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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Dec 26. 2020

혜훈동 고양이 실종 사건 (완)

애초에 왜 한번에 올리지 않았지

<엑소더스>


그날 새벽은 유난히도 추웠다. 집에 와서 모자란 잠을 자고 10시에야 일어난 나는 왠지 모를 뒤숭숭한 기분에 담배만 연달아 피웠다. 


“총각, 고내이들 꼭 무사히 데려 오거라.”

“알았어요, 얼른 들어가 주무세요. 뭐 별일 있겠어요.”


집주인 할머니는 좋으신 분이지만 걱정도 많고 잔소리는 그보다도 많다. 안 그래도 생각할 것은 잔뜩 있었는데. 

새벽 두 시, 마침내 언덕길에 W가 나타났다.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한 대 끌고.


“오토바이는 웬 거야?”

“빌렸지.”


어쩐지 수상한 낌새가 들었지만 굳이 따지고 들 기분은 아니었다. 

피곤하지는 않았다. 찬 바람을 정통으로 맞다 보면 있던 잠도 달아나니까. 15분도 채 되지 않아 우리는 혜훈동을 벗어나 외곽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별 보기도 참 오랜만이었다. 


“좀 잤어?”

“어.”

“뭐?”

“어!!”


오토바이 소리에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데 대체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새 오토바이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 저기야.”


창고는 대단할 것이 없었다. 뭐랄까, 그냥 창고였다. 하얀 벽에 파란 슬레이트가 덮인, 그래도 꽤 큰 창고.


“이제 어쩌지?”


“잘 들어. 오늘은 아무도 출근 안 했으니까, 오늘도 별 일은 없을 거야. 아까 듣기로는 내일 남은 거 전부 턴다고 했으니까 오늘 밤에 꼭 전부 내보내야 해. 내보내기만 하면 돼. 원래는 동물병원 의사가 차 끌고 온다고 했는데 밤에 급하게 환자가 들어왔대. 그러니까 어쩔 수 없어. 우리 문만 열고 전부, 한 마리도 빼놓지 말고 창고 밖으로 내보내. 자, 여기 열쇠.”


나는 열쇠를 받았다.


“아니, 너는?”

“나는 할 일이 있어.”

“뭐?!”


나는 바락 소리를 질렀다. W가 급하게 내 입을 막았다.


“조용.”

“아무도 없다며!”

“있긴 있지. 김 할머니 아들이 저기 좀 떨어진 곳에서 숙직 선단 말야. 숙직이 아니지, 저기서 사니까.”

“그럼 나 혼자 가라고?!”

“소리 지르지 말라니까!”


W가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쩌라고!”

“얘기했잖아! 자, 여기 열쇠. 가서 조용히 뒷문 열고 들어가서 우리 전부 따. 안 잠겨 있어, 우리는. 그리고 자는 애들 있으면 깨워서 전부 밖으로 내쫓아. 일단 내보내는 게 우선이야. 지금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어. 누가 오기 전에 일단 전부 밖으로 내보내야 돼. 당장 내일이면 끝이야.”


어느덧 우리는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럼 나보고, 어, 그것들, 그것들 만지라고?”

“그래.”

“못 해.”

“지금 와서 이러기냐?”

“무섭단 말이야! 졸라 깜깜하잖아, 그리고.”

“자, 여기 손전등.”

“아니, 좀 말 좀 들으라고!”

“제발, 너 아니면 끝이야.”


‘형제님은 분명 선한 사람이니까요.’ 갑자기 신부의 말이 떠올랐다.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았지만, 갑자기 그랬단 말이다. 거기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었다. W의 성격상.


“…알았어.”

“자, 이거.”


열쇠와 손전등을 얻었다.


“무운을 비네, 왓슨. 나는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언제 올 건데. 애초에 뭐하러 갈 건데?”

“두고 보면 알아. 그럼, 행운을 비네, 왓슨.”


그리고 W는 사라져 버렸다.

제기랄, 이판사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언덕을 내려갔다. 사위에 죽음이 기운이 맴돌았다. 하늘에는 별이 고고히 떠 있었고, 논밭에서는 풀벌레가 울었다. 창고 문은 생각보다도 컸다. 추위에 떨리는 손인지, 두려움에 떨리는지 하여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자물쇠를 따고(W가 대체 열쇠를 어디서 구했는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끼익, 하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났다. 


번뜩이는 눈동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동시에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야옹, 야옹, 갸옹, 그르렁. 


“침착해라, 침착해. 진정해, 너희들 구하러 온 거야.”


너무 커다란 공포에 휩싸이면 인간은 이성을 잃는다고들 한다. 그때 내 모습이 딱 그랬으리라.


양 벽을 가득 채운 높다란 우리에는 길고양이들이 수없이 많이 갇혀 있었다. 한 쪽에서는 파이프와 밸브가 붙은 커다란 솥과 이상한 기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고, 무언가를 오래 끓이는 것 같은 역한 냄새가 코끝에 풍겨왔다. 발톱과 이빨을 내보이며 괴성을 내지르는 짐승들이 절망에 차 울부짖고 있었다. 손전등을 켜고 그쪽을 비추자 반사된 빛에 놈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어린 놈, 커다란 놈, 노란 놈, 회색 놈, 검은 놈, 수없이 합쳐져 죽음과도 같은 합창이 울려퍼졌다.


