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빈자가 있고, 빈자가 약간의 속임수를 써서 부자집의 사용인으로 들어가고, 결국에는 그 집을 차지하려는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이거 완전 <기생충>이잖아???
누리끼리한 포스터 정말 싫어해서 아무리 크라이테리온 버전이라도 다른 것으로 들고 오려고 했는데 이 포스터 하나만 가지고도 영화의 컨셉을 거의 다 알고 있어서 차마 빼놓을 수가 없었다. 첫째로 <하인>은 거울에 비친 상이 생명과도 같은 영화다. 둘째, 한 쪽이 올려다보고 다른 쪽이 내려다보는 이 구도는 영화 내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 거울은 평면거울이 아니라 볼록거울이라 비친 인물들이 왜곡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인물 간의 비틀려진 관계도 한 번에 암시하고 있다. 첫 만남에서 배럿은 피고용자임에도 고용주인 토니를 내려다본다.(장면 1) 하인임에도 하인의 자세가 아니고 주인임에도 주인의 위치가 아니다. 이들이 통상적인 고용주-피고용자 관계와는 다른 관계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배럿은 토니의 집을 차지해 버릴 목적으로 토니의 하인이 되었고, 토니의 피앙세인 수잔은 토니 앞에서 대놓고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배럿이 왠지 못마땅하다. 배럿은 토니의 피앙세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 이와 같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숨기는 것이 있는 관계는 상술했던 거울상에서도 암시된다.(장면 2) 이 거울은 인물들의 숨겨진 흑심을 물화해서 보여 주는 도구인 셈이다.
이 거울상이 응용되면? 숨겨진 관계를 비추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장면 3),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까지 왜곡시켜 버리기도 한다.(장면 4)
전술한 것처럼 배럿은 사실 토니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해서 이 집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응당 배럿이 그 목적을 달성한 순간 영화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나 러닝타임은 아직 30분이 더 남았다. 그리고 '도대체 더 할 게 뭐가 있지' 생각으로 의아해지는 순간 <하인>은 일단 퇴장했던 배럿을 다시 극으로 복귀시키고 그로부터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해 버린다. 토니의 집에서 도망쳤던 배럿은 바에 있던 토니에게 다가가 자신은 그저 여자에게 속은 희생자일 뿐이며 다시 한 번 토니의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읍소한다. 하지만 관객은 토니의 말이 거짓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감독이 180도 법칙을 아주 은밀하게, 그럼에도 매우 효과적으로 깨 버렸기 때문이다.
둘은 바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둘을 같이 찍다가 각자를 한 번씩 비춰 주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그런데 둘의 대화가 마무리된 다음에 토니가 배럿의 제안을 수락할지 거부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나오는 컷이 바로 <장면 5-4>이다. 관객들은 이 컷이 나오는 순간 무언가 위화감에 사로잡힌다. 감독이 아주 은밀하게 180선을 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장면 5-1>부터 <장면 5-3>까지는 배럿이 왼쪽, 토니가 오른쪽에 위치해 있지만 <장면 5-4>는 토니가 왼쪽, 배럿이 오른쪽이다. 더 나아가 <장면 5-2>와 <장면 5-3>에서 배럿과 토니는 서로 등을 돌린 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카메라가 위치해 있다. 이런 카메라 조작으로 인해 관객은 이 대화 장면을 묘하게 불편하게 여기게 되고 다시 일할 기회를 달라는 배럿의 제안 역시 곧이들을 수 없다.
그리고 관객의 그 의심은 사실임이 드러난다. 토니에게 돌아온 것부터 다시 한 번 더 집을 탈취하기 위한 더 큰 계략의 일부였으며 배럿은 복귀하자마자 토니를 장악해 나가기 시작한다. 사실 토니는 이 집에 기여하는 바가 전혀 없다. 집을 지을 때 페인트칠도 배럿이 했고, 토니를 위해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배럿에 의해서 행해진다. 그렇다면 이 집을 누가 운영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이 관계가 비유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계단에서 벌어지는 공놀이(?) 장면이다.(장면 6)
여기서 토니는 '나만 공격을 당한다'고 하고 배럿은 '너는 항상 위에 있잖아'라고 응수한다. 언제나 뒤에 있는 것처럼 보이던 토니와 이 관계에서 사실 숨겨진 공격자이던 배럿 간의 멋진 주고받음이다. 동시에 그림자를 통해 이들의 움직임을 극대화했는데 계단 아래쪽에 있는 배럿의 그림자는 손 부분이 마치 총을 든 것처럼 착각하기 쉬운 반면 위에 있는 토니의 그림자는 크기는 크지만 총알을 맞은 것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우연이다.
<하인>의 결말에서는 여타 유사 영화에서 느껴지는 장르적 쾌감이 없다. 계급의 전복을 건드리는 많은 영화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 위에 서는 것에서 느껴지는 순간은 보통 짜릿하게 마련이다. 그보다는 무너져 버린 부르주아의 비애와 처절함이 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부르주아의 전복, 그 뒤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의 위에 선 뒤에 그들이 새롭게 만들어 나갈 세계는 대체 어떤 모습인가? 대부분의 영화는 속칭 '꽉 막힌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가려 놓는다. 하지만 <하인>은 이 부분을 무언가로 채우지는 않았지만 비어 있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건 사소해 보이지만 중대한 차이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는 사기꾼이 아니라는 점을 보이는 품격 있는 선언이다 이 영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