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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Dec 26. 202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어제 먹다 남은 케이크, 빨간색 필링이 올라간 타르트를 먹으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를 보기 시작했다.

안톤 쉬거가 수갑으로 젊은 보안관의 목을 졸라 죽이고 있었고 새빨간 피가 터졌다. 썩 유쾌한 색깔 일치는 아니었다. 다행히도 내 타르트는 차가워 굳어 있어 터지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 동창이 사온 비싼 케이크. 처음 만난 이후로 10년이 지났고 그때 나는 노인을 위한 나라를 처음 읽었다. 코맥 매카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소설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나야 내용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여주에 가면 할아버지는 항상 서부극을 보고 있다. 수백, 수천, 아니 수만 번은 더 보았을 것이다. 나무, 화석처럼 굳어진 자세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 가면서 60년대 전쟁 영화나 서부극, 아니면 여자 배구를 본다. 그곳은 적막하고 또 고요하다. 이웃한 집도 많지 않은 동네에서, 노부부는 말 한 마디 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쓸쓸한 집에 있다. 나는 일부러 전화를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하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조금 바빠 전화를 드리지 못했더니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을 무진장 하셨다길래 나는 반성했다. 전화를 해도 하는 말은 별 대단한 것이 없다. 식사 하셨냐, 할배는 뭐 하시나, 역병 조심하고 어디 나가지 말고, 불 잔뜩 때고 계셔라.


외로움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얼마나 오래 묵었고, 얼마나 오래 가라앉았는지와는 상관없다. 아니, 상관이 있다. 모르겠다. 아직 나는 충분한 세월 동안 묵히지 않았는지도, 가라앉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외로움은 침식되었고 무뎌졌을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무덤덤해지도록. 그러나 외손자가 가면 '요새 지하철도 서울까지 가는데 하루 더 자고 가라'고 말하는 정도로는 외롭도록.


그 자세 그대로 할아버지는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든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지껄이는 푸른 눈의 총잡이는 멋지게 담배를 태우며 총을 쏴 악당을 처단한다.


나는 그런 외로움이 앞으로 찾아오게 될 수많은 외로움의 마지막 모습이 될 것 같아 너무도 두렵다. 해가 지고, 그때까지 불을 켜고 있지 않다가 배가 고프면 일어나 불을 켜고 먹다 남은 피자를 데워 먹는다. 화면에서는 황무지를 배경으로, 캐틀건을 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푸른 눈의 총잡이는 늙고 외로워 이미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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