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얼마 전 동기 중 한 명이 퇴사를 했다.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내 미래가 깜깜해 보여도 저렇게 현명한 사람이 선택한 직장이라면 그래도 한 번 더 이 곳을 믿어 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하고 직장 연수원에서 독서모임 비스무리한 걸 했었는데 그 친구가 선택한 게 이 책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다시 발견하니 마음이 좀 아프다. 어떤 심정으로 퇴사를 결심했을지는 내가 가늠할 수가 없지만, 아무래도 좋으니 떠나간 그 곳에서는 평안하기를.
아무튼 각설하고, 세상은 근본적으로 외롭고 빈곤하고 불쾌하고 야만적(ft. 토마스 홉스)이기까지 하다는 입장에서 이렇게 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들은 근원적으로 경계심이 든다. 어린이가 소재라는 이유로 추한 현실에서 애써 눈을 돌리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 어린이들이 원래 착~해빠졌다가 사회에 물들어서 하나같이 나쁜 어른들이 되는 것이겠냐고. 하지만 그래서인지 저자는 어린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는 듯 하다. 요즘 유행하는(사그라든 것 같기도?) 육아 예능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금까지 시청자 중 '어른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을 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시청자 중에는 '어린이'도 있으리라는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부모 등의 케어를 받는 아이보다는 그렇지 못한 아이가 TV를 친구 삼아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민들어지면 좋겠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모습을, 함께 노는 즐거움을, (중략) 세상이 멋진 집이라고 어린이를 안심시키면 좋겠다.
이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는 당연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보여 줄 아름다운 것들이 이 세상에 남아 있기는 한가, 아니 남아 있더라도 보여 줄 필요가 있는가 못된(?) 의문이 드는 요즘이다. 어린 왕자의 지적대로 어른들은 장밋빛 벽돌과 제라늄과 비둘기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오로지 10만 프랑짜리 집에만 눈동자가 커지는데 아이들에게만 그걸 가려 버리는 건 기만 아닌가. 어른들이 무슨 낯으로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힐 수 있을까. 거기 있는 위인들이라는 게 대부분이 대의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포기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피되는(?) 형태의 인간 유형들일 텐데. 이렇게 자꾸 책 안과 밖이 충돌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물론 이게 작가의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지적대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잘못이 있다고 할 것이다.
어린이와 정치를 연결하는게 불편하다면, 아마 정치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 보기에도 민망하고 화가 나는 장면들을 어린이들에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요즘 저출산 문제를 두고 경제가 문제다 보육이 문제다 말들이 많지만 아무튼 그 모든 지적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점은 이미 태어난 어른들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 같다. 행복하지 못한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이 어린이들에게 자랑스레 내보이기에 부끄러운가. 자랑스럽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자신 있게 내놓을 수는 있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염치로 어린이들에게 태어나 달라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본인이 스스로 동의하고 태어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지만 이런 불공정 계약이 또 어디 있는가.
원래 이 책이 이렇게 냉소적인 내용이 아닌데 요즘 기분이 그래서 너무 toxic하게 됐다. 하지만 이것도 감상은 감상이니 윤색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둔다. 어느 새 나도 작가가 지적하는 냉소적인 어른이 되어 버렸네. 십수년 전의 나에게 돌아가서 이게 너의 미래야 하고 보여 주기에도 너무 부끄러운 모습이다.
이런 사람이 되어서 미안해. 하지만 나도 최선을 다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