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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Oct 10. 2019

조커 봄

뜬금없이 써보는 영화리뷰

당연히 조커 스포일러 있음.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1년에 한 번 볼 정도로 좋아한다. 그럼 좋아하는 게 아니지 않느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뭐... 대부분 같이 볼 사람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귀찮아서지만(마지막 이유가 가장 크다) 그저께는 심심함이 극에 달해서 대충 옷을 걸치고 세시 영화를 보러 나갔다. 뭔 프리미엄관이라고 2만원씩이나 하더라. 그 넓디넓은 영화관에는 나밖에 없어서 아아주 맘편하게 발까지 턱 올리려다 참고 맥주 두 캔과 함께 영화를 봤다.

나는 히어로 무비를 굉장히 싫어하는데(남들에게는 좋아하지 않는다 정도로만 이야기하지만), 우선 영웅이란 놈들은 아니꼬워서 그렇다. 본성이 꼬인 데다가 어쩐지 저런 놈들은 재수가 없다 싶기 때문이다. 멋진 대사, 멋진 얼굴, 멋진 몸. 트라우마나 고뇌랍시고 하는 소리도 배부른 것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안다, 열등감 때문인거. 그렇다고 해서 빌런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악은 이유가 있어 악이라 부르는 거고, 얼마나 매력적이건 간에 범죄자는 범죄자일 따름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나는 히어로고 빌런이고 다 포함해서, 그놈의 어쩌구 저쩌구 유니버스를 싫어한다. 거기에 따라붙는 열광적인 팬덤은 두 배로 싫어한다.

조커도 굳이 따지자면 배트맨의 숙적 빌런으로, 이것도 일종의 히어로 무비의 일종일 테다.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나도 재밌게 본 바 있다만, 이번 영화는 뭐랄까, 충격적이었다. 다분히 사회적이라고 해야 할까.

요새 어딜 가든 인터넷 기사를 보면 흉악범죄가 판을 친다. 살인, 강간, 폭행, 강도.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그리고 그 범죄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사람들은 댓글창에 있다. 사지를 뽑아 죽이라는 둥, 가족 신상 공개하라는 둥, 에미애비도 똑같이 목을 잘라 네거리에 걸어 두라는 둥. 미친 세상이다.

범죄자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당연한 사실이고, 죄는 응당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자명하다. 그런데, 죄가, 악이 어떻게 생겨나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순간을 분노하고 어떻게든 누군가를 증오하고 저주하지 않고서는 다들 살아갈 수가 없는 건가. 물론 세상이 엄청나게 각박해지기도 했지만.

답은 나도 모르겠다. 알더라도 똑똑한 사람들은 극장에서 찰리 채플린을 보며 우아하게 깔깔대겠지. 그냥 극중 조커의 말마따나 서로 조금만 존중하고 친절하면 안 될까. 요새는 얼굴 모를 이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가른다. 한남, 김치, 틀딱, 급식충(하여간 그놈의 충은 어디에나 갖다붙이니까) 당연하지만 아무도 안 지키는 것, 작은 배려는 어디로 갔을까.

결말 전까지는 조커의 사상에 아나키즘적으로 공감했었는데 막상 폭동 일어난 것 보니까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더라. 나는 사람 무리가 싫고 또 무섭다. 답은 사회주의인가?(빨갱이라고 신고당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확실히 자본주의는 아니다. 유럽에서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래저래 실험하다가 최근 또 급격히 우경화된 것을 보면 앞으로 창문 열면 조커들이 득실댈 일이 머지않았나 싶다.

애초에 나는 가끔 사회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도 잘 이해가 안 간다. 혁명이나 반란을 일으키기엔 다들 너무 길들여져 버려서인가? 교육? 통제? 자본? 미디어? 세뇌? 선한 본성? 묻지마 살인이나 테러 발생 건수가 나날이 증가하는데 왜 그게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지 않지?

터지란 소리가 아니다. 터질 것 같고 터졌을 때 막을 수나 있나 싶기 때문이다. 못 막겠다 싶으면 애초에 터지지 않게 하는게 최선일텐데. 소외된, 사회부적응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같은 게 마련되어 있는가? 나는 자유시장경제 따위는 믿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이들이 체제를 옹호하는 모습을 자주 봤는데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까지 심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뚜렷해서 나도 깊게 뭐라 더 쓸 말은 없다. 안 좋은 영화란 말은 아니고, 여러모로 재밌고 충격적이었다. 특히 호아킨 피닉스 연기가. 그 눈빛이 잊히지가 않는다. 결말부에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힘에 휩쓸려가는 무기력한 절망과 파괴력의 묘사도 좋았다. 담배를 너무 맛깔나게 피우더라. 아, 꽤나 잔인한 묘사가 몇 번 등장하니 그런거 못 보는 사람은 주의해야할듯.

총평 : 별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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