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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Sep 24. 2024

[단편소설] 네가 여행을 떠난다면 03

어느 날, 제주도에 여행을 떠난이들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하나. 큰 무지개가 뜨는 곳 _ 03


순간 세상에 둘뿐인 기분,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

무한한 사랑을 받는

그 느낌이 떠올랐다.


 

 요트는 무지개를 뒤로하고 다시 선착장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모두들 처음에는 큰 무지개에 관심을 갖는 듯 했지만, 각자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었다.


 모녀는 설탕이에게 손짓하지도, 이름을 부르지도 않은 채 그저 노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수는 설탕이가 뛰어놀던 무지개와 바다가 닿는 그곳을 핸드폰카메라에 담았다. 그렇지만 핸드폰에 찍힌 사진에는 흐릿한 무지개와 바다가 풍경처럼 담겨있을 뿐 설탕이의 모습은 없었다.


 지수와 엄마는 설탕이를 보았냐고 서로 얘기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얘기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것이 설탕이의 마지막 인사임을 서로 믿고 있었다.

 그저 간직하는 서로의 마음만 벅찰 뿐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모녀는 친구가 예약했었던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려 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지수 씨?” 라며 이름을 불렀다. 뒤를 돌아본 지수는 그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래전 첫 직장에서 사수였었던, 그리고 설탕이를 분양해 줬었던 윤 대리였기 때문이다.


 “윤 대리님이 어떻게 여기 계세요?”

 “지수 씨, 나 여기가 고향집이에요. 가끔 직장생활 힘들 때마다 고향에 내려가서 펜션 하겠다고 얘기 했었잖아요.”


  윤 대리 아니 이제 윤 사장인 그녀는 과거에 설탕이의 엄마 사탕이를 키우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사탕이를 고향에 두고 왔다가 직장에 취직하고서 사탕이를 키울 수 있는 집을 구하자마자 사탕이를 고향에서 데리고 왔었다. 중성화수술을 하기 전 태어난 새끼들 3마리 중에 제일 체구가 작아서 입양이 되지 못 했던 설탕이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가끔 윤 대리가 집을 비울 때 강아지를 돌봐주던 지수는 정이 들은 설탕이를 입양 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하면서 윤 대리와는 서서히 연락이 끊겼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를 다시 만나니 반갑기도 했지만, 사탕이와 설탕이의 한없이 해맑은 얼굴이 생각나 슬프기도 했다.


 윤 사장과 지수는 그날 저녁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로 밤을 샜다. 이미 하늘나라로 간 윤 대리의 사탕이 이야기, 지수가 회사를 나가고 대신 들어온 신입사원이 윤 대리의 남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서로의 근황을 쏟아내다 지수는 결국 얼마 전 설탕이가 사고를 당했던 이야기까지 꺼내어 눈물콧물을 쏟았다.

 설탕이에 대한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꺼내지 않던 지수는 모처럼 타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숙소를 떠나기 전, 펜션 앞의 바다를 바라보며 모녀와 윤 사장은 커피를 마셨다. 아무 말 없이 바다만 바라보던 셋의 침묵을 깨고 엄마가 말을 했다.

 “지수야 신기하다. 어제가 설탕이 간지 49일인 거 알고 있었지?”

 지수는 대답 없이 커피 잔만 빙글빙글 돌려대다가 외투에 있던 파우치를 꺼냈다.


 윤 사장은 펜션 옆 담장아래를 가리켰다.

 “지수 씨, 저기 동백나무 아래에 우리 사탕이의 유골을 뿌렸어요.”

 지수는 윤사장이 말한 붉은 동백꽃이 핀 나무 아래로 갔다. 땅 위에 떨어진 동백꽃잎들은 마치 처음부터 땅위에서 피어난 듯 생생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저, 이거 여기에 묻어줘도 될까요?”

 윤 사장은 말없이 삽을 가져와 작은 구덩이를 팠다. 지수는 조심히 조약돌을 꺼내어 검은 흙 사이로 하나씩 놓아주었다. 설탕이는 여기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 조약돌도 푸른 바다색을 닮았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모녀는 흙을 덮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사랑하는 내 강아지.”




 길 건너 바다 앞에서 파도가 휘몰아쳤다.

 갑자기 부는 바람이 제법 셌기에 모두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기 강아지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수엄마는 “어디? 어디?” 라며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소리 나는 곳을 따라가다 보니 윤 사장의 남편이 입구에서 흰 강아지를 내려놓고 있었다.

 강아지는 지수네 모녀를 보자 더 낑낑대며 오고 있었다.


 “근처에서 사고가 날 뻔한 모양이에요.

  어떤 젊은 여자가 덤프트럭이 오는데도 몸을 던져서 이 강아지를 구해줬대요.

  큰일날 뻔 했지 뭐에요. 사람들이 그 여자 분한테 박수 치고 난리였는데,

  이 강아지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근처에 강아지 가족이 있나 반나절을 찾아봤는데 아무것도 없고, 얘를 어떻게 할지…….”


  지수는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강아지와 눈빛이 마주치자 설탕이와 마주볼 때의 따뜻한 느낌들이 떠올랐다.

 순간 세상에 둘 뿐인 기분,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 무한한 사랑을 받는 그 느낌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말을 했다.


 “너 우리랑 같이 갈래?”


강아지는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더욱더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고 지수의 손을 핥으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어미의 품을 찾는 듯한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지수의 엄마는 강아지를 얼른 안아버렸다.


 “아휴, 별일이 다 벌어진다 했더니, 이러려고 설탕이가 여기로 우릴 불렀나보다.”


 지수 엄마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퍼져나갔다.

 둥실둥실 강아지를 안고 다니던 엄마는 강아지의 앞발을 흔들며 바다 너머로 인사를 했다.


 “고맙다. 설탕아! 고마워!”


 울음을 삼키며 외치는 소리가 바다 끝으로 멀리 퍼져 나갔다.


 그리고 갑자기 반짝하며 바다에서 하얀빛이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두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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