“자, 간다, 간다.” 나는 혼잣말을 뇌까렸다.

삐걱, 하고 첫 우리가 열렸다. 왼쪽 벽부터 돌기로 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놈은 높이도 아랑곳않고 뛰어내려 창고 밖으로 달아났다. 공포 게이지가 상승했다. 다 차면 미쳐 버릴지도 몰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번째 놈은 자고 있었다. 손전등으로 놈을 쿡 찌르자 깨어나지도 않고 몸을 뒤척이길래 나는 두려움을 참고 다시 한번 쿡 찔렀다.


“캬악!”


화들짝 놀라 나는 뒤로 물러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화가 치밀어올랐다. 건방진 자식, 내가 뭣 때문에 오밤중에 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우리를 잡고 흔들어대자 놈도 화가 났는지 내 쪽을 한번 노려다보고는 우아한 몸짓으로 훌쩍 뛰어내려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어이가 없군.


이성이 마비된 상태에서 나는 기계적으로 문을 열었다. 그래도 꽤나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들도 갇혀 있던 게 지겨웠나 보지. 아무렴 좋았다. 서로 좋게 좋게 가자, 이 말이다. 왼쪽 벽을 다 열고 나니 이제 오른쪽 차례였다. 우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적어도 잠시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검은 어둠 속에 검은 덩어리가 들어앉아 있다가 내가 손전등을 비추니 샛노란 눈을 떴다.


그놈이었다.

만악의 근원, 악마의 정수, 지옥의 사자.

이 모든 사건을 촉발시켰던, 어느날 집을 나갔던 바로 그 녀석이. 

개였다.


개는 느긋한 표정으로 눈을 살며시 떴다가, 감았다가, 다시 떴다. 아주 느긋하게. 그때마다 눈 안의 막이 가로로 닫혔다가 다시 벌어졌다.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려 했으나 놈이 움직이자마자 놀라 손전등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에 창고 안의 모든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멀리서 개가 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급해서, 나는 재빨리 우리를 열었다. 우리를 열자마자 놈은 보이지도 않게 뛰어내렸다. 철학이란, 검은 방에서 눈을 가리고 검은 고양이를 잡으려 돌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놈은 철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세상 모든 악에 가까웠으면 가까웠지. 놈은 재빨리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개는 계속해서 짖기 시작했다. 마지막 우리를 열 참이었다. 창고 입구에서 눈부신 빛이 비쳤다.


“거기 누구요?”


이런, 시발. 


창고 입구에 서 있던 것은 총을 든 김씨 아저씨였다.


굳이 법적으로 따지자면 범죄자는 내 쪽이었다. 김씨 아저씨가 대체 총을 어디서 구했는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사유지에 오밤중에 무단 침입해 재물을(애초에 훔친 재물이지만, 그런데 길고양이에게 주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무단으로 방류했으니까. 


김씨 아저씨는 꽤나 친절했다. 손에 총을 든 것만 빼면. 


“어머니 내일 오시니까, 그때까지는 여기 계세요.”


그리고 나를 창고 안 작은 사무실에 가두고 문을 잠근 것만 빼면. 핸드폰도 뺏은 것만 빼면.

이제 진짜로 갇히는 것은 질색이었다.

밖에서는 김씨 아저씨가 김 할머니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아무래도 통화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뺏기기 전 시간을 보니 아직 오전 5시도 안 됐으니까. 마침내 통화가 된 모양이었다.


“어머니, 그게 아니라요. 아니, 화만 내지 말고 일단 들어 보세요. 예에, 거기 창고요. 예, 일단 안에 있어요. 누구냐고요? 몰라요, 처음 보는데요. 물어보라고요?”


김씨 아저씨가 창문을 두드렸다.


“근데 누구세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저 좀 내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잠시만요, 어머니한테 여쭤 볼게요.”


효자네.


“예, 어머니. 모른다는데요. 예? 아니, 소리 자꾸 지르지 마세요. 알았어요, 근데 내보내 달라는데 어떡할까요?”


아무래도 혼이 났나 보다.


“미안해요. 일단 여기 계셔야겠어요. 좀 이따 어머니 오신다니까 그때 다시 말씀드릴게요.”

“고맙습니다. 근데 물이라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물이요? 잠시만요, 어머니한테 한번 물어 볼게요, 제가.”


김씨 아저씨는 또 혼이 났는지 잔뜩 주눅든 표정을 하고 돌아왔다.


“주지 말래요. 아주 택시까지 태워서 집에 보내라는데요.”

“그것도 괜찮네요. 근데 조금 심심한데 제 핸드폰만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잠시만요. 한번 물어 볼게요.”


역시 안 됐다.

나는 좆 됐고.

대체 총이 어디서 났지.

