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마음 속 어딘가에 결핍이 있지 않은 사람이 예술을 즐길 리가 없다는 말을 참 좋아한다.
반대로 어딘가에 결핍이 있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는 예술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고도 생각한다.
<오디션>의 남여 주인공을 두고 누가 잘못을 했니 안 했니, 그런 꼴을 당해 마땅하니 아니니 하는 설왕설래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 보고 판결문 쓸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사법적, 응보적으로 접근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냔 말이다. 서양 공포영화에서 수없이 죽어나가는 가족들은 잠긴 지하실을 부주의하게 열었다는 죄밖에 없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양형 기준을 논할 셈인가. 시게하루와 아사미 둘 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게하루는 가짜 오디션을 열어 재혼 상대방을 찾겠다는 정신나간 짓을 저질렀고, 아사미는 그런 시게하루를 말 그대로 썰어 버린다. 현실에서야 둘 모두 지탄받아 마땅한 인물들임에 이견이 없겠지만, 반대로 오로지 반듯하기만 한 이야기를 구태여 영화로 만들 이유가 있겠는가.
아사미가 사라진 시점을 기준으로 영화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면 전반부는 얼핏 통상적인 로맨스 코미디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가짜 오디션을 연다는 발상 역시 부도덕적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설정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상법칙을 위배하는 컷 편집이나 틀어진 화면(장면 1), 불안정한 인물 배치 등을 통해 계속해서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오디션 시퀀스에서 아사미를 비롯한 지원자들이 등장하는 컷은 항상 그들이 화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장면 2) 반면 시게하루는 화면 사이드로 밀려나는 컷이 빈번하게 삽입되어, 표면상으로는 오디션을 시게하루와 요시카와가 주도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것을 암시한다. 간혹 시게하루와 요시카와만이 나오는 샷에서는 어김없이 사선 구도를 잡아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야기한다.(장면 3) 또한 180도 법칙을 위배하여 시게하루와 아사미의 대화가 서로 이어지지 않고 단절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위와 같은 샷들이 반복적으로 삽입되기에 관객은 전반부 내용을 로맨스 코미디처럼 받아들이면서도 시게하루를 그 로코의 주인공으로 인정하기에는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다. 불안정성을 계속해서 축적하다가 이를 한 번에 폭발시키는 장면이 바로 문제의 마대자루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장면 4)이다. 해당 장면은 직관적으로 기괴함과 동시에 구도상으로도 매우 잘 설계되어 있다. 관객들은 일차적으로 아사미의 크리피한 자세를 보고 기겁을 하고, 마대자루로 시선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정체를 궁금해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자리에 있는 전화기에 시선이 도달하면서 전화를 '매우 광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아사미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향후 마대자루와 전화가 각각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기능적 역할에도 매우 충실한 샷임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상깊게 본 마지막 10분 시퀀스보다 이 장면 하나가 더 공포스럽고 아름답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시게하루는 점점 날것의 자신을 대면하게 된다. 오디션을 시작하기 전까지 시게하루는 매우 모범적인 사회의 일원이자 가장으로 보였다. 그러나 실상 그는 모범적이었다기보다는 지극히 수동적이었던 것에 가까웠다. 재혼은 아들의 제안에 의해 결심했고, 오디션 발상 역시 친구인 요시카와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중요한 순간마다 스스로 결정한 것이 없으니 외견상 잘못한 것도 없어 보였을 뿐이다. 오디션 내내 심드렁하다가 아사미의 순번에서 적극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고, 오디션이 끝난 뒤에도 직접 전화를 걸었던 순간 그는 수동적 인간에서 적극적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로 인해 시게하루는 자신의 욕망을 직면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아사미가 타 둔 약을 먹고 쓰러지는 순간이 환상 속에서 자신의 실체와 직면하는 순간(장면 5)이다. 그는 사실 회사 직원, 가정부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재혼 상대를 갈망했던 것으로 보아 시게하루는 이와 같은 일회적 관계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예컨대)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기를 원하는 욕구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아사미는 시게하루에게 있어 무의식 속으로 숨겨 왔던 자신의 부정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심리적 그로기 상태의 형상화이다. 마지막 10여분의 고어 시퀀스는 그 뒤에 따르는 부가적인 내용일 뿐 진짜 공포는 내가 보고 싶지 않던 내 모습이 눈앞에 적나라하게 전시되고 마는 순간이다.
아사미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려서부터 지속적인 학대에 노출되어 유의미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시게하루가 아들을 걱정하자 자신만 봐 주지 않는다고 극도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고 싶다, 내지는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던 것은 이 쪽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중간 웬 여자아이가 히로인을 찾는다는 내용의 라디오를 듣는 장면이 삽입되는데 아마도 아사미의 어린 시절의 플래시백일 것이다. 즉, 아사미는 현재의 학대를 견디면서 미래에 자신이 히로인이 되어 이 지옥을 벗어날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사회에서(또는 타인으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지 못한 두 사람은 후반부에서 볼 수 있듯이 서로를 완전히 파괴하고 만다. 사랑 없는 사회의 대가는 이렇게 참혹하다. 편의상 사랑이라고 칭했지만 사실 최소한의 연대의식도 사라진 파편화된 사회라 봐도 될 듯 하다.
극중에서 시게하루의 아들(시게히코)은 다른 인물들과 이질적이다. 잠깐 여자친구가 있기는 했지만, 곧이어 여자는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면서 사이가 멀어졌거나 결별한 듯한 뉘앙스를 보인다. 새로 발굴된 공룡 화석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등 타인과의 교감보다는 자신의 관심 분야인 생물학에 더욱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타인에게 목말라 있는 아사미나 시게하루와는 차이가 있다. 화석은 '과거'의 생물의 심상이다. 즉, 시게히코의 세계는 살아 있지 못하고 과거 속에 박제되어 있다. 이런 모습이 향후 일본에 나타난 초식남 세대를 예견한 것이라면 과잉 해석일까.(과잉 해석 맞는 것 같다) 그렇다면 아사미를 저지하고 아버지를 구출하는 데까지는 성공한 시게히코의 미래는 과연 희망일까 절망일까. 과연 이전 세대가 실패한 분절화&파편화된 사회를 극복하는 데에 성공했을지, 그리고 10년 간격을 두고 일본을 따라가는 우리는 성공할 수 있을지 영화 밖에서도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