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봉준호 감독이 칸 국제 영화제에서 쾌거를 이루어냈다. 신작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 개봉 전에 수상한 터라 관객의 기대감은 잔뜩 높아졌다. <기생충>의 수상은 연일 보도되었으며 감독의 모교 연세대에서는 거리에 축하하는 플랜카드를 걸어놓는 등 대대적으로 축하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지난 달 30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시놉시스와 예고편 만으로는 내용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궁금증을 자아냈으며 그 베일이 벗겨질 때는 모두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마도 <기생충>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2019년의 영화 중 최고가 아닐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 전에 봉준호 감독과 모든 배우 및 스텝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기생충>은 코미디가 가미된 섬뜩하며 소름돋는 드라마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감독 또한 드라마라고 밝힌 바 있다. 영화는 현대사회의 양극에 있는 두 가족이 주인공이 된다. 반지하에 살며 핸드폰이 끊겨서 집 주변의 와이파이를 이용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가족과 자수성가로 IT기업의 성공을 이루어 대저택에 사는 가족. 이 두 가족이 만나며 벌어지게 되는 일을 그린다. 이를 통해 부를 기준으로 수직 정렬된 사회를 보여주며 평범해지고픈 것이 전부인 구성원에게 자괴감이 드는 모습을 그린다. 두 가족은 가난한 가족이 부자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으로 마주하게 된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 기우(최우식)는 친구의 부탁으로 부잣집 딸의 영어 과외 선생을 하게 된다. 딸의 과외 선생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가족을 부잣집에 취직시킬 계획을 꾸린다. 동생은 부잣집 막내 아들의 미술 선생, 아버지는 운전 기사, 어머니는 가사 도우미로 취직시킨다. 치밀한 계획 하에 기존의 일꾼들을 모두 해고시키며 가족을 추천한다. 물론 기우의 가족 넷은 서로 다 모르는 사이가 된다. 온가족이 취직을 하여 잘 지내던 중 전 가사 도우미가 집에 찾아오게 되며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
집의 지하벙커가 발견되면서 영화는 스릴러로 변모하게 된다. 웃음기는 덜어내고 긴장을 드러낸다. 충숙(장혜진)이 문광(이정은)을 따라 지하벙커로 내려가는 롱테이크의 숏은 긴장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 섬뜩한 기운을 따라 지하벙커로 내려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문광의 남편이 그곳에 살고 있다. 문광은 주인에게 말하지 말고 가끔씩 내려와 밥을 달라고 부탁하지만 충숙은 들어줄 용의가 없다. 그러다 발을 헛디딘 기택(송강호) 떄문에 이들이 가족임을 들키게 되고 둘은 대립하게 된다. 공생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무래도 <기생충>은 촬영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더>와 <설국열차>, <버닝> 등의 작품에서 훌륭한 작업물을 내놓았던 홍경표 감독이 촬영을 담당했다.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실력을 <기생충>에서도 충실하게 보여주었다. 인물의 클로즈업이나 집안을 담아낸 컷들과 계단을 오르내리는 컷들은 영화에 집중력을 크게 불어넣어주었다. 특히, 클로즈업 컷이 상당히 많은데 이것은 캐릭터의 감정을 아주 잘 잡아냈다. 그리고 폭우가 쏟아질 때 도망치는 가족을 포착한 씬은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인물을 클로즈업 하지 않아도 그 힘겨움이 충분히 잘 묻어나 있다. 그 외에도 멋진 컷들이 있으니 다시 한 번 유심히 보길 권한다.
송강호 배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고일 뿐이다. 매번 연기로 놀라움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기생충>에서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훌륭하고 소름돋는 연기를 보여준다. 선을 넘지 말라던 박사장(이선균)의 말에 변하는 표정은 압권이다. 영화에서 딱 한 번의 소름만 돋아야 한다면 그 컷을 뽑겠다.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다. 송강호 이외에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 영화에 출연한 모든 배우의 연기는 일품이다. 모두 영화 안에서 각자 만의 명장면을 하나씩 만들었다. 실로 대단하다.
영화에서 계단을 많이 볼 수 있다. 대저택 안의 계단,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폭우를 피하며 집으로 갈 때 나오는 계단 등. 이 많은 계단은 현대사회의 수직구조를 보여주는, 영화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 수록 참담해진다. 늘 내려가야만 기택의 가족과 계단 내려가는 장면을 거의 볼 수 없는 박사장의 가족. 계단은 아마 드라마에서 수직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소재가 아닐까. 봉준호 감독은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앞서 던진 질문으로 돌아와서, 과연 공생은 불가능한 것일까. 자본주의에 의하여 나누어진 수직구조의 꼭대기와 가장 아래의 두 가족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결국 공생할 수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 같다. 공생을 한다 치더라도 지하벙커에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마음과 행동으로 굳이 공생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 같이 잘 사는 것은 힘든 일이다. 다 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야 할 텐데, 이 자본주의 현대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부를 축적하는 사람 만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며 가난한 사람은 가난을 대물림한다. 많이 버는 누군가가 못 버는 누군가를 위해 번 돈의 일부를 떼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 또한 욕심을 가진 동물이라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고 셋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1억을 번 사람은 10억을 벌고 싶지, 1억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부의 분배는 힘들다. 그렇다면 결국 다 같이 잘 버는 사회가 되어야 할 텐데, 그 또한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욕심을 가진 동물인지라 내가 버는 것을 나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로 가진 능력 또한 다르니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극 중 기우는 다혜(현승민)에게 물어본다. 대저택에 있는 본인이 분위기와 어울리냐고. 근세(박명훈)의 몸 밑에 깔려 있던 차키를 코 막으며 겨우 가져가는 박사장을 결국 기택은 칼로 찌르고 만다. 자괴감이 온몸을 덮어 화로 변한다. 평범해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어서 자괴감이 든다. 남들처럼만 산다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인 것을 전혀 몰랐다. 남들처럼만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는 닿기도 힘든 일이다. 이미 이 시대는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랐지만 남들이 가난해지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되어버렸다. 공생은 어렵고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렸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울 뿐이다.
이것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