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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Jan 04. 2021

스케치 - 좀비

당신은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를테면 청춘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대체 오를 주식은 무엇인가, 오래 사귀었지만 한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이 크리스마스에 바쁘다고 해 놓고 대체 무엇을 했는가 따위를 당신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팁을 하나 주겠다. 알 필요 없다. 지금은 없는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항상 뭔가를 알려 주려 할 때마다 툴툴거리며 ‘그딴 것 알아 뭣 하게’라고 타박을 놓곤 했다. 맞는 말이다. 어차피 평생 알지 못할 것을 궁리해 봤자 머리만 아프고, 어떻게든 알아냈다고 해도 속만 쓰릴 테니까. 알아야 할 것만 알면 된다. 다만 그뿐이다. 


어째서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가, 정부와 여당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신은 어디에 있는가, 대체 왜 눈과 입과 같은 점막에 피가 튀어도 감염되지 않지만 물리면 감염되는가 따위는 알 수 없는 것이고 알아야 할 것도 아니다. 그딴 건 과학자들이나 궁금해하겠지. 아직 한 명이라도 남아 있다면 말이지만.


한편 알아야 할 것은 몇 가지 되지도 않는다. 좀비한테 물리면 감염된다. 좀비는 턱이 없으면 아무도 물지 못한다. 밥을 오래 먹지 않으면 죽는다. 좀비보다 인간이 더 위험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


어때, 참 쉽지. 거기다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나는 마지막 건 잘 몰랐다. 게임 중독이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암살자가 아니라 의외로 연약해서 고작 4m 높이에서 떨어져도 다리가 부러져 죽을 수가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4m 높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을 때 멀리서 좀비 한 무리가 다가오면 죽을 수 있다. 이걸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나도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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