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대니 보일, 2025)

by 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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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글을 쓰는 지금 CGV 에그지수가 69%다. 이 지수를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지만 웬만해서는 90%를 넘고 80%대에만 들어와도 뭔가 관객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보아야 할 정도인데 초장부터 60%대라니 도대체 뭘 만들었길래 이렇게 됐나 극장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스파이크의 첫 출정식 장면 사이사이에 역사 속 전쟁 장면들을 삽입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스파이크의 걸음과 과거 군인들의 행진을 매치시키는데 군인들의 모습이 승리자의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음산한 내레이션과 함께 죽음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처럼 묘사되는데, 앞으로 시원하게 좀비를 때려부수는 정복자의 모습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 하다.


조지 로메로가 느릿느릿한 좀비에 사회적 함의를 도입한 뒤 <28일 후>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좀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버렸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후속작인 <28년 후>에서 다시 굼뜬 좀비인 '슬로우 로우'가 등장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아직 이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후속작에서 이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실 <28일 후>에서 좀비에 대한 설정이나 관념 변화가 일어난 조짐이 있는데 자아가 뚜렷한 알파 좀비, 좀비의 임신 가능성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변화는 공통적으로 좀비가 오로지 분노만 느끼는 존재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아를 가진 존재라는 점을 암시하는 듯 한데 전술한 스파이크의 출정식 장면과 같이 생각해 볼 때 향후 좀비와의 공존 가능성을 둔 갈등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좀비 습격이 일어난 프롤로그의 공간적 배경은 스코틀랜드의 Highland라고 자막으로 명시적으로 알려 주었고 스파이크 가족이 피신해 있는 섬에는 성 조지 십자가 깃발이 걸려 있다. 유니온 잭도 아니고 하필이면 잉글랜드 국기다. 그렇다면 인간의 좀비에 대한 공격은 잉글랜드의 스코틀랜드에 대한 탄압과 병치될 가능성이 있고 이 역시 이질적인 집단 간 공존 가능성이라는 테마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게 한 끗발만 잘못하면 '좀비도 사람이야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크고 요즘 한국 세태가 여기에 알러지적으로 반응하는 만큼 후속 시리즈도 최소한 한국에서는 험난한 길을 걸을 게 눈에 선하다.


사실 <28년 후>를 성장영화로 전제하고 봤다면 악평의 절반 이상은 사라졌을 것이다. 스파이크는 아버지로부터 한 번, 어머니로부터 한 번 이별을 겪게 된다. 전자는 스파이크의 능동적 선택에 따른 의지적인 이별이고 후자는 암이라는 병에 의한 불가피한 이별이다. 아버지와 결별하기 전에 스파이크는 심리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한다. 사냥에서의 공적을 과장해서 표현하고 다른 여성과 외도를 저지르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일종의 도덕적 완결성이라는 환성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이별을 통해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력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결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관람객 평가를 상당 부분 깎아먹은 부분은 스파이크의 조형 실패일 것으로 예상된다. 스파이크는 직전 다녀온 첫 사냥에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사냥 실적을 보였고 이를 그 자신도 알고 있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엄마를 데리고 좀비가 우글거리는 본토행을 감행한다는 것을 본 순간 얘는 속칭 금쪽이로 낙인이 찍혔다. 그러니 뒤에서 이어지는 난관들이 벌어져도 팔짱 딱 끼고 '죽어도 자연사인 줄 알아라' 하게 될 뿐이다. 차라리 모종의 이유로 추방을 당한 것으로만 바꾸었어도 지금보다는 평가가 나았을 것이다.


사람마다 평가 기준은 다르겠지만 모든 면이 매끈하기만 한 영화보다는 다소 빠지는 면이 있더라도 어느 한 부분에서 야심이나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 영화를 더 높게 보는데, 그렇게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영화의 험한 앞날이 눈에 선한 것만큼 마음 아플 때도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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