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은 제 3의 관계
어린 시절 엄마와 같이 길을 걷다가 큰 돌이 굴러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그 돌을 피해가고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돌을 발로 슬슬 밀어서 화단으로 비키게 했다.
“굳이 엄마가 이런걸 해?”
“애라도 걸려 넘어지면 어떡하니. 치워놓구 말지”
엄마가 남들보다 도덕적인 관념이 세서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기본 성격이었다.
치우면 되는 것을, 내가 하면 되는 것을.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산책을 하다가 조경정비트럭에서 큰 나뭇가지를 떨어트리고 간 것을 발견했다.
양쪽 차선에 차가 안다닐 때를 기다리다 후다닥 달려간 나는 나뭇가지를 등에 지고와서 옆 풀숲에 던지고 왔다. 살면서 그런 일이 있은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와 내가 닮은 것인지, 왜 사서 고생인지 하며 좋지도 싫지도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는 본인이 개성이 넘쳐 남들과 다르기를 원하니 그것이 굳이 부모를 배척하는 감정은 아니라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서 무심코 만든 깍두기나 잡채가 엄마의 손맛을 따라갈 때 흠칫하긴 했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평지풍파가 많은 20세기를 격어낸 부모님들은 책으로 쓰라면 몇권은 나올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조차 밀레니엄버그를 두려워하던 20대 시절에서 chatGPT에 감탄하며 받아들이는 40대의 세상이 너무나 변화무쌍해서 누구와 말문이 터지면 놀라운 세상에 거품을 물고 얘기를 하게 되는데, 어르신들은 나보다 더 할테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6.25전쟁을 격은 엄마에게 전쟁이 무서웠지 않냐고 물어본 적 있다.
동굴에 피신을 했는데 입구를 못찾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포대기에 쌓여 등에 업혀있던 동생은 죽어있고, 할아버지는 이불을 뒤짚어쓰고 혼자 도망가더라 이런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만약 내 인생에서 겪었으면 트라우마가 남았을 법했다.
그런데 남들 다 겪은 일이라 힘든건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시니 여든까지 살아온 인생이 짧은 것 같으면서도 길어서 그럴까 짐작만 할 뿐이다.
나이가 드신 엄마는 체력도 약해지시고 생각도 약해지셨다.
체력이 약해지시는 것은 노동과 시간으로 커버가 가능하지만 정신이 약해지시는 것은 자식이 감정으로 받아내기가 버겁다.
내가 타인의 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예민한 사람이라 더 그런 지도 모른다.
엄마가 던진 말을 그냥 장사치처럼 서비스를 바라고 던진 손님의 빈말처럼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가면 될 일을 가슴으로 받아들였고 참다가 강둑이 터지듯 한꺼번에 밀려나와 결국 눈물로 홍수를 지게 만들었다.
노모의 기억과 추억은 80여년의 경험치가 쌓여있고 낡아버린 뇌시스템은 가끔 왜곡된 기억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어쩔 때는 딸은 몰랐으면 했던 가족사의 비밀도 암호가 풀려버려 나온다.
최근에는 어떤 비밀도 풀려버린 듯 하다.
누군가 사랑의 본질은 함께 살려고 하는 운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감정을 억누르고 출가한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사랑 때문에 노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엄마의 늙어버린 육체는 아쉬웠던 마음이 참아지지 않고 암호를 누를 겨를도 없이 자식에게 툭툭 서운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서럽다며 나와 버린다.
마치 부모가 자식이 성공하길 바라는 막연한 기대 같기도 하고 자식 또한 부모가 알아서 자식과 분리해서 알아서 살아주길 바라는 서로에게 지켜지기 어려운 기대감이 섭섭함 밖에 맴돌고 있다.
그 말에 나는 상처를 받아버려 온 몸에 물기를 채우고 누군가 눈물을 터트리지 말아주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는 상처가 있길 바라던 시간에 문득 길가의 돌멩이를 치우던 엄마와 도로의 나뭇가지를 치우는 내가 교차가 된다.
나는 결국 엄마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노인이 될 지도 모른다.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훗날 나를 괴롭힐 것들이 되리라.
하지만 지금은 흐린 눈으로 흘려보내며 현재에도 미래에도 사랑 앞에는 확실한 정답이 없다고 되뇌인다.
혼란에 빠진 딸에게 엄마는 고민할 겨를이 없이 미안하고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낸다.
육체도 정신도 늙고 자신이 버거울 때 자식에게 미안하다고 먼저 손을 내미는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인생의 데이터가 압축되어서 나오는 결과값인지 사실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니면 결국 길가의 돌멩이를 치우던 그런 마음이었을까?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될 것을. 힘들면 내가 덜어주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