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오기 전까지 자주 했던 생각은 과연 내가 파리에서 외로움을 느낄지에 대한 것이었다. 27년을 살며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이곳에 혼자 와서 지내다 보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까 했다. 3개월 하고 보름 정도 지난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느끼고도 모른 채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외로움과 비스무리한 감정 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게 외로운 건가?’ 하는 감정 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아직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직도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른다. 느껴본 적이 없으니 알 리가 없다. 연인이 없어서 외로운 것도,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도 느껴본 적이 없다. 물론 지금의 나는 여자친구도 있고 한국에 있을 때 친구들 만나는 것도 좋아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동시에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한다. 혼자 있을 때는 생각에 더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할 때, 혼자 있는 게 좋다.
그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탓에 혼자 무언가를 가거나, 하는 것들을 숱하게 해왔다. 그렇게 혼자 했거나 갔던 곳 중 좋은 것들은 여자친구와 친구들에게 소개도 해주고 살아왔다. 어찌 보면 삶에서 틈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게 아닐까. 혼자 지내는 시간과 사람과 지내는 시간이 적당히 섞여 있어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파리에 오면 외롭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까지는 아니다. 아직 9개월 정도가 남았으니 천천히 지켜보기로 하자. 외로움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조금 고되게 바뀔 거라는 불안도 있지만.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는 건 축복 받은 일인 것 같다. 외로움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외로움을 토로하는 친구의 말이나 인터넷에서 보았던 여러가지의 것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외로움은 느끼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내 스스로도 조금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외로움은 느끼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까지 축복 받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어쩐지 많이 허접한 내 글을 다시 보면 외로움이 묻어 있지 않다. 어떤 생각에 사무쳐 쓰여진 것이지, 외로움에 기대어 쓴 티는 나지 않는다. 공감대의 폭이 좁은 게 아닌가 싶지만 나한테는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외로움이 뭔지도 몰라요.’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고생도 안 하고 편하게 지내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묘한 기분이 든다. 잘 지내고 있긴 하지만 편하지는 않다. 1년 간의 생계유지를 위해 풀타임으로 일을 하며 월세도 내고 생활비도 쓰고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고생을 더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여유롭게 지내는 건 아니다. 딱 남들 사는 만큼 살고 있다. 인간은 모두 한 가지 이상의 걱정을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다. 얼마 전에 전 직장 동료들에게서 다 같이 한 잔 하고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곱창 사진을 받아 보며 위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립기는 하나 외롭지는 않다. 나는 아직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른다.