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 이야기 41 Palestain, Bethlehem
이 바보 같은 놈아.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싫으면 싫다고 왜 말을 못 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에게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편해진 관계의 엄연한 공범이라고
-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중에서
내가 팔레스타인을 갔던 이유는 한때 국제 난민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옛 꿈이 생각나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인 뱅크시 때문이었다. 뱅크시는 일명 낙서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인데 아무도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을 만큼 베일에 감춰진 인물이다. 아마 뱅크시를 들은 사람들은 무슨 특이한 은행 정도로 생각하며 생소해할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지만, 우연히 인사동 거리를 걷다가 친구의 권유로 그의 작품전에 가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평소 나에게 있어 미술관이란, 뭘 그렸는지 알 수도 없는 작품 앞에 서서 뭐라도 생각을 해야만 할 거 같은 강박감이 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 봤던 그의 작품들은 달랐다. 재치 있는 유머로 날카롭게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 그의 감각은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게 충분했다.
이후 그의 팬이 되어 알게 된 것은 그가 사회비판적이고 풍자적인 그래피티를 세계 곳곳에 남겼는데, 그중 몇몇 작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사이에 세워진 거대한 국경장벽에 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피티 뿐만 아니라 베들레헴에 세상에서 가장 전망이 안 좋은 호텔이라는 별명을 가진 THE WALLED OF HOTEL을 세우기도 했다.
잠시 그 호텔의 갤러리를 천천히 들러보다 창밖을 바라보니 굳건히 세워진 회색 콘크리트 장벽이 보였고, 역시 소문대로 최악의 전망을 가진 호텔임은 틀림없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는 똑같은 장벽이 세워져 있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면은 달랐다. 누군가의 평화를 위하여 가로막은 장벽은 결국 누군가의 평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꿈꿔 온 버킷리스트를 이루었지만 목표 달성의 기쁨보다는 안타까움이 마음속을 채웠다.
다시 호텔 밖으로 나와 그의 작품을 그래피티를 찾아 나서자 어느 낯선 남성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 남성의 이름은 토니였고 미용실은 운영하는 헤어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그러더니 덜컥 자신의 미용실에 가서 한번 스타일을 바꿔보지 않겠냐는 내게 물었다. 대뜸 다가와 머리를 해주겠다는 제안이 조금 뜬금없었다. 아무리 볼품없는 머리라고 하지만 기름진 머리와 헝클어진 머리는 나의 자유로움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굳이 미용실에 가서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이번에 토니는 그래피티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보더니 뱅크시에 대해 말을 꺼냈다. 뱅크시의 작품은 베들레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찾아다니지 말고 자신의 도움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의 호의는 감사하게 받아들였고 그는 몇 군데의 뱅크시작품으로 나를 인도했다. 곧이어 점심시간이 되자 이번에는 점심을 직접 대접하겠다며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니가 내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할지라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를 무턱대고 따라가기에는 마음속에 왠지 모를 껄적지근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 어머니가 아프셔서 혼자 점심을 못 드셔. 그래서 나는 지금 집으로 가야 해. 네가 원한다면 같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싶어. 그런데 너에게 강요하지는 것은 아냐.
초면부터 뭔가 억지로 엮어진 것만 같아 아직 그와의 관계가 못 미더웠지만, 어머니를 챙기는 그의 따뜻한 마음에 일단 한번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다행히 그의 집은 뱅크시 호텔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그의 집사진과 대략적인 위치를 보내 두었다. 그렇게 사진을 전송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가니 그의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주시니 경계의 마음을 한층 가라앉았다. 이후 토니는 우리가 먹을 점심을 준비하기로 했고, 그는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내게 샤워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뜬금없는 제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샤워하는 무방비 상태 동안에 무슨 일을 벌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기에 샤워를 요구(?)하는 그의 말을 거절했다. 이후로도 그는 집요하게 내게 샤워를 요구했고, 그것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핸드폰에 있는 어느 독일인 남성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보니 독일인이라는 사람은 팬티 바람으로 아주 편하게 자고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여주며 토니는 마시지를 한번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며 애걸하는 듯한 제안을 또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무언가 호의를 베푸는 것 같았지만 계속되는 집착 같은 부탁에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딱 10초 정도만 마사지를 받다가 간지럽다고 말하면서 그만두자.’
