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는 매번 관람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토록 어른과 아이의 유대감을 끈끈하게 형성하는 애니메이션이 어디 또 있을까. 2018년에도 디즈니는 어김없이 놀라움을 선사한다. 그것도 지독한 방식으로 말이다. <코코> 는 우리 가슴의 한 편을 또 찡하게 울리고 만다. 디즈니의 신작 <코코> 는 디즈니가 성취해낸 또 하나의 걸작이다. 아주 탄탄한 이야기의 뼈대를 가지고 흘러가서 끝에 도달하는 그 순간은 감동 그 자체다.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하면서 뮤지션을 꿈꾸는 소년이 있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음악을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소년의 고조할아버지가 음악을 하겠다며 가족을 떠났기 때문이다. 고조할머니가 싫어하던 성격은 가족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가족들 모두 음악을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 미구엘은 뮤지션이 되고 싶다. 미구엘은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를 존경한다. 때마침 마을에서 경연대회가 펼쳐진다. 미구엘은 참여하고 싶지만 할머니가 기타를 부신 바람에 가지고 나갈 기타가 없다. 그래서 떠올린 생각은 에르네스토의 묘에 있는 그가 직접 연주하던 기타를 훔치는 방법이다. 잠입하여 훔친 기타를 만진 순간 미구엘은 망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를 볼 수 없으며 오직 망자 만이 그를 볼 수 있다. 미구엘은 그 날 해가 뜨기 전까지 가족의 축복을 받아야만 현세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망자의 세계에서 만난 헥터와 함께 상부상조하는 모험을 시작한다.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코> 는 3년 간 지독하게 멕시코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멕시코인들이 자주 먹는 음식부터 시작하여 멕시코 젊은 친구들이 자주 입는 옷까지 완벽하게 연구하여 만들어냈다. 실제로 그 디테일은 엄청나다. 하나씩 찾아가며 관람하는 것도 재미 있는 포인트가 된다.
위에서 말한 대로 <코코> 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디즈니가 택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가히 놀랍다. ‘죽음’ 이라는 낯설고 무서운 것을 디즈니 만의 방식으로 따뜻하게 풀어냈다. 등장하는 망자들 또한 귀엽기 짝이 없다. 디즈니는 ‘죽음’을 귀여움과 재치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성공해낸다. 디즈니는 죽음 그 너머에 있는 깊은 어둠 마저도 따뜻하게 만들어내는데, 이전의 <토이스토리> 시리즈에서 다루었던 추억과 그 이외의 작품들에서 다루었던 한 가지의 중요한 키워드는 디즈니에게 모두 귀여움과 따뜻함, 즐거움으로 승화된다.
<코코> 에서는 죽음과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를 상기한다. ‘기억’ 이다. <코코> 에서 망자는 ‘죽은 자의 날’에 현세로 잠시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은 제단에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다. 제단에 망자의 사진이 걸려 있어야만 현세로 다녀올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망자가 누군가에게 잊혀지게 되면, 망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다면 망자는 진정한 죽음을 맞이한다. 미구엘의 증조할머니 코코는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음악을 하겠다며 홀연히 떠난 아버지가 어릴 적 불러준 노래를 머리에서 지우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덕분에 아버지는 망자의 세계에 남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아주 강력한 스포일러로 작용할 수 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누군가의 기억에 존재한다는 것 또한 실로 행복한 일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서 처연하다. 내 곁의 누군가를 떠나 보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괴롭고 힘들다.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만 죽음 앞에 의연해질 수 있나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죽음 앞에 괴롭지 않은 인간은 없다. 살아 숨쉬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힘든 일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아직 곁의 누군가를 떠나 보낸 경험이 없다면 필히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히 여기고 다독여줄 필요가 있다. 가끔 기사로 접하는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어쨌든, 곁의 누군가를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코코> 는 죽음으로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다시금 상기하는 소중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기억 또한 소중하다. 누군가 기억해준다면 살아 숨쉬는 것 보다 더 값진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기억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다. 투쟁의 역사에서 빛을 발하던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은 30년이 지나서도 회자되며 다시 피를 들끓게 만들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정설이 되었고 그것은 기억이라는 명목 하에 성립이 되는 것이다. 기억되지 않는 한 존재하지 않으며 기억되는 순간 어디선가 빛을 발한다. 저마다 다른 이름과 외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강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악질의 인간은 죽어서도 악질로 남는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강하게 빛날 수 있는 것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고 모든 인간에게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빛날 수 있다.
처연한 죽음 너머의 기억 속에서 모두가 밝게 존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