피로가 몰려왔고,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최종장>


한기에 눈을 뜨니 밖에서는 김 할머니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김씨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듣자하니 고양이가 전부 어디로 갔냐, 뭐 이런 얘기인 것 같았다. 귀신 같은 얼굴을 하고 김 할머니가 내가 갇혀 있던 사무실 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나와.”


바라던 바였다. 노인네쯤이야 얼마든지 제압하고 나갈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총이 마음에 좀 걸려 나는 최대한 무해한 몸짓, 그러니까 두 팔을 양 귀에 붙이고 하늘 위로 치켜든 채로, 걸어나갔다. 내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김 할머니가 사정없이 짚고 있던 지팡이로 내 머리를 후려패기 시작했으니까.


“너지, 이 새끼야, 너지, 어디 감히 남의 작업장까지 와가지고는 훼방을 놔, 이 건방진 놈의 새끼야, 어, 이 쌍놈의 새끼, 내가 경찰 불렀어, 이 새끼야, 어디, 이 새끼가, 어?”


졸라 아팠다. 무언가 뜨뜻한 게 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피네, 씨발.

김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서 이제는 김씨 아저씨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 새끼야, 너는 나이를 마흔도 넘게 처먹어가지고는 이 늙은 애미가 전부 해야겠냐, 이 쓸모 없는 새끼야,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이 모양이니 늙은 애미를 끌고 나와가지고, 내가 지지리 복도 없지, 애비 닮아가지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취직을 해, 결혼을 해서 손주를 안겨 주기를 해, 고양이 새끼들 돌보라니까 그거 하나 똑똑하게 못 해가지고, 이 새끼야, 이놈의 새끼야!”


나는 어질어질한 가운데 김씨 아저씨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너!”

“…예.”

“너지, 이 새끼야. 어제 짱깨집 갔다가 나갔다는 새끼가. 뭐야, 이 새끼야, 뭐 할라고 여기 왔어. 너 짭새 끄나풀이지? 그치? 이 새끼, 아주 잘 걸렸다. 내가 네까짓 놈은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 버릴 수도 있어!”


김 할머니 목소리는 너무, 너무 듣기 싫었다. 차라리 아까 풀어준 고양이들이 나았다.


“아니, 할머니, 언제 봤다고 자꾸 새끼 새끼거려요. 내가 할머니 새끼도 아니고 자꾸 새끼라 하지 마세요.”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노인이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는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내 조인트를 까더니 엎드린 내 등을 후려갈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디 어린 놈의 새끼가 말대꾸야, 죽고 싶어?”

“아! 아!”


나는 속절없이 맞고만 있었다. 일단 추워서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피를 계속 흘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머니, 그쯤 하세요. 이러다 사람 잡겠어요.”


김씨 아저씨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노인이라고는…


어쨌든 김씨 아저씨도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차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레이 한 대가 멈춰 섰다. 안에서 내린 것은 신부와 동물병원 의사, 그리고 놀랍게도 봉춘 영감이었다. 세상에, 꿈만 같군.


마지막 남은 기운을 그러모아 나는 김씨 아저씨가 몽둥이 찜질, 아니 지팡이 찜질을 당하고 있는 동안 창고 앞 마당 저편으로 뛰어갔다.


“아니, 어쩌다 이렇게 맞았어요! 피 나잖아! 피 나!”

“잠꾸러기 총각, 자네 괜찮아!”

“형제님, 괜찮으세요!”


세 명이 한꺼번에 소리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됐고, W 언제 와요. 경찰이랑.”

“아직 소식이…”


제기랄.


“니들은 또 뭐야.”


김 할머니가 이쪽을 노려보았다. 잔뜩 질린 얼굴로 신부, 수의사, 봉춘 영감은 그쪽을 쳐다보았다.


“김 할머니가 저러신 겁니까?”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니들 뭐냐고!”

“어르신! 진정하세요! 아드님 그만 때리시고!”


신부가 위엄을 담아 소리쳤고 그 말에야 비로소 김 할머니는 지팡이 찜질을 멈췄다.


“얘기 다 듣고 왔어요. 증거도 다 있고요. 식품위생 위반, 불법 재물 손괴 및 절도죄로 찾아왔습니다.”


김 할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지랄하고 앉았네. 증거 있어?”

“예, 있어요!”

“지랄, 지랄하고 앉았네. 느그들이 뭔데, 느그들이 경찰이야?”


경찰은 아니었다.


“어르신, 다 들었다고요. 그만 하세요. 지금 이거 중범죄예요. 사람을 이렇게 두들겨 패요?”

“중범죄 좋아하네. 한밤중에 남의 영업장 들어와서 훼방놓은 게 누군데, 지금 나보고 그래? 법대로 해, 법대로! 나는 잘못한 거 없어! 니들이 경찰이야?”


내 쪽 일행이 창고로 다가섰다. 그때 김 할머니가 얻어맞고 있던 김씨 아저씨를 걷어차고 총을 뺏어 들었다. 우리는 발을 멈췄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는 멈추지 않았지만.


“거기 꼼짝 말아! 어디, 아침 댓바람부터 이 개새끼들이, 지금 장난하는 줄 알아!”


장난이 아니었다. 장난이 아니었지.


