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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x May 10. 2020

다섯 번째 산티아고 - 베르나데따

나를 위해 하루동안 기도해주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5월 9일, 토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 ?km 구간


우리는 길 위에서 예쁜 장소가 나오면 사진을 찍으면서 논다. 그러다보면 알베르게에 거의 마지막으로 도착한다. 어느 날은 놀다가 알베르게에 제일 늦게 도착해 빈 자리가 없어 10km를 더 걸어야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다음날에도 좋은 각도만 나오면 사진을 찍으면서 놀았다고 한다.


우리만 아는, 우리만 찍었을 법한 스팟!


그렇게 놀면서 걷던 길에 앞에 순례자 한 분의 행색이 눈에 띈다. 머리에는 띠를 둘렀고, 오른손으로 나무 지팡이 하나를 짚고 있었으며, 일반 배낭이 아닌 어깨에 맬 수 있는 신발주머니? 누가봐도 가벼운 행색으로 걷고 계셨다. 조금은 절뚝이는 모습에 걱정되긴 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긴 했다.


이번에도 정말 순례자의 느낌이 확실히 왔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아우라일까. 찍을 수 밖에 없는 모습이었고, 그녀가 하늘로 걸어 올라간다는 느낌으로 언덕배기를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 


정말 하늘로 쭉 걸어 올라갈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프린트까지 마치고 나서 보니 그 분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전 같으면 당했겠지만,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순례길에선 언젠간 길 위에서 다시 만날거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역시. 그녀가 뒤에서 오고 있었다. 나는 베르나데따에게 사진을 선물했다. 그리고 베르나데따가 사진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느꼈던건 자신의 크레덴셜을 꺼내셔서 도장을 찍는 한 부분에 나의 싸인을 해달라고 했다. 


 크레덴셜 한 칸에 도장 하나를 찍을 수 있는건 큰 의미이다. ‘여기를 방문했다’를 너머, 하루의 많은 시간에 직접 흘린 땀으로 만들어낸 여정이 담긴 ‘역사’같은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크레덴셜을 액자에 보관한다. 그런 한 부분에 내 싸인을 받아가다니! 이런 반응은 처음이어서, 너무나 영광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나의 싸인과 함께 그 날의 날짜를 적어주었다.


베르나데따와의 인증샷. 우측의 크레덴셜에 싸인해줄 때 너무 긴장해서 손이 벌벌 떨렸다. 지금 보니까 저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막 휘갈길껄.


 순례자들의 걸음과 시간이 다 다르듯, 우리는 먼저 출발했고, 길 위에서 한국분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쉬고 있을 때, 베르나데따를 또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날 부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난 매일 다른 사람을 하루에 한 번씩 기도하면서 걷고 있어. 오늘 하루는 동생을 위해 기도하면서 걷는 중이야. 내일은 내가 널 위해 기도하면서 걸어줄게. 너의 사진이 너무 고마운데, 내가 줄 수 있는게 이 것 밖에 없을 것 같아


 베르나데따에게 사진을 전해주기 전, 위의 알바로 이후 2명에게 사진을 선물해 주었다. 한 팀은 미국인 가족이었고, 한 분은 미국인 여성분이었다(공교롭게도 둘다 미국인). 그런데 사실 생각했던 반응은 아니었다. 유추하기로는 사진이 마음에 안들었거나, 아니면 그냥 작은 선물정도로 여겼던 것 같았다. 그 두 케이스를 겪고 나서, 사진을 좀 더 잘 찍기로 마음먹었었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 신경쓰되 마음두진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저 선물로 그들에게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너무나 큰 반응에 사실 얼떨떨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이 사진 한장 따위가 무엇이기에 나를 위해서 하루를 기도하며 걸어준다는 것입니까! 나는 크리스천이고, 그 기도의 의미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기도받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고있기에,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이런 선물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있는것이 순례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진심이 담긴 감사와 선물들, 너무 감사한 날이었다.


그녀도 구체적으로 말할 순 없으나 삶에서 힘든 시간들을 보내는 시간이었고,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타인을 위해서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다시 베르나데따의 모습을 보며 느껴지는 것은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어깨에 매었기에 이 길에서 만큼은 짐을 내려놓고 편하게 나의 시간과 타인을 돌아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베르나데따와 가족들, 그리고 이벳까지. 이벳 형(?)은 뒤에 등장할 예정이다.


우리는 그 뒤로 몇번씩 길 위에서 베르나데따를 만나면 포옹하고, 안부를 물으며 함께 걸었다. 이상하게 그녀는 우리와 함께 오랫동안 걷지는 않았지만, 항상 찾게되는 사람이고, 마음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길의 끝이라고 표현되는 피스테라에서 순례길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보지 못했던, 보고 싶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식당에 들어오는 그녀를 만났고, 그 레스토랑은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순례길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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