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2011)

by NY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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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감독인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는 가족 드라마를 통해 현대 러시아 사회의 단면을 포착해 내는 감독이다. 시제가 과거형인 이유는 코로나 사태 당시 코로나 때문에 한때 폐 기능의 90% 가량을 상실했을 정도로 위중했기 때문. 지금은 생명의 위협에서는 벗어난 모양이나 아직 후유증은 남은 듯 하고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은 들린다.


필모그래피 전체적으로는 처음에 가족 구성원의 관계, 특히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집중하던 즈비아긴체프가 이런 가족 관계를 본격적으로 러시아 사회에 비추어 보기 시작한 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러시아가 제정의 역사가 길어서인지 국가 지도자를 아버지처럼 여기는 비중이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유의미하게 높다고는 한다.


<엘레나>에서는 유난히 거시적 반복과 미시적 변주가 두드러진다. 자잘한 사건들을 제외하고 보면 크게 4일에 걸쳐 벌어지는 사건들을 담고 있는데, 첫째 날에는 엘레나가 아들의 집에 방문하고 둘째 날에는 블라디미르가 피트니스 센터에서 사고를 당한다. 셋째 날에는 엘레나가 블라디미르를 살해하고 넷째 날에는 장례를 마무리한 엘레나가 다시 아들의 집에 방문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첫째 날과 둘째 날에 하루의 시작은 동일하다. 엘레나는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커튼을 걷고 블라디미르를 깨우고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하지만 첫째 날에 엘레나는 코트 끈을 조이고 걸어서 아들의 집으로 갔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넷째 날에는 코트 끈을 풀고 택시를 불러서 변호사에게 간다.


물론 이런 반복과 변주의 존재만으로 좋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점은 거시적으로 비슷해 보이는 가운데 조금씩 삐져나오는 미시적 차이점이 영화 속 무엇과 조응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엘레나와 블라디미르 간 인물의 대비는 둘 사이의 균열을 관객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매우 미세하게 벌려 가는 동시에 엘레나의 다소 급작스러울 수도 있던 '그 결정'에 대해 심정적인 방파제를 제공한다.


가장 주목해야 할 시퀀스가 있다면 병역 문제를 해결한 사샤가 잠시 아파트가 정전된 틈을 타 집을 빠져나와 친구들과 함께 패싸움을 나가는 장면이다. 러닝타임 전체에 걸쳐 정적인 움직임을 내내 유지하던 카메라는 이 시퀀스에서 유일하게 핸드헬드로 격렬하게 흔들린다. 영화 전체의 이 모든 소동이 사샤의 군면제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그 고양감이 최정점에 달하려는 순간 훅 꺼져 버린다는 점은 제법 인상깊다. 패싸움 뒤에 사샤는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맞고 잠시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키는데 바로 다음 컷에서는 사샤의 어린 동생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둘의 병치는 이런 가족,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모를 이 어린 아이도 결국에는 사샤처럼 되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보이는 듯 하다.


블라디미르를 제거하고 그의 호화 저택에 입주한 엘레나 가족의 바깥으로는 날이 저물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는 어딘가로 떠나고 없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는 같은 장면을 보여 주면서 날이 점점 트고 새가 가지에 앉아 지저귀던 것과는 정반대의 모양새다. 즉, 엔딩의 황혼은 엘레나 가족의 미래이자 이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다른 수없이 많은 가족들로 이루어진 러시아 사회의 미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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