김 할머니는 악을 썼다. 아니다, 악을 썼다라는 표현은 조금 부족하다. 두 눈이 거의 뒤집혀 입가에는 거품이 반짝이고, 극도로 낮은 으르렁거림에서 찢어질 듯이 새된 비명을 지르는 것은 악을 썼다기보다는 악에 씌였다라는 표현이 보다 어울릴 것이다.


“어린 놈의 새끼가, 느이 부모가 이렇게 가르치던? 어디 어른이 하시는 일에 토를 달고, 어, 남이 먹고 사는 곳까지 찾아와 훼방을 놓아, 놓기는, 이 새끼야, 이 벼락이나 맞을 새끼야.”


나는 몽롱한 가운데에서도 얼탱이가 없어 소리쳤다.


“어린 놈하고 고양이 잡아다가 먹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 봐요, 누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그리고 허리가 아프면 병원에 가셔야지, 고양이를 왜 잡아먹어요. 더럽게.”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수의사와 신부와 봉춘 영감이 동시에 나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저 쌍놈의 새끼가 끝까지 말대답이야! 죽고 싶어!” 김 할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듣다 못한 봉춘 영감이 호통을 쳤다.


“이봐요, 지금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불쌍한 고양이들 데려다가, 그 어린 것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걸 잡아다가, 하이고, 세상에. 오며가며 보면서 인사도 하고 그랬더니, 한 동네 사는 사람이 이래도 돼!”

“입 닥쳐, 이 영감태기야, 당신도 항상 마음에 안 들었어. 제 새끼나 잘 챙기지 고양이 새끼를 챙기느라 마누라는 죽고 자식들은 코빼기도 안 비치면서 훈계는 무슨 훈계, 아주 염병을 하고 앉았어!”


봉춘 영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다가 무서운 속도로 시퍼래졌다. 지팡이를 잡고 몇 번 휘두르다가 영감은 뒤로 넘어졌고 신부와 동물병원 의사가 헐레벌떡 머리가 땅에 부딪치기 전에 그를 받았다.


“어르신, 이거 그냥 넘어갈 문제 아니구요, 지금 이거 바로 경찰 불렀으니까 총 내려놓으세요. 얼른요.”


의사가 지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김 할머니는 이제 악다구니를 쓰는 것을 넘어 숫제 발작 일보직전까지 갔기 때문이다.


“경찰? 경찰? 경찰 이 새끼들이 나한테 뭘 해준 게 있어. 나라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세금을, 내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나 알아! 이 빨갱이 새끼들이, 나라를 아주 망쳐가지고 나처럼 선량하게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단체로 몰려와서 협박을 해 대고 을러대고, 이 개새끼들아, 사기꾼 새끼들, 빨갱이 새끼들아!”


의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봉춘 영감이 바닥에서 무어라 중얼거렸고 의사는 황급히 머리를 받쳤다. 수의사가 인간도 돌볼 수가 있구나.

총을 붕붕 휘둘러대는 팔은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이 있었고, 신부는 그걸 보고서도 다가갔다. 나는 앞서도 말했듯이 신 따위 믿지 않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멍청한 건가. 멍청한 게 맞았다. 총알도 들어 있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공기총에서 총성이 울렸고, 검은 수단의 어깨가 찢어져 그보다도 검게 살짝 물들었기 때문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신부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총을 뺏어 옆으로 내던졌다.


“이거 안 놔? 이 빨갱이 새끼야, 안 놔?”

“할머님, 그만하시죠. 이쯤 하면 됐습니다.”

“이거 안 놔! 뭐 해, 얼른 개 풀어!”


김씨 아저씨가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 잔뜩 줘터지고서도 말할 기운이 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 이미 너무 큰일이라구요.”

“하여간 지 애비 닮아서 쓸모 없는 새끼 같으니라고, 얼른 개 안 풀어!”


애비를 닮았다는 말에 김씨 아저씨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머뭇거리면서도 그는 손에다 개줄을 꼭 쥐고 비틀거리며 창고에서 무언가를 끌고 나왔다. 아니, 질질 끌려 나왔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것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지옥 사냥개? 호랑이와 개가 먹이사슬을 극복해 이뤄낸 금단의 사랑 끝에 태어난 비극의 피조물? 장딴지가 거의 말만 했고, 대가리는 거의 소만 했으며, 증오와 분노로 두 눈은 불타올랐고 냄비도 씹어먹을 것 같은 아가리에서는 침이 줄줄 흘렀다. 우람찬 몸뚱이는 거의 느티나무만 했는데 거기서 끊임없이 억눌린 울음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얼른 풀어! 다 물어 죽여라, 아롱아, 얼른 물어!”


아롱이라는 귀여운 이름에 아이러니함을 느끼기도 전에 끌려나오던 김씨 아저씨가 마침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놓았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금방이라도 저 괴수가 우리 모두를 갈갈이 찢어 놓을 것만 같아서.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것은 한 걸음 한 걸음, 묵직하고 억눌린 분노와 파멸을 담아 천천히 걸어왔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걸 정신없이 바라보던 중 김 할머니가 노파의 힘과 유연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신부의 가슴팍을 발로 차 밀어냈다. 덩치 좋은 신부가 벌러덩 주저앉을 정도면 얼마나 힘이 좋았는지 상상이 되리라.

