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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Nov 04. 2021

시간관리국 알바(시급 15,460원)

2주일 전부터 시간관리국 알바를 시작했다. 2주일? 모르겠다. 3년 뒤일 수도 있고. 4개월 전이었나?


왜 이런 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냐면, 찾을 수 있는 곳 중에서 시급이 제일 좋았기 때문이다. 알바천국에서 보고 전화를 했더니 3일 뒤에 면접을 보러 오라더라. 


간단한 면접을 진행했다. 중학생 때 배웠던 미래 완료, 현재 완료, 대과거 영작 문제가 나왔다. 그래도 한때 번역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았으니 어렵지는 않았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꼴에 공공기관에서 일한다고 목걸이 사원증도 받았다. 이런 건 전에 회사 다닐 때도 목에 걸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규칙도 간단했고. 퇴근할 때 불이랑 에어컨 다 끄고 문 잠그고 가기, 다른 알바생한테 몇 년생이냐고 묻지 말기. 이 정도? 


"아직 사고가 난 적은 없는데, 혹시 모르니까요." 딱딱한 표정의 관리자 하나가 말했다.


같이 일했던 동료 하나가 생각난다. 몇 년생인지는 묻지 말랬으니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대충 서른 중반은 된 것 같았다. 머리는 감지 않아 떡이 져 있었고 수염도 어수선했다. 쉬는 시간에, 쉬는 시간이라는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왜냐면 관리자들이 시간이라는 말이 나오면 엄청 예민해져서, 하여튼 휴식 중에 담배를 같이 피우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글쎄. 그쪽은요?"


나는 모니터 여러 개를 보다가 빨간 표시가 뜬 게 있으면 동그란 노란 버튼을 눌러서 관리자를 부른다. 그게 내 일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같은데, 왜 굳이 만오천 원이나 넘는 시급을 주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수염이 덥수룩한 동료는 '꼴랑 최저 시급 주는데 뭐가 많냐'고 답했다. 


"최저 시급을 이렇게 많이 준다고요?"

"그럼, 그나마 편하니까 이러고 있지. 아무것도 안 해도 되거든. 그냥 시계가 제대로 흘러가는지만 보면 돼. 그건 원래도 하던 일이었어. 원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으니까. 잘 흘러가고 있는지, 내가 멈춰 버린 것은 아닌지."

"그렇군요."

"담배 뭐 펴?"

"하나 드릴까요?"

"그래."


담배를 피우고 화장실에 다녀 오니 동료 알바생은 소멸해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시간선에서 사라졌다는 뜻이다. 최저 시급 얘기는 하지 말라고 관리자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얽혀 있으니, 시급 얘기는 하지 마세요."


나는 잠시 얼이 빠져 완전한 죽음이란 어떤 기분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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