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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Jan 09. 2021

김가와 이야기

서울에 김씨 성을 가진 이가 살았다. 하루는 그가 오장의 건강을 걱정하여 의원을 찾으니, 의원이 독한 약으로 재워 관과 같은 기구로 살피려 하였다. 김가가 잠에 취해 누우니, 몽중에 기이한 이야기를 웅얼거리기 시작했는데 이야기가 자못 기묘하며 신비로워 제 간호사와 의원이 손을 멈추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더러는 우는 이도 있었고 더러는 즐거이 웃는 이도 있었으니 마침내 기구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려퍼지고 나서야 의원이 불현듯 정신을 차려 진료를 마쳤다.

잠에서 깨어난 김가가 길게 기지개를 펴 의원에게 감사를 전하자 의원이 어디서 그런 재주를 배웠느냐고 물었다.


김가는 어리둥절하여 '어떤 재주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소이다'라고 답하니 의원이 '김 형의 이야기가 꼭 귀신의 솜씨와도 같으니 우리가 모두 업을 잊을 정도였소' 하고 웃었다. 이에 김가가 두려워하며 '저는 한낱 필부이로소이다. 그런 재주가 있었더라면 어찌 살리지 않고 이토록 비루하게 살겠습니까. 허나 제 어릴 적 모친이 저를 염려하여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때로는 혼자 재우고는 하였는데 이것이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답했다.


이에 의원이 길게 탄식하며 이야기 값으로 삯을 받지 않겠노라 하니 김가가 필사로 사양하며 값을 치루었다.

김가가 돌아가고 나자 의원 왈, '귀신과도 같은 재주를 꿈 속에서만 보일 수 있고 들어주는 이 없으니 하늘이 무심하다. 그의 이야기가 칼과 같아야 하는 의원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으니 어찌 많은 이들이 이야기에 탄복하며 울고 웃지 않으랴. 글이나 소리로 담아내 세간에 전하고 싶으나 자신도 모르는 재주라 내가 나설 일이 아닌 것이 한스럽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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