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우(긴츠 질발로디스, 2025)

by NYX


극장 상영용 애니메이션은 반드시 답변해야만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왜 실사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어야 하는가?


단순히 실사 영화에 그림 스킨을 씌운 것이 결과물이라면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의 하위 개념에 불과하다고 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애니메이션들은 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특히 표현 기법의 측면에서 눈부신 진화를 거듭했다. 그중 최근 트렌드의 선두에 서 있는 쪽은 미국 카툰체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스파이더맨>이다. 형광색에 가까운 원색을 화면 전체에 범벅하고 만화책에서나 볼 법한 의성어를 진짜 화면에 송출해 버리는 대담함에 혀를 내둘렀다. 사실 그 전조는 이미 넷플릭스에서 발견되었으니, <러브 데스 로봇> 옴니버스 시리즈의 <목격자> 에피소드가 그렇다. 아니나다를까 <목격자>의 감독이 <스파이더맨>의 아트디렉터로 참여했다고 한다.


<장면1: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장면2:러브, 데스, 로봇 중 목격자 에피소드>


또한 실사 영화로는 표현하기 힘든 감각적, 초현실적 장면을 묘사하는 위해 애니메이션의 표현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있다. 아래의 장면을 실사로 그대로 옮긴다면 어떤 대참사가 발생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매 프레임을 유화풍으로 채색한 <러빙 빈센트>의 대담한 시도는 더 언급해 봐야 입만 아플 뿐이다.


<장면3: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장면4:러빙 빈센트>


그렇다면 생소한 나라 라트비아에서 날아온 <플로우>는 어떠한가? 작화의 측면에서는 마치 수채화 같은 화풍을 주된 컨셉으로 내세운다. 러닝 타임의 대부분이 물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영화의 전반적인 화면 컨셉을 '반투명한 청량감'으로 일관되게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극단적인 비교이지만 만일 다음 장면에서 동물들만 <러빙 빈센트>의 유화 컨셉으로 그렸다고 상상해 보면 이러한 일관된 컨셉의 중요성이 체감된다.



거기에 <플로우>는 또 하나의 대담한 시도를 감행한다. 언어의 의인화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각각의 동물들은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즉, 정보 전달 차원에서는 무성 영화와 동일해진다. 관객은 정확히 영화 속 동물들과 같은 위치에 선다. 뱀잡이수리가 날개를 크게 펴고 개에게 푸드덕거릴 때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의 뜻인지 환영의 뜻인지 개가 알 수 없는 것처럼 관객도 오로지 주어진 시각 정보로만 이를 판단해야 한다. 이 역시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연출이다. 실사 영화에서 (자막을 포함한) 대사 자체가 없는 영화는 통상적인 대중영화의 선 안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플로우>는 애니메이션의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를 영화의 근본으로 돌아가서 탐색하는 영화로 보인다. 애초에 영화는 시각 예술로 출발했고, 이를 극한까지 몰고 가서 가능성을 시험해 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한 실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영화 내적으로도 잘 조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다. 동물들은 어떠한 언어적 교류도 없는 상황에서 상호 이해 단계에 이른다. 서로를 관찰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돕고 서로 다른 모습들은 조금씩 수용해 간다. 결국 혼자만의 높은 집에 숨어 살던 우리의 고양이는 다른 동물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울려 살게 된다. 감독은 이런 모습을 문자 이전의 전이성적(prerational) 자연 상태였다고 상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너무 동화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물들이 완전히 이상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과 도통 어울리지를 않고, 개는 잘못 무리지으면 위협적이다. 원숭이는 조금은 탐욕적이고 새는 말을 안 듣는 구성원을 잔인하게 무리에서 축출한다. 따라서 동물들은 어떠한 덕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경을 극복할 수 있던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단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최소한의 공감과 연대를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가장 아래쪽에 남아 있던 자그마한 희망 한 조각처럼.


다만 흥미로운 형식적 시도와는 반대로 그 형식을 빼면 무엇이 남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즉, 동물 힐링 게임의 시네마틱 컷을 모아 놓은 것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반론도 가능한 것이다. 또다른 독창적인 형식을 자랑하는 <서치>를 보고 났을 때도 비슷한 의문이 들었는데, 만일 이 감독이 일반적인 형식의 제약을 받는다면 그 안에서도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보여 줄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신하기 어렵다. <서치>는 차기작인 <런>에서 그에 대한 답을 충분히 보여 주었으니, 아무튼 <플로우>의 차기작도 기대해 볼 일이다.


PS) <플로우>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했다. 라트비아의 최초 아카데미 수상이라고 한다. 개성이 부족하다는 일각의 지적 역시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소수의 스텝들로 무료 편집툴을 이용해서 이 정도의 미려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데에 경의를 표한다. 수상을 축하하며 정식 개봉 전에 부산국제영화제 야외상영에서 이걸 본 내 안목에도 칭찬을 보낸다. 동물들은 귀염뽀짝하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관객석에는 해피바이러스가 도니 이 또한 영화의 영혼이 아니겠는가. 역시 에디슨이 아니라 뤼미에르가 이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야외상영 당시 무대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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