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앤더슨 세 번째 시리즈. <2층에서 들려오는 노래>, <끝없음에 관하여>에 비하면 뭔가 살짝 불만족스러우면서도 자세히 생각해 보면 또 이 영화만의 무언가가 소소하게 생각나는, 묘하게 귀여운 영화.
영화는 괴테의 말로 시작한다.
살아 있는 자여, 따뜻한 이 삶을 기뻐하라.
발이 섬뜩한 레테 강물이 닿기 전에.
레테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여신이고 동시에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는 길에 건너야 하는 다섯 강 중 네 번째 강의 이름이다. 그리고 작중에 등장하는 열차에도 '레테'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장면 1) 잠시 뒤에 사람들이 이 철길을 우루루 건너는 모습은 곧 레테 강을 건너는 모습일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컷은 정체된 도로에서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한 방향으로 향하는 장면인데 이는 곧 저승으로 가는 길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녹색 자동차에 탄 한 남자는 아주 허무맹랑한 사건에 휘말려 억울한 죄명을 받고 전기의자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제목은 '유, 더 리빙'이다. 망각의 강을 건너 저승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살아 있는 자들'이라니.
영화의 끝은 이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향해 무수히 날아오는 폭격기 편대로 이어진다. 당혹스럽기 이를 데가 없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는 사실 영화의 처음과 수미상관으로 조응한다. 바로 영화의 시작이 폭격받는 꿈에서 깨어나는 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시 오프닝을 제외한 영화의 나머지 전체가 혹시 맨 처음 그 남자의 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볼 경우 영화 속 현실이라고 믿었던 부분은 사실 전부 꿈이다. 정확히는 레테 강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일상의 단편적인 모음집이다.
폭격기를 외부적 자극으로 보기보다는 일상을 일거에 날려 버리는 필연적인 망각과 죽음으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그러니까 '결국 잊혀지고 파괴될 것이지만 소중한 일상' 또는 '아무리 소중한 일상도 결국 잊혀지고 말 것'. 역접을 어떻게 붙일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사실 이런 관점을 따르자면 이 영화의 제목은 <You, the living>이 아니라 <You, the dead>가 조금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 로이 앤더슨 영화가 그렇듯이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기는 하는데 진짜 살아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에. 사람을 이렇게 정물처럼 만들어 놓고 the living이라고 당당하게 지칭하는 건 나름의 유머감각인가.
당연히 이 단편적인 일상 에피소드들이 표면적인 의미 자체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속으로 환자를 경멸하는 정신과 의사, 서로에게 막말을 하고 일터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부부, 회의장에서 심장마비로 죽는 직장인 등등.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 치면 각각의 인물들에게 현대 사회의 어떤 단면이네, 무슨 병리현상이네 하는 식이다. 물론 그것도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 다소 공허한 견해다. 이 느슨하게 엮은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는 것은 거대한 수자폰(sousaphone) 연주자이다. 이 연주자는 자신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에피소드에도 배경 속에 슬쩍 등장한다.(장면 4-1~4-4)
동시에 극의 초반부에 이 수자폰 연주자는 집에서 연주 연습을 하다가 소음을 내면서 이웃을 화나게 한다.(장면 5-1) 다른 씬들이 해당 장소 안에서 기승전결이 마무리되는 것과 달리 이 씬은 소음이 그 아랫집으로 전달되고(장면 5-2) 다시 그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앞쪽 아파트 사람으로 장소가 이동한다.(장면 5-3) 전술한 바와 같이 수자폰 연주자는 다른 씬들에도 등장하여 통상적인 씬의 진행을 방해하지만 이번에는 공간을 뛰어넘어 윗집과 아랫집, 이쪽 아파트와 저쪽 아파트를 연결하는 반대 역할도 수행한다. 특정 경계선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방해는 곧 연결이기도 한 것이다. 반대로 보면 사실 우리를 알게모르게 연결하고 있는 지점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귀찮고 방해물인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가느다란 연결선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스스로 점점 자기만의 방에 고립되어 간다.
이와 같이 중요한 의미가 씬 안에 있다기보다는 씬과 씬 사이에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각각의 분절적인 에피소드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속속들이 '해석'하려 드는 것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대신 이들의 총합이 일견 우스꽝스럽고 비논리적이고 부조리한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것,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마음을 열고 수용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한 비논리적인 모습들의 총합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부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