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신성적은 전교 1, 2등을 다투던 아이(개똥이, 가명)가 6월 모의고사, 9월 모의고사를 연달아 망치고는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러다가 성적이나 입시 이야기를 하면 짜증을 냈다.
9월 모의고사가 끝나면 곧바로 수시 원서접수 기간이다.
수시 원서 6장 중 2~3개는 안전 지원을 하자고 이야기를 하니 또 화를 낸다.
“내가 왜 수능을 망친다고 단정해? 수능 고득점 받아서 정시로 S대 가면 되잖아.”
(후~~) ‘참자. 참아. 고3 수험생 심기 건드려서 수험생 마음의 평온이 깨지면 소중한 며칠 또 날리는 거다.’
개똥이는 1학년때 내신이 잘 나와서, 2학년 때부터는 수시로 방향을 잡았다.
1학기 중간고사 – 1학기 기말고사 – 2학기 중간고사 – 2학기 기말고사.
그 사이사이에 수행평가. 그러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간다.
그리고,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생기부를 채우기 위한 자율 탐구학습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거나 또는 자율 탐구주제로 발표를 해야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다. 생기부에 한 줄이라도 더 넣으려고 하는 거다.
과목별로 한 학기에 500자씩 적을 수 있다. 수시를 노리는 이상 모든 과목을 최대한 채워야 한다. 휑하니 빈칸으로 놔둘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고3 학생, 특히 수시를 위해 생기부를 챙기는 학생은 N수생에 비해서 수능 공부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9월 모의고사를 보기 전까지 수능에 맞춰서 공부한 건 두 달 남짓이니, 수능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수시 원서접수를 하기 전에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잡았다.
개똥이의 담임선생님은 타교에서도 알아주는 입시 베테랑이라고 했다.
S대 원서 쓰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데, 다른 대학에 납치되는 전형을 쓸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우리 아이는 본인이 성향상 피를 못 볼 거 같다고 하여 메디컬은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고 문과로 진학했다.)
* 수시납치 : 수시전형에서는 6장의 원서를 쓸 수 있는데, 수시에 합격하면 정시에 지원할 수 없음. 수시에서 본인 희망대학 보다 낮은 대학을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해서 정시를 써보지도 못하고 낮은 대학에 가야 하는 상황을 수시납치라고 함. 같은 대학 내에서도 전형에 따라 면접유무 및 면접일정이 다른데, 수능 이후에 면접이 있는 전형을 지원하면 수능 성적을 보고 면접 응시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 납치를 피할 수 있음.
부모 마음도 간사한 게, 내신 성적으로 승승장구할 때는 S대 이하는 생각도 안 했는데, 모의고사 점수가 잘 안 나오니 Y대, K대라도 감지덕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S대만 고집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은 역시 베테랑이었다. 부모님을 만나기 전에 아이를 설득해서 Y대, K대에 면접이 없는(즉, 납치될 우려가 있는) 학교장 추천 전형을 쓰기로 이야기를 다 마쳤다고 하셨다.
“개똥이 내신이면 Y대, K대는 무조건 합격할 겁니다. 그동안 공부도 열심히 했고, 누구보다 활동적으로 탐구하고 학교생활했으니까, S대에서도 개똥이의 생기부를 높게 평가해 줄 겁니다. 부모님, 걱정 마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불안해하는 학부모에게 그냥 위로의 말을 던진 건지, 진짜 합격 가능성이 높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로부터 긍정적인 말을 들으니 마음에 위안이 됐다.
그렇게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도 개똥이가 공부하고 있는 자율 학습 교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집으로 오면서 입시가 참 도박판과 비슷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수능에서 어떤 성적을 받을 것인지를 예측해서 수시 카드를 배팅해야 한다.
그렇게 수시 원서접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오전에 인터넷으로 지원을 마치고, 18시에 경쟁률을 확인하기 위해 대학 입학처의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포커에서 히든카드 열어보는 심정으로...
와! 경쟁률이 높지 않다.
개똥이가 지원한 학과가 최고 대학의 최상위권 학과이다 보니 아이들이 눈치를 보면서 피한 것이다.
합격 인원의 3배수를 1차 합격시켜서 생기부 기반 면접을 보는 전형인데,
지원자가 3배수 이내였다. 1차는 그냥 합격! 개꿀이다!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건가?
아, 아니다. 방심할 수 없다. 여기 지원한 애들은 다들 각자 자기 학교에서 전교 1~2등 다투는 애들이다.
누구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끝까지 마음 놓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