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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코뿔소 May 23. 2020

뜬금없이 써 보는 군대 이야기

역병이 돌아서 예비군 훈련은 소식도 없고, 얼마 전에 후배들 놀러와서 군대 얘기 한 김에 생각나서 끄적여보는 이야기. 


나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제1야전군사령부에서 14년에서 16년까지 예산과 행정병으로 복무했는데, 육군본부 바로 아래 부대니(지금은 지작사로 통합됐지만) 자부심도 꽤 있지만서도 어디 가서 군대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꿀만 졸라 빨았기 때문이다. 엑셀 공부 열심히 하고,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고 사과로 토끼랑 백조도 만들고 오렌지로는 튤립도 만들고 하여튼 이상한 쪽으로만 시간을 많이 보냈다(요새도 플레이팅이랑 데코는 자신 있다). 운동이나 할걸. 각설하고.


사령부다 보니까 별이 한번 떴다 하면 산을 갈아엎고 운동장까지 미싱하는 그런 부대랑은 사정이 달라서, 족구하다 말고 사령관(4성장군)이 지나가다가 '음! 열심히 하라구!' 하지를 않나, 투스타 원스타는 거의 맨날 보다 보니 소령이 커피 타고 일개 상병이 중령 대령하고 맞담배를 하던 그런 부대였다. 오히려 소위랑 하사(각각 장교와 부사관 중 가장 낮고 또 흔한 계급)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부대 안에 골프장이랑 병사들 먹으라고 치킨집까지 있었을 정도니까 말 다했지 뭐. 


군필 독자들께서는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대한민국 군대란 조직은 썩을대로 썩었다. 물론 나도 잘 알고, 많은 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발 뻗고 편히 자는 것도 캠프니 군바리니 소리 들어가면서 밤낮으로 고생하는 군인들 덕분이지만은 실상이 그렇다. 예컨대 골프장이 그랬다. 후방이긴 했지만 명색이 강원도라 제설할 일이 더럽게 많았는데 대체 골프장 눈을 병사가 왜 치워야 하냐는 말이다. 골프랑 나라 지키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침대형 생활관 전환한다던지가 4년이 넘었었는데 우리는 쿰쿰한 냄새가 나는 침상형 생활관에서 625때 만든 수통이나 쓰고 앉았고 방독면은 새삥으로 달라고 한 지가 언젠데 결국 제대할 때까지 못 받았다. 


방역비리도 큰 축이지만, 쓸데없이 돈 나가는 구멍이 너무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어디서 전화올까봐 못 하겠지만, 예산과였으니까 돈 나가는 곳은 다 알 수 있다. 요상한 데로 자꾸 샌다. 초과근무 찍어놓고 테니스 치러 가는 간부들도 많았고. 그 중 탑은 뭐더라, 하여튼 일종의 명예직 같은 자리가 하나 있었다. 군필자는 진급 포기한 간부, 특히 대령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 것이다. 그런 분이 한 분 계셨는데, 정말 온화하고 인자하기 그지없던 분이셨다. 오전 10시쯤 전용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전용 테레비로 골프랑 테니스를 보고, 손자병법을 서예로 필사하고, 한번은 주역이었나 뭐시기를 연구하시더니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600 몇 페이지짜리를 사무실 프린터로 뽑으라고 하셨더랬다. 당연히 사무실은 마비 상태지. 좀 싸이코 기질이 있었던 모 중사가 '야 최하사. 너 내가 뽑으라던거 뽑았어?'(최하사는 일을 하사급으로 한다 해서 붙었던 별명이다) 라고 물었다. '아 그게... 이거 뽑으라고 하셨지 말입니다.' 


긴 한숨. 모 중사는 쪼르르 과장님(대령)에게 달려가서 하소연을 놓는다. 과장님도 자기보다 짬이 높으니까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차 한잔 드시러 가셔서 20분 정도 있다 오신다. '음, 그런 일이 있었구만!' 다시 업무 정상화. 음양오행 다이어그램을 멋지게 피피티로 만들어보라고 하셔서 전군 예산과 세미나 관련 피피티 만들던 중에 그거 만들고 있던 적도 있다(결과적으로 우리 사무실이 최우수상을 타서 나는 4박5일 휴가를 받았다). 한번은 또 뭐야, 중국에서 온 귀한 보이차를 대접받았던 적도 있다. 병사들의 고충을 듣기 위한 자리였는데, 가장 큰 고충은 보이차를 2리터다 마셔서 방광은 터질 것 같은데 차마 화장실 가고싶다는 소리는 못 하겠고, 일하다 말고 불려나가서 사무실 돌아가면 모 중사가 개지랄을 해댈 것이 두려워 나는 식은땀을 벌벌 흘렸다. 하여튼 그런 분이 계셨다. 네시 되면 전투체육 나갔다가 그대로 퇴근. 아아, 얼마나 꿈같은 자리인가. 정년 채우고 나면 이제 평생 연금을 받는다. 대령 연금은 진짜 졸라 장난없다.


아니 뭐 좋다 이거다. 평생 나라와 군을 위해 헌신했으니까 그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 싶다. 그런데 그런 자리가 많다. 아니, 꽤 많다. 그 돈이랑 골프장 지을 돈이면 생활관 싹 갈아엎고 물자도 싹 신품으로 바꾸고 장비도 교체하고 얼마나 좋냔 말이다. 병사들 밥 남긴다고 지랄할 바에야 짬밥 질 개선하면 얼마나 좋아. 군장도 A형텐트도 진짜 병신같다. 그중에 탑은 판초우의다. '원래 용도와는 100% 떨어졌고 그 어떤 기능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물건'이라 하면 나는 판초우의 말고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글 썼다고 어디 기무사에서 전화오진 않겠지. 오해 마시라, 나는 이쁨받는 병사였고 요새도 간부님들하고 연락 자주 한다.


그래도 요샌 병사들 월급 올랐단다. 스마트폰도 쓰게 하니까 부조리도 싹 사라졌댔고(허긴 당연한 일이다). 조금씩 바뀌어 가고는 있다 싶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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