그렇게 그의 집요함에 못 이겨 바닥에 매트를 하나 깔고 엎드려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나의 상의를 목 부분까지 확 올려 제치고는 나의 맨살에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토니 정체가 무엇인지, 나를 초대한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지 대한 의심이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그는 나의 등을 꾹꾹 누르는 동시에 살살 어루만졌고, 그다음에는 허벅지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바닥이 허벅지를 비비기도 하고 흔들기도 했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괴상한 마사지였다.
‘이 마사지는 도대체 뭐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엎드려 있는 나의 다리를 번쩍 들고, 자신의 무릎 위에 나의 허벅지를 올렸다. 그 이후 그의 손은 내 허벅지 사이로 점점 가까이 오더니 마침내 나의 소중한 부분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실수인 척 그 은밀한 곳을 터치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실수라고 하기에는 점점 그 빈도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나의 찝찝했던 생각은 더 이상 의심이 아니라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 순간 나는 당장 몸을 일으켜 세웠고, 가야겠다고 말과 함께 도망치듯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굉장히 불쾌했고 거북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쫓아올까 봐 최대한 그의 집으로부터 멀리 도망쳤다. 그렇게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쯤 너무 당황해서 눈두덩이가 파르르 떨려왔고, 뛰는 심장은 금방이라도 늑골을 부수고 나올 정도로 격하게 요동쳤다.
과연 이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것이 자칫하면 정말 실제가 될 뻔한 아주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물론 애초에 께름칙한 것에 엮이지 않아야 했지만 여행에서의 모험은 때론 분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다. 목숨은 한 개라고 되새겼던 날이 고작 엊그제 일인데 또다시 몸소 느끼고 나서야 귀중한 교훈을 얻고야 말았다. 부디 돌아가는 날까지 무탈하자....
그러나 오늘따라 유난히도 잠드는 밤이 불쾌하고 찝찝한 날이다.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듯 나의 같은 실수는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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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불쾌한 것들을 분명히 표현할 줄도 알아야 했고, 성적으로 다가오는 토니에게 단호하게 NO를 외칠 줄 알았어야 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고, 미움받을 용기 또한 필요했다. 그것은 오로지 나 밖에 할 수 없는 내 선택 영역이었으니 말이다.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못하는 나는 결코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한 욕구나 소망은 곧 흔히들 말하는 '호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오늘 나는 비록 호모는 아니었지만 호구임은 분명했다. 또다시 몸소 느끼고 나서야 귀중한 교훈을 얻고야 말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잠드는 밤이 불쾌하고 찝찝한 날이다.
나는 마치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처럼 내가 화를 내거나 나쁜 소리를 하면 왠지 모르게 내 맘이 불편해진다. 그렇다 보니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못하거나 누군가의 제안에 거절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마치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의 끈질긴 집착에 웃으며 거절하다 계속해서 여지를 주었던 것 같다.
나의 착한 아이 증후군은 비단 팔레스타인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 어딘가를 여행했을 때 잠시 한인숙소에 머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잠시 나를 불러 혹시 여행 계획이 없으면 자기가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저씨와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정보 전달보다는 마치 설교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설교가 계속될수록 아저씨가 말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 호화스러운 것들이었다. 50만 원에 육박하는 투어비, 하루에 10만 원이 넘는 호텔, 어디 소문난 맛집, 값 비싼 기념품. 그리고 아저씨는 계속해서 "여행에 왔으면 한 번쯤은 이렇게 해야지", "여행은 말이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정중히 "제가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네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의 반응은 당황스러웠다.
"에이 여행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언제 돈 써보겠어, 이런데 와서 쓰고 여행하면서 쓰는 거지. 뭘 모르네 정말."
