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권(원화평, 1978)

by 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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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좀 뜬금없는 픽. 사실 이 영화 자체에 대해서보다는 이를 둘러싼 최근의 액션 영화 전반에 대한 말들이다. 아마 영화에 나오는 무술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게 바로 취권이 아닐까. 그 다음이 영춘권 정도? 물론 취권은 아예 영화를 위해 새로 창작한 무술이고 영춘권 등 실재 무예도 현대에서 실전성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하지만 007 보고 사격 연습하는 사람 없듯이 허구면 어떠한가, 재미있으면 그만이고 반대로 실전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무예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것은 상찬받아 마땅하다.


액션 영화의 심장은 액션이고 액션의 모체는 바로 컨셉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실전성과 무관하게. 컨셉을 잘 구축하고 이를 따른다면 영화 전반에 일관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프닝에서는 동네 건달마냥 막싸움을 하던 주인공이 아무 설명 없이 중반에는 존 윅의 택티컬 액션을 구사하고 후반 클라이맥스에서는 엽문의 영춘권을 선보인다면 개별 시퀀스는 멋있을지 몰라도 영화 전체적으로 보면 좋은 영화가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취권>은 독특한 컨셉 하나로 영화의 절반을 먹고들어간 영화다. 술 취한 사람의 움직임을 모방했다는 이 전무후무하게 독특한 모먼트로 인해 수많은 홍콩 무협물 중에서도 수위권을 다툴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후속편에 비해 액션보다 아크로바틱에 치중했다고 평가받는 1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액션 시퀀스에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친다는 느낌이 거의 없는데, 전술한 것처럼 일관된 컨셉 하에서 영화가 제작되어 정제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말로만 하면 이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게 안 된 영화가 데브 파텔의 <몽키 맨>이다.


물론 나머지 절반은 이 컨셉을 완벽하게 소화한 성룡에게 공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액션의 대부분이 풀샷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러면 편집 장난질, 촬영 속임수를 쓸 수가 없다. 배우의 몸놀림이 하나하나 꾸밈없이 관객에게 보여지기 때문에 잘 하면 그런 대로, 못 하면 그런 대로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현대 관객의 눈으로는 합을 맞추는 게 다소 과하게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몸을 쓰는 것 자체에 익숙해져 있는 배우들에게서 나오는 아우라가 있다. 이건 몇 달 액션 스쿨 딸깍 한다고 단기간에 속성완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앞에서 아크로바틱하다고 했는데 그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몸의 동세로부터 느껴지는 원초적인 미학이라는 점에서는 무술 70%에 무용 30%를 혼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취권>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 다들 잊고 지냈던 영화의 근본을 코미디라는 외피에 숨겨 다시 한 번 역설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식의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와도 연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버스터 키튼의 시대는 1920년대였고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1970년대에 성룡이 등장했다. 그로부터 다시 50여년이 지난 현재, (액션 배우가 아니라 동세를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배우라는 측면에서) 우리 시대의 성룡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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