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감독들 중에서 가장 원색을 잘 쓰는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초창기 작품이다.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이하 '본작')에서는 특히 붉은색이 강렬하게 사용되었는데 주인공인 페파의 의상뿐 아니라 토마토, 가스파초 등등. 물론 알모도바르 감독은 다른 영화에서도 붉은색을 애용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작에서 사용된 붉은색은 절제된 톤인 반면 필모그래피의 초창기에 속하는 본작에서는 보다 원색적이고 도드라지게 사용되어 어찌 보면 부조화 수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작인 <패러렐 마더스>의 한 장면(장면 1)과 본작의 장면(장면 2)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붉은색이 주인공 페파를 나타내는 색이라고 볼 때, 마지막에 똑같이 붉은색 옷을 입은 마리사와의 투샷(장면 3)은 사실상 자기의 분신과의 만남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리사는 그 대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수면제가 들어간 가스파초를 원샷해 버리고 내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거의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야 겨우 제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따라서 페파는 이반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동안은 사실상 현실과 동떨어져 잠든 상태였다가 이제 겨우 미몽에서 깨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 보면 코엔 형제의 향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우연에 우연이 더해지면서 점점 점입가경으로 향해 간다는 점에서 그러할 것이다. 매번 만나는 같은 택시 기사, 하필이면 전 애인의 아들이 세입자로 집을 보러 오거나, 수면제가 들어간 가스파초를 사고로 마셔 버리는 등이 그렇다. 하지만 코엔 형제가 우연성을 통해 삶의 허무를 드러낸다면 본작은 인물들 간의 다이나믹을 극대화하는 일종의 뜨거운 도구로 사용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잘 드러난 것과 같이 마치 무적과 같이 군림하던 안톤 쉬거를 저지할 수 있던 것은 주인공도, 경찰과 같은 공권력도 아니고 자동차 사고라는 지극히 우연적인 요소였다. 반면 본작에서 사용된 우연성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 간에 만남의 장을 제공하고 갈등 요소와 문제점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반대 방향의 역할을 수행한다.
전술한 것과 같이 본작의 미장센은 일부러 부조화를 의도한 것처럼 보인다. 과할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붉은색이 그렇고 칸텔라의 귀에서 덜렁거리는 모카포트 귀걸이, 명색이 펜트하우스 옥상에 버젓이 돌아다니는 닭들이 그렇다. 옥상에서 보이는 바깥 하늘의 색감은 대놓고 가짜 세트장임을 속일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인공성이 가득하다.(장면 3) 어찌 보면 영화가 아니라 펜트하우스 세트장을 차려 놓고 연극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페파는 처음에는 리액션적 역할을 수행한다. 즉, 이반의 결별 통보에 침대에 엎어져 있고(reaction) 이반이 남긴 전화 자동응답을 하염없이 듣고 있거나 거기에 대고 대답을 한다.(reaction) 이런 역할이 뒤집히는 것은 분노에 가득 차 빨간 전화기의 선을 끊고 집어던지는 순간이다. 그 시점을 기점으로 페파는 리액션이 아니라 액션적 역할로 변모한다. 전화기가 부서지자마자 남자친구가 테러범임을 알아 버린 친구 칸텔라가 페파의 집으로 쳐들어오고 이반의 아들 카를로스는 그의 약혼녀 마리사와 함께 새로 살 집을 보러 온다. 즉, 부서진 전화는 이반과의 단절 선언인 동시에 그를 대체할 새로운 인물들과의 접점이 되는 사건인 셈이다.
본작을 필모그래피 전반과 비교해 볼 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최근작만 본 사람들은 다소 의아해할 부분이 있기도 하다.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상징하는 키워드는 아마도 '모성'일 것인데 본작에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딸이나 엄마가 아니라 한 여성과 개인의 정체성에 좀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루시아가 카를로스의 모친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관점에서 모성을 발휘하는 인물인지는 글쎄...? 다만 페파가 사실 이반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향후에 모성을 가지게 되는 잠재태일 수는 있겠다.
이와 같이 본작을 '모성 이전의 세계'라고 정의해 본다면 <귀향>, <줄리에타> 같은 중기작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모녀 관계가 영화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모성 이후의 세계'가 그 다음 차례로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볼 수 있을까. 마침 신기하게도 최근작인 <룸 넥스트 도어>에서는 다소 차갑게 가라앉은 모녀 관계가 등장한다. 마사가 죽음을 앞두고 선택한 인물은 자신의 딸이 아니라 친구 잉그리드였다. 그러면서도 잉그리드를 마사와 똑 닮은 모습으로 설정하여 끊고 싶어도 완전히 끊어낼 수 없는, 애증이 상당히 섞인 모녀 관계로 보인다. 불같이 타올랐다가(본작) 정서적으로 달아올랐다가(<귀향>, <줄리에타>) 다소 식었음에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룸 넥스트 도어>) 필모그래피의 변화가 거시적으로는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 자체를 담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올 법한 마지막 의문.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그리는 관계의 그 다음 스텝은 과연 어떤 모습일 것인가? 이 궁금증을 품고 이 감독의 그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