그 아저씨는 자신의 여행을 내게도 대입하며 마치 자신이 추구하는 여행만이 가치 있는 것처럼 내게도 그것을 주입하려 했다. 없는 형편에 박박 긁어서 떠나온 나의 사정은 전혀 고려도 하지 않았고 마치 자기가 하는 여행만이 최고의 가치인 듯 말하는 그의 말이 굉장히 불쾌했다. 그다음에 이어 그는 지금 해외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업계획, 한 때 한국에 있을 때 무역회사에서 얼마나 잘 나갔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그의 거대한 대서사시를 하나씩 하나씩 펼쳐나갔다. 정말이지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괜히 아저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의 순진한 호응에 아저씨는 끝도 없이 그동안의 기나긴 생애를 읆어나갔다. 얼마나 함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식사를 다 마친 밥공기에 남아있는 쌀 톨이 건조하게 말라붙은 누룽지로 변해 있었다. 그날 나는 아저씨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물론 아저씨의 말에 듣기 싫다며 박차고 나가야 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아저씨가 자신의 기준으로 나의 여정을 무가치한 것으로 일반화시키며 말할 때는 불쾌했던 나의 의사표현을 했어야 했다. 나는 내가 불쾌한 것들을 분명히 표현할 줄도 알아야 했고, 성적으로 다가오는 토니에게 단호하게 NO를 외칠 줄 알았어야 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고, 미움받을 용기 또한 필요했다. 그것은 오로지 나 밖에 할 수 없는 내 선택 영역이었으니 말이다.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못하는 나는 결코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한 욕구나 소망은 곧 흔히들 말하는 '호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오늘 나는 비록 호모는 아니었지만 호구임은 분명했다. 또다시 몸소 느끼고 나서야 귀중한 교훈을 얻고야 말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잠드는 밤이 불쾌하고 찝찝한 날이다.
- 날씨가 더우니까 가서 샤워하는 게 어때?
- 아니야 괜찮아, 나 땀 안 흘렸어.
- 그래도 찝찝하니까 가서 씻어.
- 아니야, 어차피 밥 먹고 나가면 또 땀날 텐데 뭘.
- 그래도 집에 있는 동안은 상쾌하게 있어야지, 따뜻한 물도 잘 나오니까 어서 씻어.
- 아니야, 나는 원래 자기 전에만 씻어서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나 샤워하는 무방비 상태 동안에 무슨 일을 벌어질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기에 샤워를 요구(?)하는 그의 말을 거절했다. 이후로도 그는 집요하게 내게 샤워를 요구했고, 그것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핸드폰에 있는 어느 독일인 남성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 이거 봐봐, 독일에 있는 내 친구인데 며칠 전에 우리 집에서 자고 갔어.
그 독일인이라는 사람은 팬티 바람으로 아주 편하게 자고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여주며 토니는 오늘 하루 자고 가는 게 어떻겠냐며 애걸하는 듯한 제안을 또다시 시작했다.
- 오늘 괜찮으면 여기서 자고 가. 좋은 침대로 마련해 줄게.
- 아니야, 나 내일 이른 아침 텔아비브(이스라엘의 수도)로 가야 해.
- 여기서 일찍 버스를 타고 가면 갈 수 있어, 내가 알려줄게.
- 아니야, 이스라엘에 있는 내 친구가 걱정할 거야, 다음에 와서 자고 갈게.
- 오늘 자고 가면 같이 물담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
- 나도 그러고 싶은데... 미안해 다음에 와서 자고 갈게.
- 근데 너 혹시 마사지 좋아해?”
- 아니, 나 간지럼 타서 마사지 같은 거 안 받아.
- 나 마사지 진짜 잘하는데 한번 해볼래?
- 나 마사지받는 거 너무 안 좋아해.
- 내가 정말 잘해줄게 한번 누워 봐 봐.
- 아니야, 누가 내 몸 만지는 거 정말 싫어
- 그러지 말고 한번 누워봐 딱 1분만, 그래도 싫으면 정말 안 할게.
그는 계속 무언가 하나씩 호의를 베푸는 것 같았지만, 계속되는 집착 같은 부탁에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딱 10초 정도만 마사지를 받다가 간지럽다고 말하면서 그만두자.’
그는 바닥에 매트를 하나 깔고 나에게 엎드려 누우라고 했고 나는 엎드려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그는 나의 상의를 목 부분까지 확 올려 제치고는 나의 맨살에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토니 정체가 무엇인지, 나를 초대한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지 대한 의심이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그는 나의 등을 꾹꾹 누르는 동시에 살살 어루만졌고, 그다음에는 허벅지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바닥이 허벅지를 비비기도 하고 흔들기도 했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괴상한 마사지였다.