다가올 파멸에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경찰, 아까 부른 경찰은 대체 어디 와. 내가 세금을 얼마나 많이 내는데. 음, 사실 담배 살 때만 내지만.


“의사 양반, 경찰 언제 온대요?”

“어, 어, 뭐라구요?”

“경찰! 언제! 오냐고!”

“어, 아까 온다고 했는데, 오늘 종로 쪽에 대규모 시위 있대서 여기까지 파견 요청이 왔대요, 그래서 남는 인원 순찰 끝나고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왔어요.”


세상에. 저 신화적인 짐승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나가 있었다. 


구원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개였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좀 헷갈릴 테니까 부연 설명을 하자면 W가 주워 왔고, 어느 날 사라졌고, 내가 구해 냈고, 내가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무릅썼는지는 일말도 신경 쓰지 않고서 철망 밖으로 나오자마자 샛노란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그 악마의 짐승 말이다. 그래, 그 고양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서 (그때 공포에 휩싸이기도 해서 사리분별이 제대로 안 되기도 했고)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 다시 본 그 죄악의 짐승은, 컸다. 고양이치고 컸다는 게 아니라 그냥 컸다. 지금 서서히 입맛을 다시며 다가오는 눈앞의 괴수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거의 그 반만 했던 것 같다. 그 놈이 지금 내 뒤에서, 형언할 수 없는 괴성을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누르며 옆으로 비켜섰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봉춘 영감, 수의사, 신부, 심지어 총을 들고 설치던 김 할머니, 바닥에 나자빠진 김씨 아저씨마저 먼 옛날 괴물과 신과 악마와 용이 이 땅을 거닐 때의 모습이 눈앞에 현현한 것을 얼이 빠져 보고만 있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개가 있었고, 내 옆을 지나 거대하고 증오와 분노에 불타오르는 거대한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는 검었다. 가장 어두운 어둠보다도 검었고, 두 눈은 세로로 길게 찢어져 적수에게 못박혔으며, 악마의 배를 갈라 내장을 잘 말린 다음 울림이 좋은 나무에다 줄을 걸어 튕기지 않고서야 날 수 없는 악기 연주와도 같은 소리를 내며 나긋나긋하고 또 유연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고양이는 다가갔다.


두 괴수가 잠시 서로를 마주보았다. 서부 영화의 카우보이처럼.


그리고 격전이 일어났다. 돌풍이 일었고, 피와 살이 흩날렸다. 뼈가 부서졌다. 그 비명을 나는 잊지 못하리라. 먼지가 사방에 흩날렸고 으르렁과 가르렁이 터지고 털이 사방에 날았다. 공포 속에 우리 모두는 격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영겁과도, 그러나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 지나고 나자 신화 속 짐승은 발을 절뚝거리면서도 가능한 한 빠르게 낑낑거리며 창고 안으로 튀어들어갔다. 


그 때 개가 나를 보았다. 노란 눈을 한쪽만 이글거리며. 맹세할 수도 있다, 놈은 그때 이렇게 말했다. 


‘봤냐? 잘 해라.’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터뜨렸다. 개는 만족스럽게 앞발을 핥았다. 꼬리는 반쯤 털이 벗겨졌고, 뒷발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렸으며, 검은 가죽에는 큰 상처가 나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였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과연 악마의 권속이다, 나는 생각했다.


패배를 인정하시지, 하는 눈으로 놈이 김 할머니 쪽으로 하악거렸다. 소름 끼치는 소리로. 놈이 천천히 걸었다. 시멘트를 바른 마당에 피가 점점이 떨어졌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끈질겼다. 멍한 눈으로 잠시 놈을 바라보다, 김 할머니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 휘파람 아는가? 휘익- 하고 길게 나는 휘파람. 나는 그걸 진짜로 할 줄 아는 사람을 처음 봤다. 


어둠 속에서 다른 짐승이 걸어나왔다.


신부가 성호를 그었다.


그것은, 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했다. 방금 개(고양이)가 무찌른 그 짐승보다도.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첫째 짐승이 으르렁거리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이는 훗날 내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이지만, 그것을 보았을 때의 심정이 이와 정확히 같았다. 오직 멸절과 죽음만이 우리 앞에 다가온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다롱아, 얼른 물어 죽여!”

하얀 벼락처럼 다가온 ‘다롱이’가, 악마의 짐승의 목을 물었다. 잔인한 승리에 도취된 표정으로, 형제의 복수를 하겠다는 듯이. 이미 앞선 결투에서 힘을 모두 소진한 고양이는 분노에 차 버둥거렸지만 벗어날 힘이 없었다. 

나는 저것이 끝나고 나면 내 차례라는 사실에 절망하려 했으나, 아롱이에 이어 다롱이가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죽음의 공포보다도 앞서 끔찍하게 싫은 헛웃음이 새어나왔다는 사실에 그만 죽고 싶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일어난 일에 나는 더욱 크게 헛웃음을 지었고, 그건 아직까지도 쪽팔린 일이다. 쪽팔려 봤자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더 컸지만.


