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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Sep 25. 2024

[단편소설] 네가 여행을 떠난다면 05

어느 날, 제주도에 여행을 떠난이들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두번째. 기 억 여 행 _ 2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걷다 보니

아내가 뛰어갔던 나무 숲이 나왔다.

나무 사이로 뛰어가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리조트 주변은 리조트를 빼고는 무척 외진 곳이었다.

 겁이 많은 아내가 인적이 드문 리조트 후문을 통해 산책길을 따라 어디로 갔을 것 같진 않았다.

 아내가 어디로 갔을지 단서를 찾아 보자면 당연히 그건 우리에게 익숙한 곳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어쩌다 다른 사람과 같이 갔던 곳이 좋으면 다음에는 서로를 데리고 갔었다.

 생각해 보면 부부애가 좋았던 것인지 다른 이들과 뼈 깊은 대화를 한 번도 한 기억이 없었다. 희정이와 사랑하게 된 후 부터는 오로지 둘만 부대끼고 지낸 것 같다. 둘이서만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고 늘 함께 했기 때문에, 둘이 한 번도 가지 않은 식당이나 카페에는 아내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 같이 들렀던 해녀들이 하는 해산물요리 음식점으로 먼저 찾으러 갔다.


 연애할 때부터 아내는 우리가 싸우고 나면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아내를 찾을 수 있도록 단서를 주었다. 일부러 여기 있을까 저기 있을까 찾아다니다 보면 수수께끼가 풀리듯이 아내는 우리가 같이 갔었던 장소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날 기다리지 않는 듯 외면하는 모습이었지만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좋아했던 해녀가 운영하는 식당은 우리가 제주도에 여행 올 때마다 들렀던 곳이다. 해녀식당이지만 가게 주인은 남자였고 아내와 나를 늘 반겨줬었다. 역시나 그 남자 사장은 웃으며 나를 반겨줬다.


 “사장님 저 기억나죠? 아내랑 여기 왔었잖아요. 성게비빔밥을 좋아해서 늘 그걸 시켰는데?”

 손님이 휩쓸고 간 식탁을 행주로 닦으며 남자주인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이고 그럼요. 두 분이 언제나 사이 좋아 보이십니다.”

 “혹시 제 아내가 여기 또 들르지 않았나요?”

 주인장은 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며칠 전 식당이 TV에도 나오더니 사람들이 워낙 많아 기억하기가, 허허.”


 식당 주인은 계산이요, 라며 주인을 부르는 소리를 따라서 계산대로 가버렸다. 계산대에서는 한 남자가 계산을 하며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아내도 성게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식당에서 나오다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쑤시개를 필요한 것보다 몇 개 더 챙겼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씨익 웃었고 별거 아닌 듯 나는 그 모습을 신경 쓰지 않았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었다. 한참 길을 걷다가 나타난 나무가 가득한 숲길에서 아내는 들떠 있었다.


 “여보, 여기서 저 나무들을 보면 한반도 지도같이 보이는 거 알아?”

 아내는 나보다 먼저 그 나무 사이로 달려갔다. 햇빛 속으로 사라지는 아내를 보며 천천히 뒤쫓아 가던 나는 곧 아내가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었다.

 다가가서 보니 놀랍게도 아내는 길가에 있는 선인장의 껍질에 식당에서 가지고 나온 이쑤시개로 낙서를 하고 있었다.

 ‘범준♡희정’

 이라는 글자를 새기는 아내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까지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화가 치밀었다. 내 직업은 산림청 공무원이었고 얼마 전 정년퇴임을 했다.

 청년시절에 공원을 관리할 때도,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 가끔 공원에  시찰을 다닐 때에도 나무에 새겨진 저런 글자를 보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인간들을 싫어했었다. 아니 선인장의 몸에 무자비하게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새겨버리고 가버리는 잔인한 인간의 행동을 더 증오했었다.

 근데 그 행동을 아내가 하고 있어서인지 무척 화가 났었다.

 나는 글씨를 새기던 아내의 손목을 세게 붙잡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미쳤어? 사람들이 보면 어쩔 거야?”

 아내는 미안해하기는커녕 살짝 혀를 내보이며 메롱 거리며 웃었었다.

 그런 모습은 저 멀리 있는 생각하기도 싫은 또 다른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결국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했었다.

 “이런 짓거리, 형근이하고 하던 거잖아!”

 형근이라는 이름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자 아내는 당황했는지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방향을 틀어 뛰어왔던 나무 숲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듯이 뛰어가 버렸다. 잘못한 건 아내인데 나보다 아내가 더 많이 성이 났었다.



 아마도 아내가 화가 난 것은 형근이라는 이름을 내가 입에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형근이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나의 대학교 동기였다.

 대학교 4학년 말쯤에 형근이는 대기업 입사를 앞두고 산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졸업을 앞두고 형근이는 그 당시 애인이었던 아내를 남겨두고 나와 등산을 하다가 같이 굴러 떨어져 세상을 떠났다. 살아남은 나는 아내를 위로하며 형근이의 빈자리를 채우며 가까워졌지만, 형근이의 존재를 지우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서로에게 고통스럽기도 했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형근이의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언의 금기사항 같았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산지 40년이 다되어 가는데 이제야 그 이름을 말해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니 아내가 화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게 나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아내의 행동에서 먼저 과거의 일이 떠오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형근이와 희정이가 연애를 하던 시절, 셋이서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오르다가 지쳐 쉬고 있을 때, 희정이는 주변에 있던 날카로운 돌을 들어 등산로에 있던 굵은 나무에  ‘형근♡희정’ 이라고 새기고 있었다.


 “나무를 이렇게 아프게 하면 어떻게 해?”

 라며 형근이는 희정이에게 핀잔을 주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희정이는 아랑곳없이 그런 형근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자연보호고 나발이고 나를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세워 놓고 그렇게 사랑하는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40년이 다되어가는 기억 속에서 형근이와 사랑의 눈빛을 주고받던 희정이는 갑자기 60살의 내 아내가 되어 길 위에서 나를 원망하듯 째려보고 있었다.

 씩씩거리며 걸어가던 아내는 뒤돌아 소리쳤다.


 “그게 갑자기 왜 생각이 났어?”

 아내가 원망하듯 외치는 소리는 현실의 내 앞에서 외치는 것처럼 귓가에서 맴돌았다.

 아내가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사라진 형근이와 희정이의 과거의 환영을 불러다 놓고 아내와 싸움을 시작하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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