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x Apr 08. 2020

나에게 산티아고는 사람이었다

산티아고는 노답이다. 답은 모든 길에, 당신 옆에 있을지도.


프롤로그


5월 28일, 오 세브레이로(O'cebreiro).


 순례길 몇 안되는 오르막길을 걷는 날이었다. 햇볕은 따뜻함을 조금 넘어선 듯 했으나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누군가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 보다 잘 올라갔고, 가끔씩 한국어로 된 욕설이 들리기도 했으며, 정인의 ‘오르막길’을 부르며 길을 올라가는 자들도 발생했다(하지만 앞으로 오르막길에선 그 어떤 노래를 부르지 않는게 안전한 것 같다. 노래 부르면서 올라가다간 호흡곤란으로 천국까지 가버릴지도 몰라).


 알베르게는 우리가 올라온 산의 정상 부근에 있었다. 근처로 산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오랜만에 한국의 지형이 보이는 것 같아 반가웠다. 숙소는 공립 알베르게로, 약 180여명이 묵을 수 있는 곳이었으며 카운터가 따로 있었고, 시설도 최근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 관리가 잘되는 느낌이었다(이런 시설의 알베르게는 흔치않은데 사진이 없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10초만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평상시라면 반팔, 반바지만 입고 나가도 봄길 산책하듯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이 곳은 겉옷을 걸치고 나가야만 했을 정도로 바람이 강했다. 


한국 찜질방을 데려가면 정말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경치가 가장 잘 보일 것 같은 곳으로 간다. 도로를 따라 나있는 길 쪽으로 돌들이 가드레인처럼 쌓여있었고, 그 돌 위에 앉아 경치를 즐기기 딱 좋았다. 그리고 돌 위에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왜 저러는 걸까?' 하고 가서 돌을 만져보니 태양에 달궈져 뜨거웠다. 그리고 바람은 차가웠다. 밑에는 전기장판을 켰는데, 공기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단짠단짠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할까! 피로에 쩔었던 몸은 이내 풀리고 좋은 경치와 온도와 바람이 피곤을 날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같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오징어 맥반석구이 파는중.

 스스로를 굽다보니, '이 좋은걸 저들에게 알려야 한다! 다들 구워져야한다!'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마라톤 전쟁에서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달렸던 병사처럼 그들에게로 달려간다. 숙소로 가던 중간에 만난 성실형과 만섭이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침대에서 쉬고 있던 모든 친구들을 다 끌고 나왔다. 친구들을 데려가니 이미 형과 만섭이는 이미 굽혀지고 있었다. 그들도 알아버렸다. 이 자연 온돌방의 매력을.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환희만큼이나 내일부터는 걷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습관이 하나 생겼다. 좋은 것이 있다면 알려주고, 그 시간을 함께하기.

 순례길을 걸으며 좋았던 시간들 속에 혼자 있었다면 지금의 행복한 기억이 없었으리라 장담할 정도로, 함께해서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함께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은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었으며, 함께 매일을 걷는다는 것은 산티아고를 가지 않아도 될 만큼의 행복이었다. 실제로 산티아고를 도착했을 때도 제일 행복했던 이유는 함께있었기 때문이었다. 산티아고를 향한 화살표는 결국 사람을 향해 있었다. 


그 길, 내가 걸었던 산티아고의 사람들을 당신도 걸어봤으면, 느껴봤으면, 그리고 걸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시작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