머니즘 체험은 영 시원찮게 끝났다.


<두 번째>


첫 번째 무속신앙에 실망한 우리는 통계학으로 가기로 했다.


‘사주풀이’


소문대로 유명한 곳이어서인지 예약하고 한 달 정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그래도 이곳은 통계학에 더 가까우니까 좀 더 믿을 만하겠지?” 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예약한 날이 다가왔고, 나와 H는 퇴근하고 선생님이 계신 그곳으로 갔다.

퇴근하고 간 우리 둘과 손님을 계속 받은 선생님. 우리 셋은 어쩐지 다들 지쳐 보였다.

그래도 이번에 간 곳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을 수 있어 다리가 저리거나 허리가 아프진 않았다.

중년의 선생님은 우리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 이름을 받아 적으시더니, 사주와 이름 운세까지 봐주셨다.


분명 가기 전에 잘 맞추더라도 호들갑 떨지 말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겠다며 다짐했었는데 성격을 맞출 때마다 “오!!! 오! 맞아요.”를 추임새처럼 뱉어댔다.

선생님은 옛날부터 공부와 담을 쌓은 내게, 자꾸만 공부 운이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공부는 싫고, 글을 쓰고 싶어요. 선생님.”

“이름부터 바꿔. 그 이름은 외롭고, 분주하기만 하고, 돈이 안 모여.”

“제가 태어나기 전, 아빠가 작명소에서 돈 주고 지어온 좋은 이름이라고 했는데요. 선생님.”


세상에... 그런 이유로 하루아침에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바꿀 순 없었기에 그냥 웃어넘겼다.


우리의 열렬한 호응 때문인지 선생님께서는, 저 멀리 3년 뒤 운세까지 꼼꼼히 봐주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질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주변이 컴컴해졌다.

철학관은 쇼핑몰 내에 있었는데 영업시간이 끝나서 불이 꺼진 것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자꾸만 질문해대는 통에 나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며 기가 빨려 힘들다고 하셨다. 보안요원이 순찰을 하며 빨리 정리하고 나가 달라고 했다. 선생님은 문 닫힌 쇼핑몰에서 나갈 수 있는 곳까지 바래다주셨고, 나와 H가 화장실에 들렀다 가겠다고 해서 선생님은 먼저 가셨다. 화장실 앞에 서 있는 우리를 본 보안요원은 곧 모든 문이 닫히니 당장 나가 달라고 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나와 H는 문 닫힌 쇼핑몰에 갇힐 뻔했다.


사주풀이를 듣는 동안은 신기했지만, 이번에도 우리의 큰 기대와 달리 명쾌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뭐, 물론 3년 치를 봐주셨으니 맞는지 안 맞는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두 번째 샤머니즘 체험 또한 싱겁게 끝났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세 번째>


이쯤 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우린 도대체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지, 몇 달 뒤, 마지막이라며 한 곳에 더 찾아갔다.

너무 용해서 H의 지인과 그 지인의 회사 사람들이 다 다녀왔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엄청난 기대에 부풀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렇게 잘 맞춘단 말이지?!’

다행히 이번엔 가는 곳은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퇴근 후 가벼운 마음으로 운동할 겸 걸어갔다.

먼저 도착한 나는, 입구에서 H를 기다렸다 만나서 같이 들어갔다.

생활한복을 입은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거실 바닥에 앉아 기다리며, 먼저 와있는 손님과 함께 TV를 시청하며 순서를 기다렸다.


한 사람당 30분씩 봐주는데 먼저 온 손님들이 좀 밀려서 예약한 시간보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들어가기 전, 방문 앞에서 아저씨에게 봉투에 담아온 복채를 전달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자 중년의 여성분이 앉아있었고, 들어가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도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특이하게 이곳은 이름과 나이만 물어볼 뿐 다른 건 묻지 않았고, 대신 손을 달라고 양손을 내밀었다. 쎄쎄쎄 하듯 내 손을 잡고 중얼중얼 무언가를 외기 시작하셨다. 중간중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시더니 갑자기 동작을 멈추셨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무당의 과장된 몸짓을 보는 듯했다.


속으로 ‘오. 신기하다. 신기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너는 좀 더 일찍 오지 그랬냐며 자신이 좀 더 내 진로를 좋게 만들어 줄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하셨다.

말하지 않았는데도 오래전 내가 잠시 품었던 내 꿈을 이야기하면서 일찍 왔으면 그 직업으로 만들어 줬을 거라며 나보다 더 아쉬워하셨다. (오…. 세상에. 선생님 그건 말도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럼 이 세상에 꿈을 못 이룬 사람이 없어야 앞뒤가 맞는 거 아닌가요?)


제일 궁금한 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옮겨도 되는지였는데, 내 입에서 회사라는 단어만 나왔는데 어디 옮길 생각하지 말고 계속 다니라고 하셨다. ‘세상에...’ 잘 풀릴 거라면서 지금 만나는 사람과도 괜찮다고 하셨다.

특별히 더 해줄 이야기가 없다 하셨고, 그래서인지 나는 앞의 사람들보다 짧게 대화하고 나왔다. 신기하게도 그분이 언제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고 했었는데, 뜻밖에도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선 자리가 들어왔었다. 물론 하진 않았지만, 훗날 신기하긴 했다.


구체적인 내용 없이, 잘 풀릴 거라는 말만 들었던 세 번째 샤머니즘 체험도 끝났다. 나와 H는 근처에서 주꾸미 볶음을 먹으며 이야기했다.


“우리 이제 이런 거 보지 말자. 하나도 안 맞아. 이제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자.”

그 뒤로 우린 관심을 뚝 끊고 더는 샤머니즘 체험은 하지 않고 있다.


다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두고 보라며 본인 말이 맞을 거라고 했지만 의심 많은 나는 세 번의 경험을 지나오는 동안 다 신뢰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플 거라며 겁을 주던 첫 번째 무속인의 말과 반대로 지금까지도 우리 아빠는 매우 잘 지내고 계시다.  


점점 누군가에게 깊은 이야기를 공유하거나, 힘든 이야기를 하기가 꺼려진다. 내가 어두운 이야기를 하며 투정 부리면 듣는 사람도 힘들 테니까 그래서인지 들어주는 일에 더 익숙하기도 하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기에,  그들을 찾아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작 내가 궁금했던 건 막연한 미래가 아닌 지금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현실에 대한 인정과 다독임이 아니었을까? 자꾸만 다른 사람보다 뒤 쳐진 것 같고, 혼자만 궤도 밖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좋을 거라고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 세 번의 경험으로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가 나를 좀 더 믿고, 다독여 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했음을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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