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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섬 Sep 25. 2024

[단편소설] 네가 여행을 떠난다면 06

어느 날, 제주도에 여행을 떠난이들에게 일어난 환상적인 세가지 이야기

두번째. 기 억 여 행 _ 3


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걷다 보니

아내가 뛰어갔던 나무 숲이 나왔다.

나무 사이로 뛰어가던

아내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렇게 기억의 조각에서는 우리 둘은 싸운 게 확실하다.

 그렇다면 아내는 상심하다가 숙소를 나간 것 같다. 죽은 친구를 끄집어내어 심통을 부렸으니 내가 참으로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나간 게 아니라 어제 싸우고 숙소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기억에서 흔적 찾기는 무의미했다. 기억이 멈춰버려 더 이상 아내를 찾을만한 추억의 장소를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기도 힘들어졌다. 혹시나 충격을 받으면 기억이 돌아올까 싶어 머리를 벽에 찧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내 힘으로 불가능 하다면 이젠 공권력의 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내비게이션에서 근처의 파출소를 찾아서 들어가니 단출하게 경찰관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내를 찾아 달라고 말했다. 여행을 왔다가 아내를 잃어버렸다고, 싸워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관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행 오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싸워요. 실종이라…… 요즘엔 고사리 캔다고 할망들이 그렇게 길을 잃어요. 기다리다 보면 짠하고 나타날 수도 있고.”


 경찰관은 아내의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를 물어봤다. 나는 아내의 주민등록번호를 술술 말했다. 아직 치매가 심각하진 않은가보다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컴퓨터로 조회를 하던 경찰관은 모니터와 나를 몇 번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다. 아내 분 실종 신고 이미 되어 있어요. 아이고, 그것도 작년 5월이고, 박도현 씨 아세요?”

 “예? 제 아들이에요.”

 “아드님이 어머님 실종신고를 했네요.”

 “뭔가 잘못된 것 아니에요? 아내는 오늘 아침에 사라졌어요.”


 경찰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동명이인이 아니냐고 물어보려다가 아들의 이름까지 같을 리가 있을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아내가 사라진 건 확실하기에 나는 말도 안 된다며 난리를 피웠다. 결국 나와 실랑이를 벌이던 경찰관은 내가 묵는 리조트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리조트의 프론트 직원은 나를 알아보는 듯 했다. 경찰관이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이 어르신께서 리조트에 언제부터 묵고 있었어요?”

 직원은 내 이름과 방 호수도 모르면서 3일째가 된다고 곧바로 대답했다. 난 분명히 어제 아내와 같이 내려와서 오늘 잃어버린 아내를 찾으러 다녔는데 3일째라니 리조트 직원이 착각한 듯 하여 나는 신경질이 났다.

 “착오가 있나본데, 난 온지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무슨 소리에요?”

 경찰관이 내 말을 막으면서 다시 리조트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어르신하고 같이 오신 여자분 기억해요?”

 리조트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이 분은 혼자 묶고 계세요. 그런데 어제 아침에도 오셔서 같이 온 여자분 찾는다고 하셔서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어제도 내가 똑같이 아내를 찾으러 다녔다니, 그랬었나? 계속 나 혼자였나? 화를 낼 수 없다. 난 기억도 아내도 잃어버린 죄인이어서 더 이상 그들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경찰관에게 어제 아내와 갔던 해녀식당을 찾아가자고 했다. 식당에는 가게 주인이 아까처럼 웃으며 나를 반겨주다가 경찰관을 보더니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이분의 부인께서 실종되었다고 하셔서 조사 중입니다. 이분이 여기서 부인과 함께 오셔서 식사를 하셨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가게주인은 난감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가 장사가 잘되는 편이라 일일이 오는 손님들을 기억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면 이 어르신은 보신 적 있나요?”

 “다른 것은 기억이 안 나지만 오늘 오전에 오셔서 부인을 찾으시더라고요.”

 답답한 나는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사장님, 제가 제주도에 올 때마다 여기 들르잖아요! 어제 아내하고 내가 사이가 좋아 보인다고 했잖아요!”

 가게주인은 늘 웃던 얼굴을 정색하며 말했다.

 “어제는 휴무일이었어요. 그리고 내가 관광객 얼굴을 어떻게 다 기억해요? 섭섭해 할까봐 아는 척 해주는 거야, 참내”

 기억을 왜 못 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나는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나조차 아내가 없어졌는데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관은 나를 다시 파출소로 데리고 왔다. 경찰관은 나를 의자에 앉히고 종이컵에 커피를 한 잔 타서 주었다. 사무를 보던 다른 경찰관은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할아버지도 엊그제 실종 신고 들어오신 분이에요. 아들이 했나 봐요.”

 그 얘기를 들은 경찰관은 내가 온전치 못하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내가 기억이 오락가락 할지언정 귀는 멀쩡한데도 앉아있는 나에게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어르신, 아드님한테 연락 했으니까 모시러 올 거에요.”

 도현이에게 연락이 간 것 같았다. 서울에 있는 아들이 여기까지 오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자 경찰관이 말했다.

 “아드님 가까운데 살아요. 어르신”

 그리고 경찰관은 사무를 보던 옆 동료에게 말했다.

 “어쩐지, 저 어르신이 정신이 오락가락 하더라고요. 치매인가?”


 그들의 대화를 부정할 수 없는 나는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다가 시간은 내 기억보다 멀리 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이 며칠인가요?”

 “2019년 1월 5일입니다. 어르신”

 갑자기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봄인 줄 알았는데 다시 겨울이었다.


 아내는 얇은 봄옷을 입고 나갔을 것인데 1월이라니.

 흐트러진 시간의 기억이 무서웠고, 그 다음에는 아내가 추울까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노란색 티셔츠에 하늘색 꽃무늬 바지만 입고 나간 아내가 오들오들 떨고 있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아내가 왜 실종되고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경찰서로 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만 같던 아들 도현이가 한 시간 후 경찰서에 나타났다. 

내 기억보다 아들은 더 야위고 흰머리가 많았다.

 “서울에서 여기까지 빨리도 왔구나.”

 

아들은 나를 보자 안도하듯 한숨을 쉬었다. 


 “저 서귀포 지사로 옮겨 왔잖아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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