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의 조건

시절인연에 대처하는 자세

by 섬섬

한때 즐겨 듣던 김목인의 노래가 있다.

노래 가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나열하다가 후렴구에서 말한다.

“모두가 외로워서래.”

외로움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해소된다. 하지만 사람을 곁에 두려면, 서로가 때로는 피곤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면, 애초에 모든 사람에게 그런 면이 있다고 믿고 사는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예고 없이 찾아온 인연을 무심코 유지하려 하면, 서서히 멀어지는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안타깝지만, 인연을 되돌리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괴로움 속에서도 결국 세월이 해결해 주고,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인연을 찾아 나서고, 다시 외로움을 반복하게 된다.


대부분의 인연은 갑자기 찾아오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공통의 관심사나 취미로 엮인 관계는 예상치 못한 기대감을 주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다. 그러나 관계의 끝을 예측하지 못한 채 깊이 빠져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외로운 시기에 적절히 마음을 나눌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은 분명 행운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함께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나 환경, 정치적 의견을 나누며 동질감을 느낀다. 그때 함께 나눈 대화, 카페의 분위기, 스쳐 지나간 강아지 한 마리까지도 소중한 추억이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멀어질 시기가 온다. 지역이 달라지거나, 마음의 거리가 멀어지거나. 언젠가는 반드시.


한때 소중했던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상대가 라넌큘러스를 좋아한다고 기억하고 있다가 꽃집을 지나며 ‘네가 좋아하는 꽃이네’ 하고 메시지를 보낸다고 해보자. 또는 만나서 ‘이번에는 네가 좋아하는 국물 떡볶이를 먹자’고 제안한다고 해보자. 상대는 기꺼이 그러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사이 상대는 라넌큘러스 대신 장미를 좋아하게 되었거나, 국물 떡볶이보다 파스타가 더 익숙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나는 과거의 상대를 기억하며 배려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변화한 상대에게 맞추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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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추억을 붙잡는 행동이 오히려 인연의 끈을 느슨하게 만든다. 싸우거나 섭섭해서 멀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저 서서히 서로에게 흥미를 잃고, 관계를 유지하려 억지로 노력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절친이란 일방적으로 형성되는 관계가 아니다. 함께한 순간이 즐거울 때는 서로가 깊이 신뢰하며 우정을 나눈다. 어떤 말 한마디에 혼자 감동해 ‘이 사람은 내 절친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상대도 같은 감정을 품고 있을까?


예를 들어, 친구가 ‘네가 사고가 나서 피가 필요하면 내 피를 기꺼이 나눠줄게’라고 했다고 하자. 그 말에 감동한 나는 친구의 생일에 명품 향수를 선물하며 정성을 쏟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한 친구가 다른 지인들에게도 비슷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나는 그저 외로운 마음에 ‘나한테 피까지?’라고 과대 해석했을 수도 있다.


이런 실수를 여러 번 겪으며 상처를 받았다면, 사람과의 관계에 점점 벽을 쌓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로움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인연의 기운은 좀처럼 막아내기 어렵다.

결국, 해결책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되, 떠날 때는 담담하게 놓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환갑이 넘어서도 계속 벽을 쌓을지 말지를 고민하며 살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되뇌일 것이다.

그게 다, 외로워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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