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이 끝났는데, 우리 아이만 나오지 않았다.

by 와룡선생

수능 D-100일을 찍고 나서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자식새끼가 뭐라고 무신론을 고수했던 내가

수능 100일 전부터 매주 절에 가서 합격기원 촛불을 하나씩 켰다.


그 와중에도 개똥이는 고3 2학기 중간고사 공부를 했다.

고3 수험생은 3학년 1학기까지의 내신성적만 입시에 반영되기 때문에

(N수생은 3학년 2학기 성적까지 반영),

아이 엄마는 중간고사는 대충 보고 수능 공부를 하기를 내심 바랐지만,

개똥이는 내신을 놓지 못했다.


수능 최저를 못 맞출까 봐 노심초사하는 아이 엄마의 마음도 이해는 됐지만,

개똥이의 전략도 나름 수긍이 되었다.

① 수능 최저는 맞출 수 있으니 걱정 마셔라.

재수를 해도 수시를 한 번 더 노려볼 수 있으니 3학년 2학기 내신까지 챙겨야 한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10월 모의고사도 성적이 그다지 상향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서 이제 D-day는 한 자리 숫자로 진입했다.

집에는 지인들의 격려가 담긴 초콜릿과 찹쌀떡이 쌓였고, 드디어 수능날이 되었다.

나는 연차를 내고 집사람과 함께 수험생 특별 수송작전에 돌입했다.


32년 전 1회 수능을 치렀던 내가 아이를 수능 시험장에 데려다주는 날이 온 것이다.

수능 시험장은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낯선 동네였다.

수능 시험장 입구에서 200m 이내에는 주정차가 안 되므로, 수험생을 멀찌감치 내려주었다.

수험생인 개똥이는 물론 아이 엄마도 생각보다 덤덤했다.


수험생 수송을 마치고, 나와 집사람은 절로 갔다.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집사람도

이날만큼은 나와 함께 108배를 하고 귀가했다.

집에서는 수능 시험 시간표를 보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수능 시험은 제2외국어까지 선택하면 17:45분에 끝난다.

여유 있게 수능 시험 종료시간 30분쯤 전에 도착해서 기다렸다.

수험생 학부모님들이 하나둘씩 교문 앞에 모여들어서

시험 종료시간이 다가오니 교문 앞이 수험생 학부모님들로 꽉 채워졌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험 종료시간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수험생들이 나오지 않았다.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초반에 나오는 학생들에게 학부모님들이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 주셨다.

하루 종일 모든 집중력을 시험에 쏟아부었을 아이들,

이 순간을 위해서 12년 동안 고생한 아이들이 모두 내 자식 같았다.


그렇게 수십 명의 아이들이 나오고 나서, 또 한동안 수험생들이 나오지 않았다.

시험 종료시간 50분이 넘어서야 아이들이 우르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중 나온 부모님들과 만나서 모두 귀가했다.

개똥이가 나오면 뛰어가서 수고했다고 꼭 안아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개똥이는 원래 동작이 느려서 학교나 학원에서도 늦게 나오는 아이라서

오늘도 가방 챙기느라 늦게 나오는 줄 알고 계속 기다렸다.

이제 더 이상 나오는 수험생이 없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수험생을 기다리던 학부모님들은 모두 사라지고 우리 부부만 남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뭔가 잘못된 건가?

학교 수위 아저씨도 이상하다고 하셨다.

개똥이가 타종 이후에 답안지를 마킹하다가 부정행위자로 몰린 건가?

아이 엄마는 혹시나 해서 후문 쪽으로 달려갔다.

개똥이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간다.


뚜루루루루룩 뚜루루루루룩 뚜루루루루룩 뚜루루루루룩 뚜루루루루룩


‘받아라, 제발... 받아라, 제발......’

“응, 아빠 지금 나가.”

아이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정문 앞으로 나왔다.

“개똥아! 왜 이제 나왔어?”

“아빠, 역대급 사건이 있었어!”

“무슨 일이야? 너한테 문제 생긴 건 아니지?”

“응, 나도 피해자라서, 고사본부에서 상황 진술하고 나왔어.”


개똥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해서 후문 쪽으로 아이를 찾으러 갔던 집사람도 달려와서,

우리 세 식구는 아무도 없는 수능 시험장 정문 앞에서 다시 뭉쳤다.


시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무사히 세 식구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격적이고 행복했다.

개똥아, 진짜 수고 많았다.




개똥이가 수능 시험장에서 겪었던 “역대급 사건”은 며칠 후에 언론에 보도되었다.

궁금하시면 아래 검색어로 기사를 검색해 보시라.


“감독관 실수로 종료 3분 전 시험지 걷어”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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