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똘끼가 제대로 발휘된 <눈먼 짐승>보다는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에 속한다. 남성들을 파멸로 끌고 가는 팜므파탈 주인공은 이제 여기저기서 자주 사용되는 소재이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도피 연인 관계였던 신스케까지 파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오츠야는 자신을 게이샤로 만들었던 여타 남자들은 파멸시킬 의도를 명백하게 나타냈지만 신스케까지 그 의도의 대상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다소 과격하게 말하자면 오츠야는 주변 남자들을 그렇게 만들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도 무방하다. 거미 문신이 새겨지기 전부터 오츠야는 화면의 주변부에서 시작해 남자 상대방의 화면 장악력을 빼앗아 가면서 중앙으로 그 영향력을 확장시켜 간다.
신스케와 사랑의 도피를 하는 도중 확신을 갖지 못하는 신스케의 태도를 바꾸는 과정이다. 처음에 오츠야는 화면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신스케보다 살짝 아래에 위치해 피사체의 크기도 작다.(장면 1-1) 화면 중앙부로 잠시 진출하면서 존재감을 확대시키지만(장면 1-2) 다음 컷은 장면 1-1과 동일해 둘의 역학 관계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피사체의 크기가 미묘하게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장면 1-3)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화면 내 영향력을 조금씩 확대한 오츠야는 자살 소동으로 위협을 가하는 최종장에서 마침내 신스케의 앞쪽으로 직접 가로질러 나와 화면의 중앙으로 진출한다.(장면 1-4)
게이샤가 된 이후 토쿠베이, 켄지와 각각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이런 법칙은 일관적으로 적용된다. 장면 2-2를 사이에 두고 2-1과 2-3에서 오츠야의 화면 장악력을 비교해 보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2-1에서는 토쿠베이의 뒤쪽에서 옆모습으로 존재감을 감추고 있다가 2-3에서는 토쿠베이의 앞쪽에서 정면 샷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장면 3-1에서는 뒷모습만 보였던 오츠야가 3-2에서는 정면 샷으로 전환되고 3-3에서는 화면의 중앙으로 진출해 켄지의 존재감을 압도한다.
이와 같이 일관된 연출에서 알 수 있듯이 오츠야는 주변 남성 인물들과 끊임없이 존재감 경쟁을 하면서 이들을 파멸로 이끄는 인물이다. 주요 남성 인물들 중에서 오츠야에 의해 파멸되지 않는 인물은 문신사인 세이키치가 거의 유일하다. 만일 응보적 관점에서 본다면 한때 연인 관계였던 신스케가 아니라 자신에게 거미 여인으로서의 운명을 지운 세이키치가 오히려 희생물이 되어 마땅할 것이다. 세이키치는 연출적으로 다른 남성 인물들처럼 주도권 다툼을 하지 않는다. 오츠야와 세이키치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둘은 한 화면에서 제대로 만나지 않는다. 위아래로 높이를 달리하거나(장면 4-1) 원경의 인물이 초점이 맞지 않거나(장면 4-2) 아예 오츠야는 화면에서 사라지고 세이키치의 리액션 단독샷으로 처리되기도 한다.(장면 4-3) 즉 둘은 한 장소에 있지만 실질적 의미에서는 서로 만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다른 남자 인물들과 등장할 때에는 정석적인 establishing 샷이 배치된 것과 연출적으로 선명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대신 세이키치는 오츠야에게 거미 문신을 새김으로써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의미심장하게도 거미 문신은 오츠야의 등 전체를 붙잡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하지만 오츠야는 (오츠야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거미 문신에 의해 이런저런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츠야가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자 했던 것은 일정 부분 자기 파괴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거미 문신을 새겨 팜므파탈로서의 권능을 부여한 세이키치에 의해서 그 권능의 행사가 끝나게 되는데, 세이키치가 필생의 역작인 거미 문신을 직접 파괴한 행동은 신스케와 오츠야가 서로를 찌르려 했던 것과 병치된다. 실제로 영화는 신스케, 오츠야, 세이키치의 시체가 순서대로 쌓인 채로 끝난다. 온전한 피해자로도 가해자로도 볼 수 없었던 오츠야의 이중적 정체적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엔딩이라 하겠다.
앞선 스크린샷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인물들은 화면의 일부분만 점유하면서 빈 공간이 인물들을 제약하고 조여든다. 그러나 거의 유일하게 엔딩에서는 클로즈업으로 오츠야가 화면을 가득 채우면서 모두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이 서사의 주인공으로 거듭난다. 암전은 단계적으로 세이키치를 가리고 거미 문신을 가리고 맨 마지막에 오츠야를 가리면서 영화가 끝나게 되는데(장면 5), 마지막은 다른 사람들도 거미 문신도 아닌 오츠야가 장식했다는 점이 이 영화는 오츠야의 영화라는 것을 시사한다. 오츠야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예기치 않은 역경을 겪었지만(Fortuna) 그것마저도 자신의 숨은 본능과 정체성을 일깨우는 데 사용하면서(Virtu) 마지막까지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다 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