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이렇게 깜찍발랄한 영화도 봐 줘야 된다. 최근 목록이 <토리노의 말>, <다가오는 것들>, <신성한 나무의 씨앗> 실화인가 정말.
한국에서 대만 청춘(내지 학생) 영화가 잘 먹히는 게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인가 싶기도 하다. 하드코어한 교육열, 가족중심적 문화 등등. 이렇게 사회적 이슈가 한 면에 맞닿아 있는 때, 적잖은 경우 성장물의 성격을 지니기도 하는데 개인의 역경 및 성장과 청춘물 특유의 청량한 분위기 간 비중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큰 이슈가 된다. 후자를 크게 억제한 게 중국의 <소년적니>가 될 것이고 후자를 강조한 건... 잘 생각이 안 나네.
아무튼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썩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참 많은 것을 집어넣었다. 친구 간의 우정, 그 안에서의 삼각관계, 내면의 열등감, 가족 구성원 간 갈등, 사회계급과 차별, 하드코어한 교육열 등등. 그러면서 미화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학생 시절의 다양한 날것의 모습을 조망하고자 한 점은 눈에 띈다. 마치 종합선물세트마냥 '이 중에 뭔가 하나는 니 마음을 울리겠지' 하는 것만 같다.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설계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극의 전체를 지탱해 온 테마인 '대입'의 결과를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좋은 대학을 가는 것으로 이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결국 인물들이 벗어나고자 했던 질서로 다시 회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얄미운 비디오가게 알바가 나름 날카롭게 지적했던 '아이'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의의를 찾아야 했던 것이다. 물론 열린 결말이니만큼 실제로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는 있겠다.
그런데 종합선물세트하고 다른 점은 편식이 안 되고 맛없는 것도 다 먹어야 한다는 거. 이것저것 다 담아 놨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다룬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연재해를 계기로 이런저런 문제들이 아무튼 얼렁뚱땅 흘러넘어가는 느낌이 강하다. 몇 달 간 냉전 중이던 가족과의 관계도 아무튼 풀렸고(여기까지는 그래도 납득 가능하다), 삼각 관계 속 동성 친구도 아무튼 기분이 풀렸고, 사회계급 차이는 여전하지만 썸남(?)과의 관계도 아무튼 개선이 됐고, 아무튼 열심히 공부해 볼 마음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대형 지진이 난무하는 일본은 그러면 사람들이 성인군자들이게?
물론 대규모의 자연재해는 실제로 삶의 자세를 크게 바꾼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극중 '아이'의 변화를 모두 지진의 덕으로 돌릴 경우 그런 외부적 요인이 없었다면 '아이'는 그냥 그대로 살았을 인물이 되어 버린다. 감독이 그 시절의 고뇌와 방황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그걸 이렇게 간단히 풀려나갈 문제로 봐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이건 테크닉 이전에 영화와 삶에 대한 태도이자 윤리의 문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에 대한 아름다운 모범 사례를 얼마 전에 리뷰했었는데 <다가오는 것들>이라고... 픽션 속 인물들의 역경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이 그들에 대한 상도덕이자, 그들이 표상하는 현실 속 수많은 실제 삶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