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데스티네이션:블러드라인(2025)

by 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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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과거 묻혀졌던 호러 IP들을 새롭게 복각하는 게 할리우드 트렌드인 듯 싶다. <할로윈>은 2017년이니 '요즘'이라 하기는 뭐하지만 아무튼 예토전생 바람의 시초 정도라고 하면 적절할 것이다. <쏘우 X>는 나락을 향해 가던 시리즈를 멱살 잡고 끌어올린 주역이 되었고 <오멘:저주의 시작> 역시 반가운 얼굴이다. <스크림>과 <이블 데드>까지 이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파이널 데스티네이션:블러드라인>(이하 <블러드라인>)이 14년 만에 살아 돌아왔다.


사실 2010년대는 이른바 하이컨셉 호러의 시대였다. 그러니까 소리나 갑툭튀 그런 거 없이 천천히 군불 때듯이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쪽인데 이게 영 '호러'라는 근본적인 목적에 충실했는지는 잘 모르겠는 거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미드소마>(물론 좋은 영화다)가 공포 영화를 참칭하는 참사가 벌어지는 시대가 되었다. 대체 그 영화를 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하는 게 공포' 이런 거 말고 원초적인 '무섭다'는 감정을 느낀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될까. 그러다 보니 과거 호러 IP의 예토전생 흐름은 사실 반갑다. 적어도 이 녀석들은 실컷 군불만 때는 거 구경만 하다가 그냥 따뜻한 물에 목욕만 하고 나오는 참사를 만들지는 않거든. 그릇이 엎어지는 한이 있어도 일단 물을 팔팔 끓이고 화끈하게 달려야 그것이 호러 영화인 거 아닌가.


아무튼 각설하고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의 정체성은 창의적인 죽음이다. 사실 시리즈를 쭉 따라왔으면 등장인물들 중에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는 거의 맞출 수 있게 되고 문제는 그 과정인 거다. <할로윈>마냥 웬 괴한이 갑자기 난입해서 칼로 푹찍해 버리는 죽음은 데스티네이션 시리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소한 트리거들이 쌓이고 쌓여 나비 효과로 파국을 발생시키는 과정이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객과의 수 싸움이 필수적이고 <블러드라인>은 이를 성공적으로 해낸다. 예를 들어 특정 위험 요소를 보여 주고는 이게 누구를 죽이는 트리거일지 계속 흔든다던가 특정 방식으로 죽일 것처럼 위장해 놓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드리프트를 틀어 버린다던가 하는 식이다. 마치 히치콕이 서스펜스에 대해 말하면서 비유했던 책상 아래 폭탄 이야기를 정석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블러드라인> 중 특정 인물의 죽음은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보더라도 탑급에 들 정도로 창의적이면서 잔혹하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블러드라인>은 시리즈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변주마저도 최선을 다해 해낸다. 부제인 블러드라인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이번에는 죽음의 저주가 혈통을 타고 흐르고, 이 점을 십분 활용해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소소한 가족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하기도 한다. 다만, 시리즈물의 고질적인 문제이지만, 장르 영화에서 자꾸 규칙과 설정이 늘어 간다는 건 좋은 징조는 아니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 보러 오는 사람들이 바라는 건 창의적이고 멋진 죽음 그거 하나다. 규칙놀음 좋아하는 사람들이면 영화를 보러 올 게 아니라 독서실에서 법전을 펴고 앉아 있겠지.


그런 점에서 시리즈의 후속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이 있기도 하다. 아끼는 호러 IP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면서도, 이 이상으로 더 터트릴 만한 포텐셜이 있는지 불확실하고 이쯤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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