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소녀(쩌우스칭, 2025)

by 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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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 아노라, 레드 로켓에 대한 스포 유)


전말을 모르고 봤어도 '음 <플로리다 프로젝트> 냄새 진하게 나네' 생각했을 법할 정도로 플프 대만 야시장 에디션. 모르긴 몰라도 션 베이커가 각본, 편집뿐 아니라 캐스팅에도 깊게 관여했다는 데 500원 정도 걸 수 있다. 포스터의 저 아이가 그냥 아시아판 무니 그 자체. 하지만 이하에서는 션 베이커 언급을 자제하고자 한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본작의 감독은 션 베이커가 아니므로. 그 역시 진짜 감독이 자신의 이름에 가려 마리오네트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 본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만화경이 장식한다. 만화경은 평범한 사물을 아름답게 왜곡해서 보여 주는 장치이고 이 장치를 들여다보는 이칭의 모습은 곧 이 세상을 바라보는 이칭의 시선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촬영 역시 이칭의 시선을 반영하듯이 동화 톤으로 색보정이 이루어졌다. 채도를 높여서 원색의 존재감이 보다 강화되었고 명도 대비는 약화되어 어두운 야시장에서 밝거나 어두운 쪽으로 도드라지는 것을 최대한 억제했다. 아이폰으로 촬영했다고 하는데 아이폰 자체 렌즈로 찍지는 않았을 것이고 애드온 렌즈를 달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연히 칼라리스트를 갈아넣어 후보정 작업을 했겠지만 이런 촬영을 위해 어떤 애드온을 달았는지 궁금한데 아직까지 이런 테크니컬 정보가 잘 풀리지 않았다.


<왼손잡이 소녀>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둘째 딸 이칭은 왼손잡이고 (한국이 20여년 전 그랬듯이) 왼손잡이는 교정의 대상이다. 왼손잡이, 오른손잡이는 유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여러 환경을 비유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안, 이칭이 다소 복잡한 가정환경 속에서 태어난 것, 남아선호나 체면 중시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 이런 외삽적 환경에 적응과 순응을 강요받는다는 것은 곧 오른손잡이로 바꾸려고 하는 왼손잡이의 삶이다. 따라서 '왼손잡이 소녀'는 단순히 이칭뿐만 아니라 그 가족 구성원 모두를 지칭하는 말일 수 있다. 우연히도 이 가족들은 모두 여성이다. 나이를 일단 접어 두면 소녀라면 소녀지.


이 왼손잡이 소녀들의 삶을 묘사하는 각본에 있어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 입체성이다. 흔히 '입체적 캐릭터' 할 때의 입체성이 아니라 이 가족들에게 몰려오는 역경들이 여러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노점상의 월세를 내지 못해 건물주(?)에게 채권 추심을 당하고 있을 때 첫째 딸은 가게 주인과의 관계에서 임신을 하고 둘째 딸은 '악마의 손'인 왼손으로 좀도둑질에 맛을 들리는 식이다.


이 세 사람의 투쟁은 각각 직접적인 연관성 없이 독자적으로 관객의 숨통을 조이다가 일거에 해소되는데 그 계기는 이칭의 왼손이 존재감을 인정받으면서부터이다. 왼손이 악마의 손이 아니게 되면서 이칭은 좀도둑질이 악마가 아니라 자신이 한 짓임을 인정하고, 이안은 이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보호자가 될 준비를 마치며, 슈펀은 이안이 정신을 차리면서(?) 야시장 가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문제는 나의 왼손을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였던 것이다.


션 베이커의 작품들에서 일관적으로 느낄 수 있던 것은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라는 역접이 가장 중요하다. 즉, '삶이 계속될 수 없어 보이더라도'라는 부분이 암묵적으로 앞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쉽사리 행복을 허락받지 못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무니는 젠시에 의해 환상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아노라>의 애니가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동차 안에서의 잠시뿐이었다. <레드 로켓>은 그냥 앞뒤 꽉 닫힌 새드 엔딩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살아가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왼손잡이 소녀>의 인물들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행복을 허락받는다. 환갑 잔치에서의 한바탕 난장판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암전이 한 번 있은 뒤에 첫째 딸은 아무튼 개심을 한 모양이고, 노점상은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로는 돈을 벌고 있는 것 같고, 엄마와 두 딸의 관계도 어느 정도 원상복귀된 듯 하다. 어떻게? 그건 모르지만. '아무튼' 문제가 너무 쉽게 해결되는 경우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모범적인 대안은 이미 이전에 다른 영화들의 리뷰에서 언급했으니 재론하지 않겠다.


원래대로라면 올해의 주목할 만 한 신인감독 타이틀은 따 놓은 당상이었겠지만 첫째로 한~참 전에 감독을 한 작품이 있으니 신인감독이 아니고 둘째로 션 베이커와의 협업으로 인해 이 영화에서 어디까지 쩌우스칭의 공이고 어디부터가 션 베이커의 터치인지 구분이 어렵게 되었다. 아마 이번 작품의 성공으로 인해 차기작까지는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쩌우스칭 감독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다음 작품부터 비로소 감독의 역량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는 잠시 판단을 유보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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