‘이 마사지는 도대체 뭐지?’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는 엎드려 있는 나의 다리를 번쩍 들고, 자신의 무릎 위에 나의 허벅지를 올렸다. 그 이후 그의 손은 내 허벅지 사이로 점점 가까이 오더니 마침내 나의 소중한 부분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실수인 척 그 은밀한 곳을 터치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실수라고 하기에는 점점 그 빈도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당장 몸을 일으켜 세웠고, 가야겠다고 말과 함께 도망치듯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굉장히 불쾌했고 거북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쫓아올까 봐 최대한 그의 집으로부터 멀리 벗어났다. 동시에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너무 당황해서 눈두덩이가 파르르 떨려왔고, 뛰는 심장은 금방이라도 늑골을 부수고 나올 정도로 격하게 요동쳤다.
이후 이스라엘에 있는 친구집에 돌아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번 일은 정말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과연 여행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것이 자칫하면 정말 실제가 될 뻔한 아주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나는 마치 착한 아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처럼 내가 화를 내거나 나쁜 소리를 하면 왠지 모르게 내 맘이 불편해진다. 그렇다 보니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못하거나 누군가의 제안에 거절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하면 마치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의 끈질긴 집착에 웃으며 거절하다 계속해서 여지를 주었던 것 같다.
나의 착한 아이 증후군은 비단 팔레스타인에서만 있었던 일이 아니었다. 며칠 전 어딘가를 여행했을 때 잠시 한인숙소에 머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잠시 나를 불러 혹시 여행 계획이 없으면 자기가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저씨와 함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정보 전달보다는 마치 설교에 더 가까웠다.
그리고 설교가 계속될수록 아저씨가 말하는 것은 내게는 너무 호화스러운 것들이었다. 50만 원에 육박하는 투어비, 하루에 10만 원이 넘는 호텔, 어디 소문난 맛집, 값 비싼 기념품. 그리고 아저씨는 계속해서 "여행에 왔으면 한 번쯤은 이렇게 해야지", "여행은 말이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정중히 "제가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네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저씨의 반응은 당황스러웠다.
"에이 여행은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언제 돈 써보겠어, 이런데 와서 쓰고 여행하면서 쓰는 거지. 뭘 모르네 정말."
그 아저씨는 자신의 여행을 내게도 대입하며 마치 자신이 추구하는 여행만이 가치 있는 것처럼 내게도 그것을 주입하려 했다. 없는 형편에 박박 긁어서 떠나온 나의 사정은 전혀 고려도 하지 않았고 마치 자기가 하는 여행만이 최고의 가치인 듯 말하는 그의 말이 굉장히 불쾌했다. 그다음에 이어 그는 지금 해외에서 준비하고 있는 사업계획, 한 때 한국에 있을 때 무역회사에서 얼마나 잘 나갔는지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그의 거대한 대서사시를 하나씩 하나씩 펼쳐나갔다. 정말이지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괜히 아저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는 나의 순진한 호응에 아저씨는 끝도 없이 그동안의 기나긴 생애를 읆어나갔다. 얼마나 함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식사를 다 마친 밥공기에 남아있는 쌀 톨이 건조하게 말라붙은 누룽지로 변해 있었다. 그날 나는 아저씨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물론 아저씨의 말에 듣기 싫다며 박차고 나가야 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아저씨가 자신의 기준으로 나의 여정을 무가치한 것으로 일반화시키며 말할 때는 불쾌했던 나의 의사표현을 했어야 했다. 나는 내가 불쾌한 것들을 분명히 표현할 줄도 알아야 했고, 성적으로 다가오는 토니에게 단호하게 NO를 외칠 줄 알았어야 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고, 미움받을 용기 또한 필요했다. 그것은 오로지 나 밖에 할 수 없는 내 선택 영역이었으니 말이다.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못하는 나는 결코 착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에게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한 욕구나 소망은 곧 흔히들 말하는 '호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오늘 나는 비록 호모는 아니었지만 호구임은 분명했다. 또다시 몸소 느끼고 나서야 귀중한 교훈을 얻고야 말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잠드는 밤이 불쾌하고 찝찝한 날이다.
낭만 없는 여행 에세이 담고 있습니다.
글/ 사진_ Instagram@jongmin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