“돌격!”


언덕 위에서, 누군가가 명령을 내렸다. 뒤를 따라 긴 나팔 소리가 울렸다(뒤에 알고 보니까 문방구에서 파는 장난감이었다). 모두가, 심지어 다롱이와 다롱이에게 목이 물린 검은 짐승마저도 나팔 소리가 울리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해를 등지고 언덕 위에서 질주해 내려오던 것은 일단의 기마 부대였다. 열댓 정도의 기마병이 늠름하고 위압적인 자태로 손에는 저마다 죽도와 책가방, 목검, 쮸쮸바 따위를 들고 있었다. 기마병들은 자세히 보니 초딩들이었다. 군복이 아닌 태권도복을 입고 질주해 내려오는 초딩들의 무리 선두에는 네발 자전거를 타고 우산을 든 W가 있었다.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가 이만큼 장엄했으랴. 키르홀름 전투에서 말을 타고 질주했던 윙드 후사르의 돌격이 이보다도 웅장했으랴. 자전거에 올라탄 그들은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몽골 기병만큼이나 빨랐으며 죽음을 각오하고 전선에 뛰어든 크림 전쟁 당시의 영국 기마병만큼이나 질서정연했다.


“와아아아아!”


자빠지는 놈도 있었다. W가 그랬다. 아무래도 제 몸 크기에 맞지 않는 네발 자전거를, 왼손에는 우산을 들고, 오른손에는 반쯤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을 들고, 양 어깨에는 책가방을 두 개씩 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W가 제일 먼저 자빠졌고 자빠진 놈을 지나 초딩들의 무리가 사정없이 돌격해 내려왔다. 봉춘 영감이 치이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다롱이는 순식간에 기가 질려 창고로 뛰어들어가려 했으나, 용맹한 기마병들은 순식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원을 돌며 거리를 좁혀왔다. 끼익, 하고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일순 멈추었다. 모두가 다음 순간 일어날 일을 두려움에 차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W는 언덕 위에서 헐레벌떡 뛰어내려오고 있었고) 자전거에서 내려 죽도를 들고-


그 자리에 내던졌다. 두 눈은 호기심으로 번쩍였고, 경탄을 담아 비명을 내뱉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기마병 모두가 자전거에서 내렸다.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롱이는 순식간에 소리를 빽빽 지르는 초딩 무리에게 둘러싸여 ‘와, 너는 이름이 뭐야?’ ‘나 과자 있어!’ ‘손!’ ‘엎드려!’ ‘우리 집도 강아지 키우는데, 내가 어제 산책 같이 했거든? 야, 너 왜 내 말 안 들어! 엄마한테 이른다!’ ‘물어와!’ ‘너는 이름이 뭐야?’(다들 알다시피 개는 사람 말을 하지 못한다) ‘야, 피씨방 가자!’ ‘안 돼, 엄마가 오늘 일찍 오래.’ ‘할머니, 얘는 이름이 뭐예요?’(그나마 이성적인 질문) ‘근데 너 왜 이렇게 커?’ ‘얘 과자 줘도 돼?’ ‘근데 얘 왜 목줄 안 해요?’ ‘얘 왜 고양이 물어요? 나빠!’ 따위의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유순해져 버렸고, 그 틈을 타 악마의 짐승은 절뚝거리면서 도망쳐 버렸다.


그 모습을 우리는 얼이 빠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 W가 절뚝거리며 다가왔다. 


“한다는 일이 이거였냐?


놈이 대꾸한 말은 이거였다.


“맹약을 지키기 위해 기마대와 함께 돌아왔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수없이 머리를 맴돌다 결국 뱉은 말은 이거였다.


“대가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아까 두들겨 맞았던 머리가 띵 하고 울려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멀리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에필로그>


대가는 황당했다. 알고 보니 일단의 ‘기마대’는 W가 진작에 심어 놓은 정보원의 4학년 2반 친구 중에 같이 검도장을 다니던 꼬마로, 어쩌다 보니 하루 검도 학원이 쉬는 날에 할 일도 없으니까 걔를 일단 떡볶이를 사 주면서 매수했더니 그 놈이 같이 학원 다니던 애들을(옆에 태권도 학원 애들도) 끌고 왔던 것이다. 뭐 줬냐고 물으니까 건방진 애새끼들이 구글 플레이카드를 요구했단다. 피씨방 가야 한다나? 어린 놈의 새끼들이, 배그 15세 이용가 아니야?


“우리 때는 그냥 달고나 사준다고 하면 그냥 따라가지 않았냐?”

“내 말이.”


이 말을 하는 W는 굉장히 우울해 보였다. 아무래도 타격이 컸던 것 같다(심지어 초딩 새끼들은 인당 5천원 아래로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의사와 신부가 대형 택시 세 대나 불러 아이들을 태워 일일이 집으로 돌려보냈다. 용달차를 불러 자전거를 싣고 집집마다 돌려준 것은 봉춘 영감이었다(돈은 W와 함께 냈다고 한다). 


