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식사 장면.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식탁에서 엄마와 아빠는 각각 양 쪽에서 긴 변을 잡고 있고 아이는 가운데에서 혼자 조명을 받으면서 그 사이에 끼어 있다. 그리고 삼각형의 날카로운 모서리는 관객을 찌를 듯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상 이 한 장면에 영화의 모든 역학 관계가 담겨 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다투지만 아이의 눈으로 볼 때는 둘이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 이 둘은 양쪽에서 아이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렌이 영화 내내 분출하는 동적 에너지는 시종일관 날카롭게 관객을 겨냥할 것이라는 것.(말 그대로 렌은 영화 내내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소마이 신지는 작년 공개된 <태풍 클럽>에서도 청소년의 성장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바 있다. 좋게 말해 성장이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나 모자라 보이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인데, <태풍 클럽>에서는 이 필연적인 비극을 태풍이라는 자연재난에 비추어 태풍이 지나간 뒤 이 청소년들의 연약한 연대가 무참히 찢겨나가고 이들은 어른이라는 종말로 무기력하게 떠내려갈 것임을 암시했다. 반면 <이사>에서는 조금은 따뜻한 필치로 그런 비극으로 한 발짝씩 다가가는 어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듯 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아니라 '그렇게 어른이 된다'. 물론 성장이라는 걸 하면서 겪어야 하는 상실이나 아픔에 대한 차가운 응시는 <태풍 클럽>이나 <이사>나 마찬가지다.
<이사>에서의 성장이란 무언가를 버리는 일이다. 마치 <인터스텔라>에서 멀리 가려면 그만큼을 버려야 한다고 했듯이. '렌'은 엄마에게 빨리 어른이 되겠다고 선언하고는 (말 그대로) 부모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불태워 버리면서 '축하해'를 연발한다. 추억을 불태운 뒤에는 부모를 상징하는 작은 배까지 모두 태워 버린다. 어른이 된다는 건 기억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의 혈육까지도 마음 속에서 일정 부분 지워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태풍 클럽>과 차이가 생긴다. <태풍 클럽>에서는 성장하는 학생들의 의지가 거의 배제되어 성장으로 흘러갔다면 <이사>에서의 '렌'은 적극적으로 어른이 되려 한다. 엔딩 크레딧에서 이런 차이는 더욱 부각된다. 환상 시퀀스 전까지는 대부분 외부의 사건에 대해 렌이 어떻게 리액션하는지를 중심으로 구조가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가족의 비극이라는 대사건에 대해 '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나 환상 시퀀스를 통해 어른이 되고 나서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에서는 '렌'이 능동적인 액션을 담당한다. 엄마에게 꽃다발을 안겨 주고 아빠의 어깨를 주물러 주지만 이들에게 더 이상 왜 참지 못하고 헤어졌느냐고 묻지 않는다.
엄마가 렌의 공간에 폭력적으로 침투한다면 아빠는 그 공간의 경계선을 넘지 못한다. 전자는 유리창을 부수는 장면, 과하게 엄격한 규칙을 부여하는 장면으로 표현되고 후자는 기린 인형을 놓치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특히 후자가 조금 더 흥미로운데 화면으로는 렌과 아빠가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위가 트여서 렌이 그 곳으로 기린 인형을 내밀 수 있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그 벽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이미 강하게 자리잡은 심리적 장벽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빠는 계속해서 렌과 어긋나고 불통하는데, 호텔 앞 둔치에서 대화를 나눌 때 처음에는 렌이 둔치 아래쪽, 아빠가 위쪽에 위치해 서로 눈높이가 어긋난다. 아빠가 대화를 이어가면서 둔치 아래로 내려가자 렌이 다시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이들은 결국 눈을 맞추지 못한 채 마지막 대화가 끝난다.
표면적으로는 엄마가 주된 악역인 것처럼 그려지더라도 이는 렌과의 물리적 거리에 의한 것일 뿐 아빠가 선역이라거나 엄마에 의한 피해자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맨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사>는 렌의 영화이고 엄마와 아빠 사이에 어떤 불화의 원인이 있었는지와 무관하게 이들은 렌에게 있어서 별반 다르지 않은 동일한 가해자이다. 이 때문에 렌은 엄마와 아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성장해야만 하는데, 이는 환상 시퀀스에서 혼자 숲 속을 헤매고 혼자 잠들고 물가에서 깨어나는 장면으로 상징된다. 그러한 절대 고독의 인고를 거치고 나서야 렌은 추억에 불을 지를 수 있게 된다.
이런저런 해석을 떠나 <이사>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슬프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가족의 아주 순화된 버전의 경험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반강제로 성장을 해야만 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고. 그렇기에 환상 속의 호숫가에서 렌이 자기 자신을 안아 주면서 '축하해'를 연발할 때 그 느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