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니 게임>의 치명적인 스포일러 있음
이전 <일곱번째 대륙> 리뷰에서도 느낀 거지만 하네케의 정수는 오히려 초기작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후기작이 좋게 말하면 원숙해졌지만 초기의 그 독특한 에너지가 다소 약화된 감이 있다. 하네케의 인장과도 같은 '폭력의 일상화'는 <베니의 비디오>에서도 여실없이 드러난다. <히든>의 '그 장면'은 충격적인 순간을 너무나 덤덤하게 묘사해서 오히려 더 충격적이었다면 <베니의 비디오>에서의 살인은 그 어떤 충격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관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그 장면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베니가 찍고 있는 홈비디오 화면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프닝의 돼지 도살 장면, 엔딩의 CCTV 장면 등 주요 장면들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화면 속의 화면에 의해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베니의 비디오>에서의 폭력은 '일상화'라는 표현으로는 조금 부족하고 '무감각화'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주요 장면들을 영상 매체로 한 번 걸러 보여 주는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영상 매체가 우리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지적하고자 함에 있다고 한다. 베니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비디오 관람에 빠져 있었고 그로 인해 현실 감각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그것만이라면 그저 '바보 상자' 이론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베니는 돼지 도살 장면을 직접 촬영했을 뿐 아니라 그 비디오를 여러 번 멈추고 반복해서 되감기해서 자신이 원하는 순간을 여러 번 관람(?)한다. 게다가 집 바깥의 거리를 직접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바깥 거리를 실시간으로 찍고 있는 카메라 화면을 통해 관찰한다.
이처럼 기행에 가까운 일련의 행위가 보여 주는 것은 베니에게 현실은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프레이밍'이라는 말도 있듯이 어떤 기준으로 일부를 선별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프레임이다. 그런 측면에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보면 제법 의미심장하다. 살인 혐의로 처벌받는 것이 베니가 아니라 그의 부모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주요 증거로 바로 베니가 촬영하고 있던 비디오가 제출되었다. 거기에는 교묘하게 베니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진술은 감추어져 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베니의 부모가 베니 모르게 살인을 하고 시체를 유기할 계획을 세운 것처럼 들린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진실은 전체의 진실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프레임으로 한 번 선별된 부분적 진실인 것이다. 심지어 엔딩에서는 부모가 재판정으로 들어가는 그 장면을 CCTV라는 프레임을 통해 우리가 보게 된다. 우리가 프레임의 하수인임을 자각하고 나서도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분적 진실이 횡행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 부모의 방임적 양육 태도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병리 현상의 근본적 원인이라기에는? 만일 그렇다면 적잖은 관객들은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영화관을 나설 것이다. '나는 저 정도 부모는 아니야' 또는 '내 부모는 저 정도는 아니야' 하는 식으로. 하지만 CCTV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감독은 관객을 공범으로 초대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의 정신적 후속작인 <퍼니 게임>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영화 전체를 하나의 비디오로 만들어 일종의 메타 영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 부모의 미묘하게 냉정해 보이는 태도는 조금 다른 선상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베니의 비디오>는 베니의 살인이라는 하나의 큰 사건을 전후해 각 인물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리액션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리액션에서 특이한 점은 바로 감정의 결여다. 베니의 부모는 자식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비디오를 보았음에도 소름끼치리만큼 침착하게 시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하기 바쁘다. 아마 한국의 아침드라마였다면 베니는 김치싸다구를 수십 번은 얻어맞았을 것이다. 이들은 외부의 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리액션이 고장난 현대인의 전형이다. 굳이 수사적으로 표현하자면 reaction without reaction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우크라이나, 이란 등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전장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우리가 보이는 심드렁함이나 이 부모의 그것이나 질적으로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영상 매체라는 장벽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실재감을 크게 약화시키고 마치 편집하고 삭제함으로써 없었던 일로 치부할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베니가 살인을 저지른 뒤에 바닥에 묻은 피를 닦거나 식탁에 묻은 우유를 닦는 모습은 마치 특정 영상을 '삭제'하려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행동의 무용함은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삭제'해 버릴 수 있어도 프레임 바깥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실 이 영화 자체도 또 하나의 거대한 영상 매체다. 그렇다면 <베니의 비디오> 역시 영화 안에 있는 다른 영상 매체들이 받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감독은 '하네케의 비디오'를 통해 관객에게 묻고 있다. '당신도 베니가 저지르는 살인의 스펙터클을 기대하고 있었지?'라고 말이다. 결국은 이 영화 역시 미카엘 하네케에 의해 의도적으로 프레임된 영상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프레이밍에 대한 프레이밍에는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기는 한가. 그런 점에서 누군가는 이걸 농락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농락이라면 왠지 싫지 않다. 그리고 사실 그 질문이 제법 허를 찌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