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자장커, 2006)

by NYX

<스틸 라이프>는 백지를 달러화로, 유로화로, 다시 위안화로 바꾸는 싸구려 마술 공연에 '산밍'이 돈을 뜯기면서 시작한다. 이후에도 오토바이 운송 값은 얼마, 철거 용역 일당은 얼마, 숙소 값은 얼마 하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돈의 감각이 지배한다. 산밍의 고향은 이미 댐에 수몰되어 사라져 버려 화폐 뒷면의 그림으로만 그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다시 댐 건설과 철거로 대표되는 개발의 논리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근대화는, 비유하자면, 화폐 뒤 마을 그림을 얻기 위해서 실제 마을을 묻어 버리는 행위인 것인데 아주 틀린 소리는 또 아니다. 아무튼 <스틸 라이프>는 근대화의 한가운데에서 수몰된 마을과 댐을 배경으로 발전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에 주목한다.


싼시댐에서 나오는 운무로 인해 배경은 안개로 흐릿하게 처리된다. 반면 철거 용역을 비롯한 노동으로 대표되는 현재는 구릿빛 피부를 통해 선명하게 연출된다. 마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산밍은 건물 철거 용역에 종사하는데 이는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 존재하는 노동이라는 현재가 이미 끝나 희미하게 사라져 버리는 과거를 철거하는 작업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철거 직전인 두 건물 사이로 외줄을 걸어 놓고 외줄타기를 하는 누군가의 모습이다. 인생이란 단단한 현재를 살아내기 위해서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불안정한 미래의 좁은 틈 사이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현실적인 순간이 두 번 등장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영화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다. 우주선이 지나가는 장면을 기점으로 각각 산밍이 아내를 찾는 이야기와 셴홍이 남편을 찾는 이야기로 구분된다. 그리고 건물이 솟아오르는 장면을 전후로 해서 배우자를 찾는 이야기와 (어떻게든)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로 나뉜다. 이 두 장면들은 <스틸 라이프> 전체를 두고 보더라도 상당히 이질적인데 각 소재가 특정한 상징성이 있다기보다는 싼시댐 인근을 현실과 초현실 사이 그 어딘가로 자연스럽게 밀고 나가게 된다.


언뜻 보기에 산밍과 셴홍은 서로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한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 스쳐지나가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같은 공간에 있지만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우주선과 건물처럼. 우주선이 날기 전까지 건물이 발사되기 전까지 산밍 및 셴홍은 우주선, 건물과 같은 공간에 있기는 했지만 이들과 함께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타인이 마치 우주선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리는, 근대화와 개발로 부서져 가는 관계를 보는 듯 하다.


그럼에도 Still Life, 인생은 흘러가고 우리는 아무튼 살아가야만 하니까 불확실한 미래에 다시금 기대를 걸고 수몰된 과거를 떠나갈 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문신(마스무라 야스조, 19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