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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Dec 31. 2020

스케치 - 장례식

P가, 아내의 장례식에 찾아온 화물차 기사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단호하고 정확하게 몇 차례 후려쳐 뇌사 상태에 빠트린 것이 아무런 생각 없이, 혹은 오랜 생각 끝에 저지른 행동이었는지는, 4년 6개월이 지난 뒤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보험사, 경찰, 기타 관련 기관의 오랜 논의 끝에 보행자 측 과실도 어느 정도 인정되어 사건은 형사 합의로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는 P의 아내의 부모, P에게 있어서는 장인과 장모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었다. P는 거기에 아무런 말도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그들도 딸을 잃은 아픔에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가 아니었다. P는 아무런 말도 의견도 생각도 내놓지 않았다. P는 그저 텅 빈 눈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었고, 가끔 목구멍에서 짐승과 같은 흐느낌이나 울부짖음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남루한 차림의 화물차 기사는 젊었고, 충격과 절망, 죄책감 따위의 감정에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연신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며 휘청이는 그를 보며, B는 순간 P의 눈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P는 아내를 잃었고, P의 아들은 B의 손을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은 장례식이었다.



'괜찮아.'



B는 중얼거렸다.



'삼촌 여기 있다. 사탕 먹을래?'

'아니.' P의 아들이 조용히 대답했다.



P의 어머니가 비틀거리며 육개장이라도 한 숟갈 뜨고 가라며 화물차 기사를 부축했다. 식탁에 앉은 그를 P가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에 놓인 맥주병을 잡고 휘둘렀다. 깔끔한 타격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병은 한번에 깨지지 않았다. 퍽, 퍽, 두 번의 후려침 끝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P에게 달려들었으나, 아무도 그를 이겨낼 수 없었다. 귀신 같은 몰골로, P는 주변을 모두 뿌리치고 마침내 병을 깨트리고야 말았다. 맥주가 피와 거품과 섞여 흘러갔다. 



P는 화물차 기사에게도 아내가 있었더라면, 혹은 자식이 있었더라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3년이 지난 어느 아침 생각했다.



P가, 아내의 장례식에 찾아온 화물차 기사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단호하고 정확하게 몇 차례 후려쳐 뇌사 상태에 빠트린 것이 아무런 생각 없이, 혹은 오랜 생각 끝에 저지른 행동이었는지는, 4년 6개월이 지난 뒤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P의 아들은 차라리 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아버지마저 그를 떠나가겠다고 결심했다는 생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P가 4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은 그의 아들의 열 번째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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