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렐라인(헨리 셀릭, 2009)

by NYX


다크 스타일로 잘 뽑힌 애니메이션을 생각해 보면 스톱모션인 경우가 많다. <피노키오>가 있겠고 좀 마이너한 쪽에서 찾아보면 <아노말리사>, <매드 갓>도 있다. 그리고 본작 <코렐라인>도 그 스톱모션의 특성을 유감 없이 발휘한 잔혹동화 되시겠다. 스톱모션은 원화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피사체를 만들어서 한 프레임씩 미세 조정을 해 가면서 찍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현실적인 움직임과는 거리가 멀고 어딘가 모르게 기묘하고 크리피한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두운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에 많이 쓰이는 것이리라.


아마 <판의 미로>를 연상한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다크판타지, 잔혹동화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특정한 세 단계의 스테이지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물론 문제 해결의 3단계 원칙은 많은 서사 작품에서 공유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또 하나 떠오른 작품이 있다면 델 토로의 또 다른 흥미로운 작품 <나이트메어 앨리>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의 디자인 때문에.

보통 여러 현실을 오갈 때 중요한 것은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다. 물론 <코렐라인>에서 가장 일반적인 견해는 두 세상이 각각 실제 세상과 코렐라인이 원하는 세상이라는 견해다. 즉, 이쪽의 실제 세상에서 코렐라인이 살다가 불만을 가지는 여러 포인트들을 포착하여 저쪽 꿈의 세상에서는 그걸 완벽히(?) 교정한 모습으로 바꾸어 보여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쪽 세상에서는 엄마 아빠가 코렐라인에게 무관심하고 하나 있는 친구(와이비)는 떠들떠들 말이 너무 많고 침실은 우중충하기 그지없다. 반면 이를 반영한 저쪽 세상에서는 엄마 아빠가 비 오는 날 밖에 나가서 놀게도 해 주고 침실은 주황색으로 따뜻하기 그지없고 와이비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말이 없게 되었다.


이를 따를 때 코렐라인은 현실에 불만을 품고 꿈의 세상에 매혹될 뻔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요소로만 가득 채워 놓은 그 곳이 사실은 허위의 세상임을 깨닫고 다소 불완전할지라도 현실의 세상으로 복귀하기를 선택한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론 이 견해는 분명 타당하다. 하지만 뭔가가 비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적인 견해로 두 세계의 관계를 이성과 비이성의 관계로 볼 수도 있다. 이쪽 현실 세계가 비이성의 세계고 통로를 통해 넘어가는 꿈의 세계가 이성의 세계다.


코렐라인의 이웃인 미스 스핑크와 미스 포서블은 현실 세계에서는 점성술에 심취해 있지만 꿈의 세계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기반을 둔 연극을 펼친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들이 인간과 같은 외모, 감정, 결함을 가졌다는 점에서 인본주의의 시작이며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를 도출하려는 초기 합리적 사고의 원형이다. 이게 과잉 해석이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 연극 이후 곡예에서는 '인간은 걸작품! 이성은 얼마나 고귀해!'라는 대사로 다소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꿈에서는 이성의 고귀함을 노래하는 이들 자매가 현실 세계에서는 찻잎 점성술이라는 지극히 비이성적인 행위에 심취해 있다는 점을 그냥 넘길 수는 없다.


통상적으로 두 세계는 반대 관계이다. 현실은 이성이 지배하는 공간이고 꿈은 무의식, 즉 비이성이 지배하면서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 빈발하는 곳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코렐라인>에서 이 일반적인 관계를 뒤집어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바깥 세계를 재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코렐라인도 '엄마 아빠는 이래야 해', '내 친구는 저래야 해'라는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단다 아가야. 아이의 그 무망한 욕심을 사회 단위로 확장하면 일종의 이성과 합리 지상주의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스 스핑크, 미스 포서블 자매는 현실 세계와 달리 꿈의 세계에서는 사회적으로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체형으로 변모하여 나타난다. 와이비는 특정 이유 때문에 입을 스마일 모양으로 길게 찢은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양쪽 입꼬리를 실로 묶어낸 모습이 마치 분재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분재 화분에서 느껴지는 '질서'는 다분히 인위적 질서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합리 지상주의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이 어떨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모습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꿈의 세계에 계속 머물기 위해서는 단추로 눈을 가려야 한다는 표현 역시 의미심장하다. 통상적으로 계몽과 합리는 '눈을 뜬다'고 표현하지만 이 역시 반대 방향으로 매치되어 있다. 이 거짓 합리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보기 싫은 것으로부터 눈을 가리고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코렐라인>은 코스모스를 향해 발전해 온 기계적 합리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카오스로의 회귀 쪽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오스를 상징하는 현실 세계에서 정원은 별다른 인위적 터치 없이 방치되어 있지만 코스모스를 상징하는 꿈의 세계에서 정원은 코렐라인의 얼굴 모양으로 정확히 조형되어 있다.


카오스의 세계로 돌아오기를 선택한 코렐라인은 또다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비정한(?) 세상을 마주쳐야 할 것이다. 꿈의 세계에 있는 부모는 코렐라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줄 것처럼 대했지만 현실의 부모는 그저 장갑 하나 슬쩍 사 주는 것에 그칠 뿐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조형되어 있는 정원에 손을 대면 그저 조각이 망가질 뿐이지만, 황량하게 방치된 정원은 코렐라인이 얼마든지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코스모스에 맞서는 카오스의 매력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하인(조셉 로지,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