“애초에 애들은 왜 데리고 온 거야?”

“경찰보다 빨리 소집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모험에 애들도 활약 한 번은 해야지.”


…그리고 차마 애들은 못 건드렸을 테니까? 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굳이 입밖으로 뱉지는 않았다.

그 뒤로 W는 분노한 엄마들에게 몇 번 호출당했고, 당연히 언제나처럼 훌쩍 사라져 버렸고, 화난 엄마들의(왜 애들 데리고 이렇게 위험한 일을 했냐, 애 학원 가야 하는데 맘대로 데려가면 되냐, 거기가 어딘지 알고, 그렇게 논밭밖에 없고 휑하고 위험한 데를, 요새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기타 등등. 제기랄, 나 때는 흙 파먹으면서 컸는데) 해명을 듣는 것은 나와 집주인 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다행히도 할머니가 동네에서 인망이 있어 대충 해결되기는 했지만.


아, 사건 해결 이야기. 


탐정 소설은 으레 그렇듯이 경찰은 무능했고, 우리의 대사건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부가 내던졌던 총을 어느새 다시 들고 정신이 반쯤 나가(목은 전부 쉬어 버린) 김 할머니를 순경들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현행범으로 체포해 갔다. 김 아저씨도 그렇고. 동물학대법으로는 얼마 안 나왔는데 사유재산 손괴죄 및 절도죄(+식품위생법)가 엄청 크게 나왔단다. 나야 법을 모르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동네 사람들은 굉장히 분노했다. 덜 분노한 사람들 – 길고양이들을 싫어했던 사람들 – 은 시큰둥해 했지만, 전말을 알고 나니 경악에 떨었다. 김 할머니네 건강원에서 보약 한 재 지어다 먹은 사람들도 꽤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건강원은 폐업했고, 그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섰다. 언제 망할지는 모르겠다만. 뭣도 모르고 고양이 밥을 주더라. 멍청하긴.


날 감금하고 폭행까지 했던 대화루. W는 약속을 지켰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봤던 대화루는 고깃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려 했더니 W는 ‘아는 경찰이랑 식품 위생 쪽 공무원이 있다’고 말을 흘렸다. 어쨌든 약속은 지켰으니 됐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봉춘 영감네 고양이는 수유와 쭉이, 민들레 세 마리만 돌아왔다. 피골이 상접해 있더라. 한동안 집밖에도 나서지 않고 담배만 태우던 봉춘 영감은 요새 다시 기운이 나 동네를 빨빨거린다. 가끔 맞담배를 피우는데, 그때마다 건강에 좋다느니 젊은 총각이 집에만 있으면 못 쓴다느니 하며 언덕을 끌고 올라간다. 무덤가에서 우는 것을 나는 그냥 모르는 체 하며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사 주니까 불만은 없지만.


신통하게도, 고양이들은 전부 집으로 돌아갔다. 편의점 앞으로도, 파출소로도, 성당 뒷마당으로도.


파출소장은 그럴 필요가 굳이 없는데도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과를 했다. 너무 늦게 해결해서 죄송하다나. 해결을 지가 했나, 내가 했지. 


편의점 알바생은 내가 맥주를 사러 가면(편의점 앞에 고양이가 없다면 말이지만) 반색을 하며 음료수를 하나씩 준다. 고맙다고 한다. 고마울 게 뭐가 있어. 내가 악마의 권속을 한 마리를 구하건 천 마리를 구하건 그쪽 월급이나 오르나. 그래도 공짜 음료수는 마다하지 않지.


신부는 여전히 뒷마당에서 고양이를 돌본다.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말하던 양반치고는 한번 사건 관련자들을 모아다가 미사를 드렸다.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어쨌든, 요새는 고양이들이 다시 모여들고 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악마의 짐승이 새끼를 오지게 많이 깠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웃기지 않은가? 악마의 권속이 신의 집에 머문다니. 내가 항상 이 얘기를 하지만 신부는 웃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어쨌든 상처는 다 나은 듯싶다. 덩치가 그 정도인데 금방 안 낫는 게 이상하지. 그래도 가끔은 병원에 가는 것 같다(동물 병원 말고 인간 병원).


수의사는 여전히 길바닥에서 고양이를 주워다가 치료해 준다. 나보고 또 고양이 찾아볼 생각 없냐 하더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냥 고양이도 거지 같은데 아픈 고양이는 더욱 거지 같다. 아, 그리고 신부한테 관심이 있나 보더라. 안타까워서 어쩌나. 백날 먹이 들고 가 봐야 신부는 신에게 바쳐진 몸이다. 


