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이 좋아하는 영화라는데 왠지 모르게 동명의 한국 영화도 이와 톤이 비슷한 하드보일드풍이다. 그렇게 선입견을 가지고 보면 박찬욱의 <박쥐>에서 마작 치는 장면을 여기서 가져왔나 싶기도 한데 마작 장면이 여기에만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제목이 '복수는 나의 것'인데 여기서의 '나'는 주인공인 에노키즈 이와오임이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복수'는 대체 누구(또는 무엇)에 대한 복수인가. 이와오가 처음으로 소년원에 가게 된 것은 태평양 전쟁 시기에 배를 징발하려던 군인에게 천주교 신자인 아버지가 박해당하는 것을 본 이후였다. 현실의 부조리 앞에서 추상적인 신이네 종교네 구원이네 하는 것들의 무용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법 하다. 그 뒤로 이와오는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는데 굳이 도식화하자면 id적인 인간이다.
반면 그의 아버지인 시즈오는 외견상 충실한 천주교 교인이다. 십자가 목걸이를 목욕할 때에도 착용하고 있는가 하면 이와오를 면회할 때에는 천주교에서 파문하는 것을 엄청난 징벌을 내리는 것처럼 중차대하게 말하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시즈오는 이와오와 반대되는 superego적인 인간이다. 이러한 superego적 인간이 며느리와 부정을 저지르려는(id에 굴복하는) 순간에는 하강하는 이미지로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superego는 앞서서 이와오가 처절하게 그 무용함을 깨달았던 대상이다. 포스터에서는 '세상'을 향한 복수라고 했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로 대표되는) superego가 지배한 세상'에 대한 복수이고 더 나아가 superego에 대한 id의 반란이다. 그 근거로 이와오는 시즈오와의 면회 말미에 사실 자신이 진짜 죽이고 싶은 대상은 아버지였으며 그것을 이루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고 이야기한다. 모두 아다시피 ego는 superego와 id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번에는 id가 패배한 것이다.
하지만 id는 이와오가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superego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엔딩에서 시즈오는 이와오의 유골을 하늘로 던지는데 프리즈 프레임되면서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멈춰 서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결국 이와오는 죽은 뒤에도 떠나지 않고 카즈코(아내)의 옆 자리를 두고 시즈오와 계속해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superego를 상징하던 시즈오가 종교적, 도덕적 가르침을 버리고 며느리와 부정한 행동을 저질렀듯이 언젠가는 id가 superego와의 2차전에서 승리를 차지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와오의 일련의 살인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시즈오를 '엿먹이기'의 일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전술한 면회 장면에서 시즈오는 이와오에게 천주교에서 파문되었고 그 때문에 가족 묘에도 묻히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와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뼈는 그냥 버려 버리라고 하는데, 이는 시즈오가 중시하던 가치를 헌신짝처럼 취급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 빈 자리를 채울 새로운 가치는 무엇인지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갈 길을 잃고 헤매던 당시 일본의 새로운 세대와 중첩된다. 더 나아가 20세기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시대 정신이 있었던 한국의 구세대와 개인화&파편화되어 지향점을 잃어버린 현재 세대를 예견이라도 한 듯 하다. 아무래도 고전은 시대를 뛰어넘어 숨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