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나무 씨앗에 대한 설명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열매가 조류에게 먹혀 그 씨앗이 변으로 배출되면 어느 나무에 떨어졌건 간에 거기서 발화하고 기존의 나무를 휘감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식으로 번식한단다. 화면 암전되고 탁자 위에 총알이 몇 개 후두둑 떨어진다. 그러니까 이 총알은 일종의 씨앗인 셈이다. 실제로 이 가족의 새로운 세상을 향한 씨앗은 총알로부터 발아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는 양상이다. 처음에는 신성모독으로 기소된 사람에 대해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고 사형 선고를 내려야 한다고 분개하지만, 갈수록 체제 순응적으로 변모해 간다. 흔히들 '악의 평범성'이라고 말하는 개념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보다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신'이라는 개념을 대하는 '이만'의 자세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악의 평범성'은 사실 benality of evil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악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렌트는 이에 대해 '악이 생각하는 것을 끔찍하게 어려워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피상적일수록 악에 굴복하게 되고 피상성의 지표는 상투어의 사용으로, 아이히만은 완벽한 표본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즉, 악이란 문제의 근본에까지 도달하려는 것을 회피하여 더 이상의 사유를 거부해 버리는 것이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를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스스로 검토할 수 없을 정도로 사유 능력을 상실해 버린 사람들이다. '이만'은 가면 갈수록 '신', '신성모독'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사유하지 못한 채 이를 남발하게 되고 이는 후반부에 파국을 불러오는 단초가 된다.
수사판사가 된 '이만'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받은 권총은 결국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구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대로 아내와 딸들을 지키는 도구가 되면서 총알이라는 '씨앗'을 뿌리게 된다. '사나'가 쏜 총알이 '이만'을 직접 맞춘 것이 아니라 지반을 무너트려 간접적으로 역경을 극복한 것은 폭력의 재생산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총이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면 지금의 이란 사회 구조의 대안이 결국 또 다른 세력에 의한 압제인 것이냐는 반론이 나왔을 법 하다.
두 딸들은 TV에서 보여 주는 이란의 왜곡된 모습들을 거부하고 그 대안으로 SNS를 찾는다. 더 나아가 권총을 사용하는 방법을 유튜브로 배우는 장면은 그야말로 뉴미디어로 인해 불붙었던 자스민 혁명을 연상케 한다.(물론 그 뒤로 안정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 국가는 드문 것이 함정) 그 때문에 작중 삽입되는 이란의 실제 시위 장면들도 TV 프레임이 아니라 스마트폰 세로 프레임으로 보여진다.
본작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부가 이란 사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보여 주는 역할이었다면 2부는 그걸 바탕으로 분위기를 급변침시킨다. 말하자면 1부가 도움닫기라면 2부는 도약 역할을 담당하는 셈인데 이 부분에서 지나치게 납작해진다는 인상을 버릴 수 없다. 예컨대 '나즈메'는 1부에서 시위에 일견 동의하면서도 자신의 딸들이 거기에 연루되는 것은 바라지 않고, 그러면서도 시위대에게 일부 도움을 주는 한편 안온한 가족의 일상은 지키고 싶어하는 복합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2부에서는 오로지 순전한 피해자로서만 등장한다. 이 인물이 반드시 가해자의 역할도 일부 수행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회색지대에 속한 인물로서 훌륭하게 조형되었던 것을 날려먹은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현실고발 르포물이 아니라 영화인 이상 훌륭한 영화를 넘어서 탁월한 영화라고 하기 위해서는 담고 있는 메시지 외에 순전히 영화 내적인 구조에서 한 차원 도약하는 측면이 있어야 한다. 그 아름다운 예시로 자파르 파나히의 <노 베어스>가 있겠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역시 이란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결국은 <신성한 나무의 씨앗>을 이른바 '사회파' 영화로 보느냐 사회파 '영화'로 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이다. 전자라면 본작이 고발하고 있는 이란의 현실을 보다 묵직하게 수용할 것이고 후자라면 이를 담고 있는 그릇이 다소 평이하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내용은 다음 문헌을 참고하였음을 밝힘
한길석. "사유함과 도덕: ‘악의 평범성’을 중심으로." 사회와 철학 -.45 (2023): 115-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