초딩 탐정단과 초딩 기마대는 가끔 집에 놀러 온다. W가 없을 때면 나는 매정하게 내쫓으려고 하지만 그래 봤자 내 방 밖으로만이다. 마당에서 와글벅쩍 떠들어 대고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이 써지지 않아 일부러 나가 담배를 몇 번 피운다. 그러다가 초딩 엄마들한테 항의가 들어왔다. 아니, 그럴거면 애초에 보내지 말라구요. 그러나 말로 이길 자신이 없어서 그냥 산으로 올라가거나 봉춘 영감하고 피운다. 어쨌든 초딩들이 오면 고양이들도 잔뜩 몰려들기 때문에. 집주인 할머니는 굉장히 좋아하신다. ‘한 놈은 뭐라 할라 하믄 방에 읎고 한 놈은 방에서 나오지도 않으니, 야야, 이 넓은 집이 꼭 절간 같으니 늙은이가 서러워서 우째 살겠나?’ 하시니까. 초딩들은 여전히 삶은 감자나 고구마는 잘 먹진 않지만 그래도 요새 할머니가 과자도 가끔 사다 놓으신다.


W는 여전하다. 여전히 뭘 하는지 모르겠고 주기적으로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다. 다시 돌아올 때엔 공포의 짐승은 더 안 데려왔으면 좋겠다. 사건 해결 이후로 동네에서는 인기가 좀 높아진 것 같다. 특히 초딩들 사이에서. 또 어르신들 사이에서. 인망이 생겼으면 초딩 엄마들이 뭐라고 할 때면 니가 좀 처신하란 말이야. 근데 그럴 때면 꼭 집에 없다. 하여튼 W가 집에 돌아오면 온 동네 고양이 새끼들이 전부 몰려든다. 그러면 나는 이어폰을 꽂고 밤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음, 별로 그러고 싶진 않지만 개새끼 얘기를 하자. 


검은 악마의 짐승은, 아롱이와 대격전을 치르고 다롱이에게 목을 물려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수의사가 나보고 저거 치료해야 한다고, 좀 잡아오라고 하는데 그 놈이 나를 잡았으면 잡았지 나는 잡을 수도 없고 잡을 생각도 없었다.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열흘이 지난 뒤, 놈이 오랜만에 돌아왔다. 입에 무언가를 물고. 뭔가 했더니 족제비였다. 대체 서울 종로구 한복판 혜훈동에 족제비가 왜 있는지는 둘째치고서라도 대체 나한테 왜 물어오냐는 말이다. 졸라 징그럽잖아. 당연히 나는 놈과 놈의 주둥이에 물린 – 족제비인지 뭔지 아무렴 어때 – 를 보자마자 방으로 줄행랑을 쳤다. 놈이 한참 문을 긁는 소리가 그치자 이제는 집주인 할머니가 마당에서 반가운 소리로 놈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야야, 너는 우터 이리 정도 하나 없나. 봐라, 너 준다고 이 물고 왔잖나.” 


아뇨, 필요 없어요. 

그런데 너무 오래 숨어 있어서 오줌이 마렵긴 했다.


조심스레 나간 자리에, 놈이 있었다. 그새 더 커져 있었다. 안 믿기지? 나도 안 믿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본 흑표범만 했다. 시발.


놈이 나를 보더니 서서히 다가왔다. 나는 공포에 질려 달아날 생각도 못했고. 주둥이에는 불쌍한 족제비를 문 채로. 


놈이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리고 가르릉거리더니 할머니 무릎으로 뛰어올랐다.. 어쩔 줄 모르고 얼어붙은 내 두 발 위에 불쌍한 족제비를 둔 채로.


“할머니.”

“응?”

“이것 좀 치워 줘요.”


'야아, 무구우니 내려 가거라', 하고 말한 뒤 할머니가 불쌍한 족제비의 시체를 치웠고, 검은 악마의 권속은 할머니가 그것을 주방으로(다시 말해, 쓰레기 봉투로) 가져갈 때까지 앉아 노란 눈동자를 불태우면서 보고 있었다. 드르륵, 주방 장지문이 닫히자 그것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하품을 했다.


“얼른 꺼져.” 내가 말했다.


‘그래. 고마웠어.’ 라고 놈이 말한 것 같다. 어떻게 들었는지는, 그냥 악마의 권속이니까 들렸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놈이 몸을 돌리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마당의 대문에서 샛노란 눈을 번뜩이며.


그렇게 놈은 사라졌다.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 덕분에 나는 한동안 집밖에 나가지 못했다. 맥주와 담배를 사러 갈 때를 빼면 말이다. 게다가 놈은 W가 돌아올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 찾아오곤 했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서. 앞서도 말했지만 얼마나 새끼를 까댔으면 한동안 혜훈동 골목길에 새까만 털에 샛노란 눈을 번뜩이는 새끼 고양이가 득실거렸겠는가. 마침내 W가 놈을 붙잡아다 땅꽁을 떼 버리기 전까지는. 수의사가 존경스러운 얼굴로 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나?


내 이야기는 별로 할 것이 없다. 대단한 모험이었고, 장르로 치면 코스믹 호러였다. 돌아와서 열심히 기록을 남겼고, 그것이 여러분께서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이다.


코스믹 호러가 아니라 탐정 소설이라고? 정말, 배려라고는 없군.


그래도 예전보다는 고양이가 살짝, 아주 살짝 덜 무섭긴 하다. 


아무렴 어때, 이렇게 혜훈동 고양이 실종 사건은 종결되었고 나는 글을 하나 팔았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무시무시하고도 흥미로운 모험을 어떻게 읽으셨는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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